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청화대 동문앞에 자리잡은 IT연구단지 중관촌의 일부건물들은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

◆ 미국·일본 제치고 선진국·신흥국 시장 점유

중국은 2007년 제조업 생산액에서, 2010년에는 제조업 부가가치에서 초강대국 미국을 추월할 정도로 성장속도가 빠르다. 2010년 세계 영상통신 제품의 41.6%, 화학 제품의 28.6%가 중국에서 생산됐다.

특히 최근 중국의 수출 품목은 고부가가치 품목으로 고도화하고 있다. 2000년만 해도 수출 상위 10대 품목에 신발, 완구, 가죽제품이 포함됐지만 이제는 선박과 철도 부품, 광학정밀 제품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유엔에 따르면 20년간 선진국과 신흥국 수입 시장에서 일본의 점유율은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중국의 점유율은 최소 5배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은 일본 제품을 대체할 강력한 대체재로 떠오른 셈이다. 신흥국 시장으로 수출 시장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2000~2010년 중국 수출품목 상위 10개 품목 변화 추이

◆ 고도화하는 중국 산업

현지 진출 외국기업들은 최근 급속한 격변을 겪고 있다. 2000년대 초반해도 중국은 노동집약적 산업에 대한 투자가 주를 이뤘다.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외자기업 우대정책이 폐지되고 있다. 5차 경제개발계획으로 임금확대 정책이 확대되면서 저임금 인력에 대한 이점(利點)도 사라지고 있다.

중국은 정부주도로 반도체와 액정디스플레이(LCD)패널 등 IT 제품을 비롯해 태양광과 풍력발전, 전기차 등 녹색 산업과 바이오 제약에서 신제품 개발을 이끌고 있다. 특히 LCD와 반도체를 제외하고 석유화학과 자동차 등 주력산업은 추격형 전략에서 벗어나고 있어 탈한국화와 탈일본화가 추세는 더 가속화되고 있다.

시노펙과 페트로차이나, 시노켐 등 중국의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은 수직계열화와 자체 경제규모, 해외기업 인수합병(M&A)를 통해 원가와 품질 경쟁력을 높이고 있고 조선해양 분야도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은 품질이 낮고 핵심부품의 의존율이 여전히 높지만 공정과 제품 기술을 높여 2020년쯤이면 한국과 대등한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해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 산업의 이런 비약적인 발전상은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중국 기업들에게 1000개 넘는 대학과 국가 규모의 연구소의 기술이 유입되면서 거대시장과 결합한 결과라는 것이다.

저가제품이란 딱지가 붙은 IT 경쟁력 역시 세계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 내수 시장에서 TV소비가 잠시 주춤거리고 있지만 하이센스와 스카이워스가 차세대 제품과 핵심개발,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국과 경쟁력을 점차 줄이고 있다.

저가폰 천국이라는 오명도 벗고 있다. ZTE와 레노보는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경쟁력을 바탕으로 중국 프리미엄폰 시장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 시장의 틈새를 엿보고 잇다.

중소규모 업체들로만 구성돼 기술수준이 열세인 발광다이오드(LED) 분야 역시 정부의 지원, 대만과의 협력, 연간 수십조원 규모의 중국 내 공공 시장을 발판 삼아 성장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 경쟁력은 일본과 한국이 주춤거리고 있는 사이 턱밑까지 추격해 들어왔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2010년 중국의 글로벌경쟁력지수는 4.8로, 일본(5.4)과 한국(4.9)에 거의 근접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이승신 중국팀장은 “2001년 이후 제도와 규제가 다른 자본주의 국가 수준으로 선진화된 반면 석유화학 전자통신, 자동차 등 주요 산업은 금융과 함께 엮여 국가가 운영(정부가 대주주)하면서 민간에 완전히 개방되지 않고 있다”며 “현지 진출 기업 가운데 70% 이상이 중소기업인 한국의 경우 현지 사업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 공장에서 글로벌 첨단 산업 산실로

