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 전까지 트럭에 과일을 싣고 다니며 장사를 했던 박철호씨(46·가명)는 요즘 새벽에 경기도 성남시 모란역 주변의 인력시장을 기웃거리고 있다. 박씨는 “과일장사 다니던 트럭이 사고가 나서 새 차를 주문했는데 두달이 다 되도록 출고가 안돼 수중의 생활비가 다 떨어졌다”면서 “급한 김에 여기(인력시장)까지 나왔지만 일이 없는 날이 더 많아, 애들 생각에 속이 바짝바짝 타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현대차, '포터'

국내 완성차 업계가 수익성이 높은 승용차 생산에 주력하면서 소형 트럭 등 경상용차 생산이 줄어 출고가 지연되고 있다. 이로 인해 1톤(t) 트럭 등 경상용차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차를 구입하지 못해 생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자동차 업계, 수익 높은 승용차에 주력···서민 생계형 소형 트럭은 홀대

27일 서울의 한 현대자동차##전시장을 찾아 1톤 트럭 '포터'를 구입하겠다고 하자 영업사원은 "현재 공장이 풀가동 중이지만 주문이 밀려 1만대 이상 대기상태"라며 "주문했다가 중간에 포기하는 분들도 많으니 다른 차량을 생각하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

기아차, '봉고'

기아자동차##와 한국GM도 경상용차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이날 조선비즈가 기아차와 한국GM 전시장에서 기아의 1톤트럭 ‘봉고’와 한국GM의 소형 미니밴 ‘다마스’와 0.5톤급 미니 트럭 ‘라보’를 주문했지만, 출고까지는 최소 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1톤트럭 포터는 1만4000여대, 봉고는 1만여대의 대기물량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상용차를 찾는 사람이 많은데도 극심한 공급난에 시달리는 것은 완성차업체들이 유럽발 재정위기 등을 이유로 수익성이 높은 승용차 생산에 주력하면서 경상용차 생산 비중을 줄였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에선 차종별 판매이익률이 승용차는 차 값의 20~30%로 높은 반면 경상용차는 10%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GM의 경상용차인 다마스와 라보는 창원 공장에서 경승용차 쉐보레 스파크와 같은 생산라인에서 ‘혼류 생산’되고 있다. 이는 한 라인에서 여러 차종을 만드는 방식으로, 승용차 스파크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다마스와 라보의 생산량은 줄어들게 된다. 실제로 올 1~5월 스파크의 판매량은 전년 동기(2만4653대)보다 8.1% 증가한 2만6647대를 기록했다. 반면 같은 기간 경상용차 다마스와 라보의 판매는 각각 2973대와 2050대를 기록, 전년보다 각각 8%, 9% 감소했다.

한국GM, '다마스'

한국GM 관계자는 “올 들어 국내시장의 스파크 판매가 늘어났고, 미국 수출물량도 증가해 스파크 생산이 늘어난 대신 다마스와 라보의 생산량은 줄었다”면서 “생산시설을 늘리면 해결될 수 있지만, 경상용차는 경기에 민감해 수요예측이 어려워 쉽게 생산라인을 증설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기아차는 포터와 봉고를 각각 울산 제4공장과 기아차 광주공장에서 혼류 생산라인이 아닌 독립 생산라인에서 생산하고 있다. 따라서 다른 차량의 생산과는 전혀 관계가 없음에도 생산량이 부족한 상황이다.

현대차 포터는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올해 1~5월까지 3만6154대를 기록해 판매가 전년보다(4만1676대) 15% 줄었다. 기아차 봉고도 전년보다(2만1949대) 6% 줄어든 2만528대 판매에 그쳤다.

한국GM, '라보'

이에 대해 현대·기아차는 생산량 자체가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 2월과 3월은 각각 21일씩 공장가동이 됐지만 1월의 경우 신정·설날명절 등이 이유로 공장을 많이 가동할 수 없었다"면서 "그 결과 포터와 봉고 1월의 출고실적(5933대, 3078대)이 전년(8406대,4053대)보다 각각 42%(2473대), 31%(975대) 떨어졌다"고 말했다. 포터와 봉고의 공급차질은 1월의 생산부진이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자동차 업계는 만약 수익성이 높은 승용차였다면 현대차가 특근을 하거나 생산물량을 다른 생산라인으로 이전해서 생산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생산을 늘렸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현대·기아차는 수익성이 높은 승용차 부문에 치중하면서 서민들의 밥줄인 경상용차의 생산에는 소홀했다는 평가다.

◆ 소형트럭, 연구개발 투자도 외면···22년전 모델 그대로 만들기도

자동차 업계가 소형 상용차를 홀대하는 태도는 연구개발 투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톤트럭, 미니밴 등 경상용차는 큰 변화없이도 꾸준히 판매되는 차종이기 때문에 완성차 업체들은 연구개발·투자에 대한 활동은 찾아볼 수 없다. 일반 승용차가 2~3년마다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 5~6년에 한 번씩 풀체인지모델(완전변경)을 선보이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현대차의 포터2는 2004년 출시돼 2009년 일부 편의사양을 더한 ‘포터Ⅱ 플러스팩’ 모델이 출시됐을 뿐 사실상 9년째 같은 모델을 판매하고 있다. 기아차 봉고도 2004년 봉고3가 출시된 이후 지난해까지 총 8년 동안 연구개발(R&D)없이 똑같은 차를 판매했다. 기아차는 올해 초 봉고의 외관과 엔진을 변경한 마이너체인지 모델을 출시했지만 사실상 큰 변화는 없다.

한국GM의 다마스와 라보도 똑같다. 다마스는 2003년 7월에 출시된 다마스2 모델이 현재까지 판매되고 있으며, 라보는 1991년 출시된 이후 22년간 1세대 모델이 계속 판매되고 있다. 또한 일부 모델의 경우 디자인을 개선한 모델도 출시되고 있지만 부분변형에 불과했다.

김필수 대림대학 자동차과 교수는 “경상용차 시장은 일반 승용차와 달리 경쟁이 거의 없다 보니 자동차 업체들이 투자를 거의 하지 않는다”면서 “적당히 만들어도 팔리고 팔아봤자 큰 이득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경상용차를 만드는 회사가 현대·기아차와 한국GM 등 3곳밖에 안되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이들 회사는 수익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서민경제에 대한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개발 투자와 생산에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