'성장'을 경제 정책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던 MB 정부가 역대 정권 최저 성장률이라는 성적표를 남긴 채 퇴장할 것으로 보인다. 28일 발표한 '올해 하반기 경제 정책 방향'에서 정부가 전망한 대로 올해 성장률이 3.3%로 떨어질 경우, 현 정부 집권 5년간 평균 성장률은 3.2%를 기록해 정부가 수립된 이래 최저치를 기록하게 될 전망이다〈그래픽 참조〉.

현 정부의 성장률을 끌어내린 직접 원인은 미국에 이어 유럽으로 번진 글로벌 경제 위기다. 정부는 하반기 경제 운용 방향을 발표하면서 "유럽 재정 위기 등 대외 여건 악화로 경제 회복이 늦어져 올해 성장 전망치를 낮췄다"고 밝혔다.

우리나라가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 다른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은 성장을 한 것은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5년 내내 경제성장률이 세계 평균을 밑돈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위기 대응을 하느라 근본적인 경제 체질 개선에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문제로 지적된다. 이에 따라 차기 정부에선 다시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등 경제 운용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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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외치며 등장한 정부, 5년간 위기 대응하다 퇴장

현 정부는 집권 초 '7% 성장이 가능한 경제'를 모토로 내세웠다. 많은 이가 "터무니없다"고 했지만, 성장을 중시하자는 취지에는 공감하는 경제전문가가 적지 않았다. 김태준 전 금융연구원장은 "훼손된 성장의 가치를 되살리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목표는 2008년 글로벌 위기가 터지면서 좌초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온 신경을 위기 방어에 쏟는 사이, 우리 경제의 연도별 성장률은 천문학적인 경기 부양책이 효과를 봤던 2010년을 빼곤 줄곧 4%를 넘지 못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1960년대 이후 우리 경제가 2년 연속 4% 이하 성장률을 기록한 현상은 현 정부에서 처음(2008~2009) 나타났고, 작년과 올해 2년 연속 3% 성장을 기록하면서 반복하게 됐다. 2차 오일 쇼크(1980년 -1.9%)나 외환 위기(1998년 -5.7%), 카드 사태(2003년 2.8%) 당시에도 성장률이 일시적으로 떨어졌지만, 다음 해에는 곧장 빠른 성장세로 돌아선 것과는 대조적이다.

절대 성장률 성적표는 최악이었지만, 우리 경제의 위기 대응은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경쟁 대상인 선진국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의 지난 5년은 나쁜 게 아니라 선방에 가깝다. 우리나라의 지난 5년 평균 성장률은 일본(-0.2%), 미국(0.6%), 독일(0.6%), 이탈리아(-1.3%)보다 높고, 대만(3.5%)과 비슷한 수준이다. 세계 평균 성장률(3.0%)보다도 높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한마디로 잘 버텼다. 우리 성장률이 낮은 것으로만 평가하긴 어렵다"고 했다. 8개월 넘게 40만명 이상씩(전년 동월 대비) 증가하고 있는 고용지표와 올해 들어 2%대에서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물가 역시 다른 나라에 비해 지표상으로는 건전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처럼 위기에는 잘 대처했지만, 문제는 남는다. 우리 경제는 지난 5년을 버티면서 급격한 고령화나 산업 구조 재편 같은 체질 개선을 어느 것 하나 해결하지 못했다. 한 전직 경제 부처 장관은 "서비스산업 선진화나 교육·의료 개혁, 급격한 노령화 대비 등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후회할 대목"이라고 했다.

◇하반기도 위기 대응 모드, '실탄' 부족 우려 높아져

정부는 이날 발표한 올 하반기 경제 정책 방향에서 여전히 위기 대응에 초점을 맞췄다. 중장기 성장 동력을 가다듬으려는 구조 개혁을 위한 조치는 이렇다 할 것이 없다. 정부는 기금과 공공 투자를 늘리고, 안 쓰고 남는 불용 예산을 줄여 공공 지출을 8조5000억원 늘리기로 했다. 8조5000억원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의 0.5%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정부는 또 올해 7000억~8000억원가량 집행될 설비투자펀드(총 3조원 목표)를 만들기로 했다. 은행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대출 2조원을 PF 처리 뱅크인 유암코가 인수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른바 '내수 활성화 3종 세트'다.

그러나 많이 잡아 11조원 안팎인 이 정도 부양책으론 하반기에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 대응하기에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많다. 지난 2009년 정부가 글로벌 금융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29조원의 수퍼 추경 예산을 편성했던 것의 절반에 못 미친다. 눈에 띄는 대책 없이 맞이할 정권 말을 경제 전문가들은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부형 현대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출을 유지하면서도 내수 시장을 넓히고 경제의 부가가치를 늘릴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