중국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글로벌 기업들의 중국 투자는 계속해서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서부지역의 경우는 서부 대개발이 시작된 이래 역사상 최고 수준의 활기를 띠고 있다는 분석이다. LG경제연구원은 지난달 낸 보고서에서 글로벌 기업들의 중국 서부 진출에 대한 위험이 크게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1990년대 노동집약적 산업의 진출이 두드러졌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서부지역이 대규모로 개발되면서 집적회로(IC)와 신에너지, 의약 등 산업에서 연구개발(R&D)과 생산 거점을 옮기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가 내년까지 중국 서부 산시성 시안시에 10나노급 차세대 낸드플래시 생산라인을 건설하기로 결정한 것은 상징적인 일례에 속한다.

김동하 부산외대 중국지역통상학과 교수는 “이들 지역이 동부지역보다 물류와 인프라 면에서 더이상 낙후된 곳이 아니고 또 중요한 소비시장 중 하나로 떠올랐다는 점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IBM 역시 서부 지역 PC시장의 폭발적 성장을 낙관하고 2009년 3월 쓰촨성 청두(成都)를 본거지로 한 ‘대서구(大西區) 전략’을 발표했다. 델(Dell)도 이듬해 청두에 3000명 규모의 운영센터를 건립하고 향후 10년간 10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밖에 최근 3년 사이에 레노보 텍사스인스트루먼트, ACC 등 다양한 IT기업들의 진출도 잇달았다.

글로벌 기업의 투자가 늘면서 OEM기업이나 부품과 원자재를 공급하는 기업들의 동반진출도 늘고 있다. HP가 2010년 충칭(重慶)에서 연간 400만대 규모의 PC공장을 설립하자 폭스콘과 인벤텍, 퀀타 등 대만 OEM기업들이 잇따라 진출했다.

특히 2010년 이후 델과 GE, 레노보 등은 생산시설 뿐 아니라 연구개발(R&D)센터를 현지에 직접 운영하고 있다. 단순한 생산기지가 아닌 선행개발을 위한 연구개발 전초기지로서 활용되기 시작한 것.

글로벌 기업들이 이처럼 이들 지역에 진출하고 있는 이유는 동부지역보다 임금은 30% 정도, 토지는 20% 가량 저렴하고 물류 환경이 크게 개선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군수산업과 탄탄한 과학기술 인프라와 인력도 풍부하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요소로 꼽힌다.

중국 지역별 IT분야 투자 비중

◆ "도시화 최소 10년 보고 변화하는 시장 주목해야"

최근 중국은 성장세가 다소 둔화하고 있다. 자금난을 겪는 국내 중소기업들은 한국이나 제3의 국가로 공장을 옮기려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최소 7~8년, 길게는 10년까지 최소 해마다 경제성장률 8% 이상은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잠재적 시장으로서 강점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승신 팀장은 “현재 서부지역과 농촌지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도시화 정책은 중국이 시장으로서 잠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지 진출 기업들이 중국 정부가 점차 민간에 개방할 신성장 산업에 적극 대처하고 내수 시장을 중심으로 중국 사업의 운영 전략을 재편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 정부도 수출주도형 기업에 대한 지원보다는 내수형 산업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있다.

김동하 교수는 “2008년 국제 금융 위기 이후 중국진출 국내 기업은 인도네이시아 등 동남아로 대거 공장을 옮겼다”며 “현지 진출기업들이 이미 쌓은 네트워크와 노하우를 버리고 떠나기 보다 서부지역 진출 등 새로운 사업 환경과 시장 변화에 대처하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북경사무소의 이철용 연구위원은 “현지 진출한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낮은 생산원가로 손쉽게 돈을 벌거나 이익을 남기지 않은 마케팅을 해온 것이 사실”이라며 “최근 중국 환경의 변화와 현지 기업과의 경쟁에 지쳐 있는 상황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하다”며 “중국이 여전히 임금 경쟁력과 지원 정책에서 우월한 점이 많기 때문에 좀더 분명한 현지 생산 전략과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