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성훈(41)씨는 최근 미국 출장길에 인터넷 서핑을 하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가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닐 때마다 골프용품 광고가 마치 그의 뒤를 쫓듯 유독 눈에 많이 띄었던 것이다. 그러다 김씨는 며칠 전 자신이 구글에서 골프 관련 검색을 했다는 점을 깨달았다. 김씨는 "마치 미행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김씨가 골프 광고에 유독 많이 노출된 이유는 구글이 사용한 '리타기팅(retargeting)' 기법 때문이다. 사용자의 인터넷 접속 정보를 기억하는 파일인 '쿠키'를 추적해 사용자에게 맞는 광고를 보여주는 새로운 개념의 마케팅 기법이다.

IT기술과 마케팅 기법이 나날이 발전하면서 기업들은 더욱 정교하게 소비자들의 지갑을 여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기업들은 해마다 천문학적인 이익을 올리고, 소비자들은 별 쓸모없는 물건에 점점 더 많은 시간과 돈을 낭비하게 된다.

데이터 마이닝, 소비자를 낱낱이 추적한다

리타기팅 기법은 빅 데이터(big data) 속에서 의미 있는 정보를 찾아내는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 기술 중 하나다. 데이터 마이닝을 통해 기업의 마케팅은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는 중이다. 소비자들이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애용하는 포인트 카드도 데이터 마이닝의 중요한 정보원이다. 포인트 카드를 통해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제품을 사는지를 분석함으로써 유통업체들은 어느 시간대에 어떤 물건을 매장에 집중 배치해야 매상이 늘어나는지 파악할 수 있다.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을 분석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누구와 친구인지, 어떤 제품의 잠재소비자인지 파악할 수도 있다. 미국 마케팅의 대가인 마틴 린드스트롬은 '누가 내 지갑을 조종하는가'라는 책에서 "많은 사람이 포인트카드가 제공하는 약간의 할인에 홀려 싼값에 기업에 개인정보를 넘겨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폭탄세일, 패키지요금…소비자 홀리는 가격 전략도 나날이 발전

빅 데이터는 소비자들의 심리와 행동 양식을 파악하는 데도 유용한 수단이 되고 있다. 이를 통해 기업들은 보다 정교한 '트릭'을 개발해 소비자들이 더 비싼 가격에 더 많은 물건을 사도록 부추긴다. 최근 홈쇼핑업체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적발된 사례에는 기업들이 애용하는 전형적인 트릭 몇 가지가 담겨 있다. GS홈쇼핑은 "정상가 229만원짜리 김치냉장고를 70만1000원을 깎아 158만9000원에 판다"고 했지만, 실제로 이 제품은 온라인에서 160만~200만원에 팔리고 있었다. 현대홈쇼핑 역시 "정상가 254만원짜리 LED TV를 53만원 할인해 201만9000원에 팔고 27인치 TV를 사은품으로 준다"고 했지만, 이 제품의 온라인 판매가는 130만~190만원에 불과했다.

여기서 홈쇼핑 업체가 사용한 기법이 앵커링(anchoring·닻내리기)이다.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어떤 숫자를 미리 심어두면 소비자들은 그 숫자를 기준으로 삼아 가격이 싼지 비싼지를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 여기서 미리 심어두는 숫자가 앵커링이다. 예를 들어 GS홈쇼핑이 김치냉장고에 대해 '정상가'인 229만원을 먼저 제시한 뒤 할인 가격을 제시하는 식이다. 소비자들은 '할인가'인 158만9000원이 적정한 가격인지 아닌지 정확히 판단할 수 없지만, 229만원이라는 숫자를 먼저 본 뒤에는 왠지 횡재했다는 기분을 느낀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세일을 할 때 굳이 정상가에 'X'표시를 하고 수정된 가격을 적어놓거나, 정상가격이 표시된 가격표를 그대로 남겨두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앵커링의 효과는 매우 강력해서 많은 기업이 폭넓게 활용한다. 명품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명품업체들이 매장에 5000만원짜리 악어가죽 가방을 진열하는 것은 반드시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500만원짜리 핸드백도 그다지 비싸지 않다고 착각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가격에 대한 착시를 활용하는 다른 흔한 방법 중 하나가 프리미엄 제품을 추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회사에서 만든 제품에 여러 가지 등급이 있다면, 선호가 뚜렷하지 않은 소비자는 중간 가격의 제품을 고르는 경향이 있다. 이런 심리를 이용해 기업들은 '프리미엄' '오가닉' '스페셜' 등의 이름을 붙인 고가라인을 추가한다. 이렇게 하면 프리미엄 등급의 매출은 크게 늘지 않더라도 그 바로 아래 등급 제품의 매출이 오르는 효과가 있다. 이 밖에 패키지요금, 1+1 세일, 끼워팔기 등도 가격에 대한 착시현상을 일으켜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해 애용되는 수법들이다.

☞빅 데이터(big data)

기존의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이 수집·저장·관리·분석할 수 있는 역량을 넘어설 만큼 거대해서 통제하기 힘든 데이터 집합 또는 이를 분석하는 기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