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린 8일 한국은행 15층 대회의실. 회의시작 시간인 9시를 살짝 넘겨 회의장에 들어선 김중수 총재는 피곤한 기색이었다. 지난달 금통위에서 낙관적인 경기인식을 강조하며 '금리인하는 검토하지 않았다'는 자신감 있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공교롭게도 지난달 금통위 직후부터 세계 경제는 급박하게 돌아갔다.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우려, 스페인 은행들의 뱅크런, 미국의 경기회복세 둔화 등 3중 악재가 불거졌다. 이런 이유로 중국 인민은행은 전날(7일) 정책금리 역할을 하는 은행 예금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4년만의 금리인하다.

금통위는 12개월 연속 기준금리를 현행 연 3.25%로 동결했다. 그러나 세부적인 내용은 많이 달라졌다. 우선 이날 김 총재의 발언을 감안하면 사실상 금리정상화(금리인상) 기조를 접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김총재는 취임 이후 기준금리를 다섯번 올리며 과도하게 낮은 금리의 정상화를 진척시켰다고 자부했지만 이제는 그 시도를 멈춰설 수 밖에 없게 됐다. 유로존 위기가 더 악화될 경우 금리인하에 나서야할 판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언제 얼마나 기준금리를 내릴지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다만 성급한 금리인하가 단행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올해 내내 기준금리가 동결될 것이라는 전망도 여전히 적지 않다.

◆ 김중수 총재, 금리정상화 의지 사실상 접어‥성장률 전망 하향 조정 시사

금융시장은 이날 '금리정상화'라는 문구가 또 나올지 여부에 주목했다. 김 총재는 시장의 예상대로 금리정상화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불확실성이 늘어나고 빠르게 변하는 대외 여건을 볼 때 금리 정상화는 변수가 많다"고 말했다.

또 김 총재는 국제유가 하락과 환율 급등 등 달라진 경제 여건을 거론하며 3.5%로 제시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의 하향 조정 가능성도 내비쳤다. 한은 집행부와 금통위도 "성장 경로의 하방 리스크가 더 커졌다"면서 이같은 인식을 뒷받침했다.

이런 김 총재의 발언들은 채권시장에는 사실상 금리인하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금리동결 발표 직후 104.80선 밑에서 움직이던 국채선물 6월물은 김 총재의 회견이 시작되면서 급등한 뒤 전일대비 19틱 상승한 104.88에서 거래를 마쳤다. 국고채 3년 금리는 전일대비 5bp(1bp=0.01%포인트) 하락해 기준금리와 같은 3.25%에 고시됐다.

◆ 전문가 "성급한 금리인하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은이 곧바로 금리인하에 나설 것으로 보지는 않고 있다. 김 총재도 "금통위에서 세계 경제의 여러가지 변화 가능성에 따른 후속 대안에 대해 논의했다"면서도 "아직까지는 금리 정책에 대한 우리의 기조를 변화시킬 만은 특별한 사유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금리인하의 부작용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최근 3개월 연속 2%대를 이어갔지만 기대인플레이션은 3% 중반을 유지하고 있고 가계부채는 1000조원을 바라보고 있어서다. 현행 3.25%에서 기준금리를 인하시킬 여지도 크지 않다.

한 외국계 은행의 이코노미스트는 "김 총재의 발언은 '우리는 선진국이 가는 길을 따라가겠다'고 한 것이나 다름 없다"면서 "정책 대응 여지가 많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금리인하를 성급하게 하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연 3.25%인 현재 금리를 낮췄을 때 경기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것도 한은의 고민이다. 시중 유동성이 이미 풍부하게 공급된 상황에서 금리를 낮춰 돈을 더 풀었을 때 실물 경제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고 금융권에만 머무르는 현상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나 마리오 드라기 ECB(유럽중앙은행) 총재도 이런 우려를 나타내며 정책을 선택하기에 앞서 그 효과가 분명히 확인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 외국계 IB 관계자는 "이날 김 총재 발언은 향후 대내외 경기 여건이 불확실해짐에 따라 여러가지 정책 대응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나온 것 정도로 해석하고 있다"면서 "현재 중립 금리 수준이 어느정도인지 등 좀 더 복잡한 논의를 거친 뒤에나 기준금리 인하를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