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으로 밀항하려던 김찬경(56) 미래저축은행 회장은 3일 밤 검거될 당시 5만원권으로 현금 1200만원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앞서 지인들을 시켜 우리은행에 예치돼 있던 저축은행 돈 가운데 현금만 130억원가량을 꺼냈다. 검찰은 그가 몇달 전부터 도피를 계획하고, 이 돈을 도피자금으로 쓰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으슥한 포구에 나타난 '회장님'

지난 3일 저녁 8시 경기 화성시 궁평항. 검은색 승용차 두 대에서 남자 다섯 명이 내렸다. 그중엔 모자를 푹 눌러쓴 키 163㎝가량의 50대 남자도 있었다. 이들이 포구에 정박한 어선(漁船)에 오르자, 잠복 중이던 해경(海警) 대원 10여명이 덮쳤다. 선실로 막 들어갔던 50대 남자도 포구로 끌려나왔다. 이 남자는 해경대원들이 "신분을 밝히라"고 요구하는데도 대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원들은 그가 멘 가방에서 5만원권 현금 1200만원과 여권을 압수, 이름이 '김찬경'인 것을 확인했다.

(사진 왼쪽 위)중국으로 밀항하려다 붙잡힌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대표. (사진 왼쪽 아래)가짜 서울대법대생 행세를 했던 김찬경 회장의 이야기가 나온 1983년 2월 17일 본지 기사. (사진 오른쪽)김찬경 밀항선… 김찬경 미래저축회장이 밀항하려고 탔던 배. 김 회장은 3일 오후 9시쯤 배 안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체포 당시 김 회장은 캐주얼 차림에 1200만원의 현 금과 여권을 갖고 있었다.

김 회장은 해경에 가서도 "(밀항을 주도한) 이모씨에게 돈을 전달하기 위해 포구에 왔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해경이 "그럼 포구에서 주면 되지 왜 배에 탔느냐"고 추궁하자, "얼떨결에 탔다"고 둘러댔다고 한다. 신원조회 과정에서 그의 신분이 들통났다. 해경은 5일 낮 김 회장의 신병을 검찰에 넘겼다.

해경 조사 결과 김 회장은 어선을 타고 공해상으로 나간 뒤 화물선으로 갈아타고 중국에 갈 계획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밀항을 주선한 이모씨는 필리핀에서 사업을 하던 인물로 김 회장과 금전거래가 있던 사람이라고 해경은 말했다. 해경은 이씨가 작년 말쯤부터 김 회장을 밀항시키기 위해 밀항 장소와 선박을 물색했고, 김 회장 측과 논의를 해온 것 같다고 말했다.

◇CNK, 서미갤러리, SK… 대출 때마다 구설수

김 회장은 1980년대 후반 땅을 사서 건설업체와 함께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는 지주(地主) 공동개발 방식으로 돈을 벌었다고 한다. IMF 외환위기 당시 미래저축은행(당시 대기상호신용금고)을 인수하면서 금융업에 진출했다. 충남 예산저축은행, 서울 삼환저축은행을 잇달아 인수하며 미래저축은행을 자산 규모 1조7549억원, 업계 7위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작년부터 구조조정대상으로 거론됐다.

돈 세는 기계 어디로 가져가나… 6일 오후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회장이 200억원을 빼돌려 130억원의 현금을 지인들에게 10억원씩 나눠 보관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가운데, 미래저축은행 서울 서초점 직원들이 지폐계수기를 급히 차에 싣고 있다.

김 회장은 최근 몇년 사이 석연치않은 대출과 투자로 여러 번 구설수에 올랐다. 아프리카 카메룬의 다이아몬드 매장량을 부풀려 주가를 조작했다는 광산 개발업체 CNK에 거액을 투자했다. 2009년 CNK 지분 4%, 235만주를 보유해 2대 주주가 됐는데, 이후 페이퍼컴퍼니 두 곳 이름으로 50만주를 추가로 매입했다. 페이퍼컴퍼니 매입분은 금융당국에 신고를 하지 않아 올 초 당국의 경고를 받았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주식을 몰래 숨겨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그는 오리온그룹 비자금 사건에 연루됐던 서미갤러리에 2010년 2월 미술품과 부동산을 담보로 285억원을 대출해줬다. 담보가 된 미술품은 오리온그룹 위장 계열사인 아이팩이 보관 위탁한 작품이다.

그는 2008~2010년 사이 최태원 SK회장에게 차명(借名)으로 동일인 대출 한도를 어기고 1000억원가량을 대출해줬고, 종합편성채널인 '채널A'에 46억원, 'MBN 매일방송'에 15억원을 투자했다.

◇가짜 서울법대 학생

자수성가했다고 알려졌을 뿐, 그의 이력을 제대로 아는 업계 관계자는 드물다.

그는 1980년대 초 가짜 서울법대생 행세를 하면서 서울법대 교수를 주례로 세워 명문여대 졸업생과 결혼식을 했다. 서울대 검정고시 출신 학생대표, 검정고시 출신 법대복학생 모임인 '법우회' 멤버로 활동하는 등 학내 활동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해 당시 서울법대생들은 그가 가짜 학생인지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가정교사를 했던 집을 담보로 융자를 받기도 했는데, 1983년 1월쯤 졸업앨범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짜 학생임이 발각됐고, 경찰에도 적발됐다. 그는 실제론 중졸 출신으로 군복무를 하면서 만난 진짜 서울법대생과 친해져 '가짜 법대생' 행각을 벌인 것으로 당시 경찰 수사에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