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그 자체가 거대한 문화상품이다. 인류가 만든 최고 발명품이라는 말처럼 술이 있는 곳에 문명이 꽃을 피웠고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예술이 뿌리내릴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조선말 전국적으로 600가지가 넘는 우리 전통주를 일본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살하려고 한 것도 술이 가진 힘을 두려워해서다. 이 때문에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전통주 제조법은 명맥이 끊어졌다. 그러나 최근 전통주 복원을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전통주 제조회사 국순당이 대표주자다. 1992년 ‘백세주’를 출시하면서 전통주 명가로 이름을 올린 국순당은 2007년 출시한 쌀 막걸리(페트병형)로 제2전성기를 맞고 있다. 배상면 회장의 올곧은 집념이 만들어낸 국순당의 다음 목표는 우리 전통주를 완벽하게 복원시키는 일이다. 세계 어느 나라 술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친환경 전통주를 세계인의 식탁에 올리겠다는 게 국순당의 야심찬 목표다. 그리고 이 같은 집념은 회사경영이 장남인 배중호 사장으로 이어지면서 점점 무르익고 있다. 배 사장은 K-팝, 드라마 등 대중문화가 만든 한류가 우리 문화를 알린 시작이었다면 다음은 음식, 그 다음은 술이 뒤를 이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소주, 맥주, 위스키에 치이던 우리 술 막걸리를 찾는 사람들이 요즘 다시 늘고 있다. 한국주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국민 한 사람이 마신 막걸리는 750㎖들이 기준 12.5병으로 2010년(11.5병)보다 8% 가량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열풍이 불었던 지난 2009년, 2010년에 비해 성장세가 한풀 꺾였다 해도 소주, 맥주에 밀리던 것을 상상하면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다.
해외 선전소식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자료를 보면 막걸리 수출액은 2010년 1910만달러에서 지난해 5274만달러로 급증했다. 특히 일본에서는 몸에 좋은 '웰빙 술'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막걸리가 한류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다. 대형 소비시장인 중국, 미국에서도 한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막걸리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막걸리 열품으로 제2의 전성기 맞아

국내 대표 전통주 제조업체 국순당은 늘어난 막걸리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전 공장이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다. 막걸리 열풍 때문에 국순당은 백세주 출시 이후 주춤했던 회사 분위기를 완전히 재정비하고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지난 2010년 매출이 전년에 비해 2배로 늘어 7년 만에 다시 1000억원을 돌파했다. 지난해에는 매출 신장률이 19.8%(1242억원)를 기록했다. 이 같은 매출 신장의 견인차는 막걸리가 맡고 있다. 국순당 생막걸리는 2008년 출시 1년 만에 3000만병의 판매고를 기록하더니 2010년에는 전체 매출에서 54.7%를 차지하면서 45.3%인 백세주(기타 주류 포함)를 뛰어넘었다. 2003년 백세주가 전체 매출의 98.8%, 막걸리가 1.18%였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10년 사이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국내 막걸리 시장의 최강자는 서울장수생막걸리로 전체 시장의 45%를 차지하고 있다. 17%인 국순당은 그 다음이며 나머지 48%를 소규모 지방 탁주연합들이 보유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순당 하면 대표 상품은 백세주였다. 지난 1992년 출시돼 국내 대표 약주로 자리 잡은 백세주는 소주와 반반씩 섞어 먹어 ‘오십(50)세주’라는 새로운 주법(?)을 만들어낼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었다.

그리고 이제는 막걸리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무엇보다 외부로부터의 공기 유입을 차단해 생막걸리 내 효모 활성을 조절하는 발효제어기술이 개발되면서 10도 이하 냉장 보관 시 유통기한이 30일까지 늘어난 게 주효했다. 때문에 국순당 막걸리는 판매망이 전국으로 넓어졌다. 시장조사 전문업체 링크아즈텍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 경북지역에서 국순당의 시장점유율은 27.3%로 지역 업체인 대구탁주(16.9)%를 처음 앞질렀다. 전국 판매망 확대에 시동을 건 것이다.

“사실 저희가 막걸리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반 경기도 구리 퇴계원에서 누룩을 만들 때부터였어요. 누룩을 만드니 막걸리를 만들 수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죠. 그런데 당시는 안타깝게도 지금처럼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용기 제조기술이 없었어요. 더군다나 공급구역제한이라는 규제가 있었죠. 그 지역에서 만든 술은 반드시 그 지역에서만 팔아야 했었던 거죠.”

배 사장은 오늘날 막걸리가 판매신장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공급구역제한이 해제되면서부터라고 말했다. 주세법에 명시된 이 규정을 없애기 위해 국순당과 배 사장은 1990년 헌법소원까지 냈다. 용기 개발에서도 진전을 이뤄 이때 만들어낸 것이 살균 캔 막걸리 ‘바이오탁’이다. 생막걸리가 유통과정에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개발된 이 기술로 국순당은 1993년 포장상, 발명상을 받았다.

