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구현 이대 교수와 네이처 10일자 표지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한 뒤 이삿짐센터와 용접일을 전전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박사학위를 받은 30대 초반의 젊은 과학자가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표지논문을 싣게 됐다.

미국 생활 7년만에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학부와 석사·박사 학위를 모두 마친 뒤 2010년부터 이화여대 초기우주과학기술연구소 특임교수로 재직 중인 남구현 교수(32)의 이야기다.

남 교수와 고승환 KAIST교수, 박일흥 이화여대 교수가 참여한 이번 연구는 그간 밝혀지지 않았던 균열 현상의 미세한 특성을 활용해 빠르고 값싸게 원하는 형태의 나노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네이처는 10일(현지시간)자에 그의 논문을 소개하면서 "남 교수와 동료들의 연구성과는 향후 바이오칩 등 마이크로장치와 나노채널(의학과 생명과학, 전자공학 실험에 사용되는 수십나노미터 구조물)을 싸고 간편하게 생산할 수 있는 매력적 기술"이라고 평가했다.

대구 출신인 그는 1998년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물리학도의 꿈을 접어야 했다. IMF 외환위기 때문에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1년간 이삿짐센터에서 짐을 나르면 아르바이트 생활을 전전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대학에 진학한 다른 친구들과 달리 군입대를 해야했다. 고등학교 시절 땄던 정보처리 기능사 자격증 덕분에 고졸 출신들이 가는 산업기능요원으로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었다.

인천의 한 레미콘 회사에서 시작한 병역특례는 꽤 고됐다. 레미콘 만드는 기기를 관리하는 일이라 용접과 삽질, 중장비 운전까지 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절망감에 빠지지 않았다. 특례일을 하면서 자연스레 기계 분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면서 각종 자격증도 닥치는 대로 땄다.

프로그램 개발 업체로 자리를 옮겨 항공 안전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일을 하던 그에게 어느날 꿈을 되찾을 수 있는 운명적인 기회가 찾아왔다.

인생의 어둠과 적막에 갇혔던 그의 꿈을 다시 일깨운 사람은 황명신 한국항공대 교수(작고)였다.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항공 관련 잡지사에서 틈틈이 아르바이트 기자를 하면서 만난 황 교수는 그에게 "공학을 하려면 미국으로 가라"며 미국 유학을 권유한 것이다.

2003년 훌쩍 미국에 건너간 가난한 늦깎이 과학도는 학비가 싼 지역 컬리지에서 수학과 물리학 공부에 집중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늦깎이는 아니었다. 성적이 뛰어났던 그는 2년 뒤 캘리포니아 명문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 편입했다. 1년 반만에 학부과정을 마치고 미국 동부 명문 매사추세츠공대(MIT)로 진학하려던 계획을 바꿔 같은 학교에서 석사를 1년, 박사는 2년반 만에 마쳤다. 그의 나이 서른살이었다.

이번 연구는 그가 2007년 석사 1학기를 다니고 있을 때 착안했다. 어느날 균열이 사인파 형태를 띠는 것을 발견하고 훗날 연구 주제로 삼았다.

박사후과정생으로 옆방 연구실에서 일했던 고승환 KAIST의 조언도 큰 힘이 됐다. 고 교수는 이번 논문의 공동 교신저자이기도 하다. 당시 고 교수는 남 교수가 자신의 발견을 보여주자 "잘 되겠다"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때 인연은 계속돼 남 교수가 2010년 이대 특임교수로 부임한 뒤부터 함께 실험을 이어갔다. 박일흥 이대 교수 역시 연구비를 아끼지 않고 그의 연구를 지원했다.

이번 연구는 무질서하게 발생해 사람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었던 균열 을 과학의 영역으로 가져왔다는 데 의의가 있다.

남 교수는 “이번 연구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보는 균열이라는 현상을 좀더 미시적이고 본질적인 측면에서 특성을 연구하고 응용했다는 점에서 좋게 평가된 것 같다”며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