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계약자들이 중도금과 잔금을 연체하며 계약해제 소송을 진행하는 곳이 늘면서 가계대출 부실이 커지고 있다. 현재 소송 중인 아파트는 경기·인천 지역에서 파악된 곳만 20여개 단지, 수천 가구에 달하고 10여개 단지가 추가로 소송을 검토 중이어서 부실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금융감독원이 7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3월말 기준 국내 은행의 가계대출 부실채권 비율은 0.71%로 지난해 말보다 0.11%포인트 높아졌다. 이는 2007년 3월(0.71%) 이후 5년래 최고치다. 아파트 중도금처럼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에게 일괄적으로 이뤄지는 집단대출 연체율은 1.8%로 지난해 말보다 0.45%포인트 상승했다. 연체 잔액은 1조4000억원에 달한다.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는 집단대출 연체율이 최근의 가계대출 부실채권비율 상승을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소송 당사자들은 중도금·잔금을 내지 않아 기존 재산에 가압류가 걸리고 신용등급 하락 등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이들은 대부분 계약해제 소송과 함께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을 진행해 소송 기간에는 중도금을 내지 않아도 신용상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은 계약자가 승소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의견이다. 만약 패소하면 신용등급 하락, 카드정지 등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연 15~20%의 연체이자도 연체한 시점으로 소급해서 적용돼 막대한 이자를 물어야 한다.
최근 벌어지는 집단소송 중 일부는 누군가가 원고가 될 피해자를 모아 소송을 벌이는 기획소송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소송 참가자들은 소송의 위험도 모르고 뛰어드는 경우가 있다.
인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계약해제 소송을 진행하다 취하한 계약자는 "소송을 시작할 때 중도금·잔금을 안 내도 가압류나 연체이자 없이 법정이자만 낸다고 들었는데 그게 아니었다"며 "소송을 이끄는 일부 운영진이 잘못된 정보를 주는 경우가 있어 소송하는 계약자 중에는 아직도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아파트 집단대출 소송의 근본적인 원인은 부동산경기 침체에 있다. 분양받은 아파트 가격이 주변 시세의 70~80%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오히려 손해보는 상황이 된 게 일차적인 문제다. 또 극심한 경영난 탓에 학교 도로 등 인프라시설을 제 때 제공하지 않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분양할 때 내놓은 장밋빛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건설사의 책임이 무겁다.
하지만 집단대출 소송에서 선의의 피해자가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공신력 있는 정부가 중도금·잔금을 연체하면서 소송을 진행할 경우 어떤 위험이 있는지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소송 계약자들은 은행이나 건설사가 어떤 말을 해도 듣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대출 상담 창구만 만들어도 피해를 줄일 수 있다"며 "어떨 때는 강물로 뛰어들겠다는 사람을 그냥 보고만 있는 심정이 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금융당국은 아직 팔짱만 끼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중도금이나 잔금 (연체)문제는 당사자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정부가 나서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집단대출 연체율이 더 높아지면 그때 가서 다시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중도금·잔금을 연체하면서 소송을 진행하는 계약자 대부분은 내 집 마련을 위해 수년간 고생해온 서민들이다. 이들 수천 가구가 전 재산을 걸고 승소 가능성이 적은 소송에 매달리고 있는데도 피해가 더 심각해져야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는 감독기관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입력 2012.05.0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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