“저는 개인적으로 막걸리가 이렇게 인기를 끌게 된 게 1997년 외환위기가 불을 붙였다고 봐요. 사실 1970년대만 해도 막걸리가 국내 주류시장에 차지하는 비중은 60~70%로 절대적이었죠. 넘쳐나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보니 영세 막걸리 업자들이 누룩을 빨리 발효시키기 위해 카바이드와 같은 화학물질을 첨가한 거예요. 그러니 막걸리를 마시면 다음날 뒤끝이 안 좋다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요. 일례로 한때 포천이동막거리 80%가 포천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들어졌다는 얘기도 있어요. 그 정도로 엉망이었던 겁니다. 그러던 게 1985년을 기점으로 시장점유율이 50% 이하로 줄기 시작합니다. 고기 소비가 늘게 되니 덩달아 소주 판매량이 증가하고 맥주, 위스키가 주류시장의 한 축으로 성장하게 된 거죠. 그런데 이걸 외환위기가 다시 바꿔 버렸어요. 경제가 어려워지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하니 실직자들이 배낭 메고 산에 가는 일이 많아졌잖습니까. 그러니 자연스럽게 막걸리가 다시 서민들 술로 사랑을 받게 된 거죠.”

세계주류대회에서 3년 연속 수상

국내 소비가 늘고 때마침 한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막걸리는 라이스와인(Rice Wine)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계인의 식탁에 오르고 있다. 현재 미국 현지에서 판매되는 국순당 생막걸리 값은 3.99달러로 소주(1.99달러)보다 두 배 이상 비싸게 팔리고 있다.

국순당 생막걸리는 2009년 수출 3개월 만에 20만병의 판매고를 기록하는 등 판매성장 속도가 빠르다. 2010년 300만달러를 기록한 수출량은 지난해 390만달러로 30.0% 증가했다. 해외에서 들려오는 반응도 긍정적이다. 지난 2010년 샌프란시스코 국제와인대회에서 처음 동상을 받은 데 이어 작년에는 뉴욕 국제주류대회에서 은상, 올해는 '댈러스 모닝뉴스&텍사스 소믈리에 와인대회 2012'에서 라이스 와인 부문 동상을 차지했다. 댈러스 모닝 소믈리에 와인대회 공식 웹사이트(www.dallaswinecomp.com)에 가보면 라이스 와인 부문 중 유일하게 'Draft Makkoli NV'(생 막걸리)라는 낯익은 영어 단어가 올라와 있다.

이러다 보니 세계주류 시장에서 우리 막걸리와 사케를 비교분석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5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사케는 일식과 함께 일본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이렇게 되기까지는 일본 정부의 노력이 컸다. 중국 정부가 자국 술 마오타이, 수정방, 우량예를 중화문화를 대표하는 상품으로 키우고 있는 것도 술과 문화예술의 상관관계 때문이다.
"메이지(明治)시대 이전 일본 문헌을 보면 일본 사케 맛을 시다, 달다, 톡 쏜다고 표현했어요. 톡 쏜다는 건 탄산이 함유돼 있다는 건데, 추측하건데 아마도 우리 막걸리와 비슷하지 않았나 생각돼요. 사케가 맑고 향긋한 오늘날의 모습을 띤 건 도정기계가 개발되면서부터라고 봐야 해요. 그 전에는 쌀을 깎을 수 없었거든요."

배 사장은 일부 지방 업체들이 독특한 맛과 향의 막걸리를 생산하는 걸 막걸리 세계화의 긍정적인 신호로 본다. 현재 국내에서는 포천 이동쌀막걸리, 부산 금정산성막걸리, 소백산동동주, 고양 배다리쌀막걸리, 강화 인삼막걸리, 가평 잣먹걸리, 매실막걸리 등 다양한 형태의 막걸리가 출시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막걸리는 도수 면에서 맥주(4~5도)보다는 높지만 포도주(12도)나 소주(18~25도)보다는 낮은 6~7도다. 막걸리의 강점은 유산균 함유량이 다른 술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점이다. 450㎖짜리 막걸리 한 병에 들어 있는 유산균은 700억~800억개로 일반 요구르트 100병에 해당하는 양이다. 이 밖에도 막걸리는 장에서 염증이나 암을 일으키는 유해세균을 파괴하고 면역력을 강화시킨다. 또 소화흡수를 돕는 효소가 다량으로 들어 있어 소화 장애를 개선해주는 데 도움을 준다. 
"일본 사케는 맛은 담백하고 향은 정갈하지만 우리 막걸리만큼 효능은 없어요. 막걸리는 도정(쌀 표면을 깎는 것)을 하지 않은 현미 상태에서 발효시켜 자연 그대로의 맛이 살아 있어요. 현미밥이 일반 밥에 비해 빨리 상하는 것도 같은 이치죠. 현미에는 미생물이 좋아하는 영양분이 많거든요. 그런데 단점은 일정한 맛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본이 쌀을 도정해 사케를 만든 거예요. 그래야만 맛이 일정해지거든요. 물론 깊이는 떨어질 수밖에 없죠."

