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PC업체 레노버(Lenovo)는 올 1분기 세계 PC 시장 점유율 13.1%로 1위 HP(17.2%)를 턱 밑까지 추격했다. 2005년 IBM의 PC사업부를 인수해 성장한 레노버는 HP가 실적부진에 허덕이는 사이 정상의 자리까지 노리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펄펄 나는 레노버도 한국에선 맥을 못 춘다. 레노버 브랜드가 국내에 선보인 지 6년이 지났는데도 올 1분기 국내 PC 시장 점유율은 2%에 그쳤다. 가전업체 하이얼(海爾), 휴대폰회사 화웨이(華爲)·ZTE 등도 마찬가지다. 세계 시장에서 무서운 기세로 약진하고 있는 중국 IT업체들이 유독 한국에서 부진한 이유는 뭘까.

중국 IT업체들 해외선 펄펄, 한국선 맥 못춰

중국 업체들이 고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글로벌 정상에 올라 있는 한국 업체들보다 브랜드 인지도가 딸린다는 점이다. 한국 소비자들은 가격이나 성능도 고려하지만 유명 브랜드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국내 최대 전자제품 유통업체인 하이마트는 레노버 PC를 판매하지 않는다. 삼성전자LG전자를 비롯해 국내외 7~8개 브랜드 PC를 팔면서도 레노버 PC는 들여놓을 계획이 없다. 하이마트 관계자는 "대형 판매점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회전율(판매율) 높은 제품 위주로 진열대를 구성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PC 시장에서 삼성·LG의 점유율은 합쳐서 60%에 육박한다.

전자유통업계 관계자는 "국내 소비자들은 의외로 자신이 구입하는 전자제품이 어디 것이라는 걸 중시한다"며 "중국 업체들이 아직 이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2000년대 중반 일본 소니파나소닉도 한국시장에서 비슷한 고민을 겪었다. 그래도 일본 회사들은 워낙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 중산층 거주 지역에서는 선호도가 높았다. 하이얼이나 레노버가 최근 약진하고 있는 미국 시장의 경우 브랜드보다는 가격을 중시하는 소비행태가 자리잡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가격 경쟁력 요인도 반감

전문가들은 중국 업체들이 경쟁력으로 내세웠던 가격 경쟁력 요인도 희석되고 있는 점을 원인으로 꼽았다. 중국 업체들은 시장 진입 초기 경쟁사 제품 대비 20~30% 싼 가격을 경쟁력 요인으로 내세웠다. 하이얼도 작년 초 중저가 LED TV를 주력 제품으로 들고 나왔다. 하지만 이마트·롯데마트 등 할인점들이 중국·대만의 제조업체와 직접 계약을 맺은 '반값 TV'를 들고 나오면서 이런 전략은 물거품이 돼 버렸다.

하이얼은 작년 세계 세탁기 시장의 10.9%를 차지, 1위에 올랐으나 국내 세탁기 시장 점유율은 1%도 되지 못한다. 요즘은 소형 드럼 세탁기를 내놓으며 차별화를 시도하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 바이어는 "국내업체들도 가격대와 라인업을 다양화하는 추세라 반전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미흡한 애프터서비스 체제 역시 관건이다. 과거 일본업체들의 한국 시장 실패 사례에서 교훈을 얻은 중국업체들은 외부업체와의 대규모 계약을 통해 애프터서비스망을 강화했다. 하지만 삼성·LG처럼 직영 체제를 갖추고 있는 대기업에 비하면 여전히 약하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디자인이나 기능이 국산보다 약한 것으로 지적된다. 저렴한 가격만으로 승부하기에는 국내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는 것이다. ZTE·화웨이 등이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한국 프리미엄 제품과 비교하면 차별화된 기능과 서비스가 부족한 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20만~30만원대의 중국산 저가 스마트폰 모델 수입을 검토 중이나 소비자들의 관심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여 도입 시기를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