배 사장은 막걸리가 세계적인 명주가 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의 참여와 한식의 세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막걸리 시장에는 하이트진로를 비롯해 오리온, CJ제일제당 등이 진출해 있지만 대부분 해외수출용만을 생산하고 있다. 배 사장은 국내 막걸리의 질적 성장을 위해선 생산시설 개선과 경쟁력 있는 마케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자금력을 갖춘 대기업이 진출해야 지금보다 시장이 더 커질 수 있다고 확신했다.

“술은 음식과 궁합이 맞습니다. 한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는 건 우리 술도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죠. 예전만 해도 뉴욕 맨해튼에서 한식당이라고 해봐야 32번가 주변에 몰려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맨해튼 곳곳에 한식당이 들어선 걸 보면 한식의 위상이 많이 달라진 느낌이에요. 예전에는 외국에 있는 한식당에 가면 대부분이 한국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절반 이상이 외국인인 것을 볼 때 한식과 우리 막걸리가 함께 성장할 가능성은 굉장히 높죠.”

국순당은 배상면 회장이 1952년 대구시 동촌동에 기린양조장을 설립하면서부터 시작됐다. 1955년 약주면허를 따고 1970년 한국미생물공업연구소를 설립한 국순당이 오늘날 전통주 명가로 도약하게 된 것은 1982년 무증자 현미발효법(생쌀발효법)이라는 주조기술을 개발하면서부터다. 이 기술을 터득하는 과정에는 연세대 생화학과를 졸업한 뒤 당시 기술연구소 소장으로 있던 배 사장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고려시대 쓰인 에는 백하주(백세주 원래 명칭)는 가루로 만든 생쌀을 끓는 물에 반생반숙 상태로 쪄서 누룩과 함께 발효시켜 만든다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당시 우리 주조기술로 밥과 같은 상태가 아닌 생쌀에서 누룩을 번식하게 만드는 건 한계가 있었다. 이는 어디까지 과거 문헌에 기록된 이론상으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숱한 도전 끝에 배상면 회장과 배중호 사장은 생쌀발효법을 개발했다.

생쌀발효법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

배 사장은 국순당 창업주인 배상면 회장의 장남이다. 배혜정 누룩도가 사장과 배영호 배상면주가 사장과는 형제지간이다. 공교롭게도 이들 배씨 삼남매는 모두 전통주를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한다. 국순당은 프랑스, 베트남, 필리핀 등 40여 개국에 진출한 수출선을 올해 더 늘린다는 계획이다. 또 미국, 일본, 중국 현지 지사를 통한 프로모션도 다각도로 펼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배 사장이 생각하는 국순당의 미래상은 종합엔터테인먼트 기업이다. 그는 술을 단순한 음료로 여기지 않는다. 배 사장에게 술은 우리 문화를 포장할 좋은 콘텐츠다. 그가 부친인 배상면 회장의 유지를 이어받아 전통주 복원에 꾸준히 투자하고 있는 것도 술이 지닌 문화적 가치 때문이다. 그 일환으로 5월에는 옛날 막걸리를 출시한다. 이 제품은 100% 국내산 쌀과 전통누룩을 사용한 1960년대 이전 막걸리를 그대로 복원한 제품이다. 전통주 복원을 위해 지난해 6월에는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과 ‘우리 술 품질향상 및 대중화 촉진을 위한 기술교류 협약’을 체결했다.

“조선말기 우리 전통주가 600가지가 넘었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가 개발한 전통주는 불과 18가지에 불과합니다. 전국적으로 따져도 100개가 채 안되죠. 문헌을 토대로 개발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초기지만 앞으로 기술력만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가시적인 성화를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를 위해 배 사장은 지난 2월 29.88%를 보유해 2대 주주였던 지앤텍벤처투자 지분 66.62%를 57억원에 추가 인수했다. 배 사장은 지앤텍벤처투자를 바이오, 농업 기술을 보유한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벤처캐피털 기업으로 키울 생각이라고 밝혔다. 전통주 전문 프랜차이즈 주점 우리술상 점포수를 늘려 일반인들이 전통주를 즐길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할 생각이다.

배 사장의 또 다른 도전은 막걸리의 명품화다. 국순당은 지난 2009년 고려시대 귀족 집에서 즐기던 고급막걸리 이화주를 복원해 출시한 데 이어 현재 미몽, 고시레 막걸리 등 프리미엄급 제품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와인이나 위스키는 똑같이 전체 시장의 2~3%를 차지하는 고급제품이 주조 스토리를 만들고 마케팅을 펼치면서 전체적으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어요. 우리 막걸리도 그래야 해요. 지금처럼 저가 막걸리만 생산하면 소규모 기업은 몇 년 후 설 자리게 없게 될 겁니다. 가격경쟁력 면에서 우리 같은 대기업과 어떻게 경쟁을 할 수가 있겠어요. 더욱 더 저가 제품만을 만드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죠. 저는 그럴 바에는 차라리 지방 전문기업들이 명품 전통주를 만드는 게 경쟁력을 키우는 일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야 돈이 되거든요.”

배중호 사장은…

1953년 대구 출생, 78년 연세대 생화학과 졸업, 78년 롯데상사 무역부 입사, 80년 배한산업(국순당 전신) 부설연구소장, 93년~현재 국순당 대표이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