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산업이 시공한 이순신대교 주경 사진.

27일 전라남도 광양시 금호동 광양항 국제여객터미널 인근. 여수공항에서 차를 타고 30여분을 달리니 우측 광양만 쪽으로 거대한 콘크리트 탑 2동과 탑 사이에 롤러코스터 레일같이 길게 늘어진 케이블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다리는 국내 최초로 순수 국산 기술로 시공된 현수교인 ‘이순신대교’다. 이날 공사현장은 다음 달 12일 개막하는 ‘2012 여수세계박람회’ 앞두고 임시개통을 하기 위해 막바지 포장작업이 분주한 모습이었다.

전남 광양시 금호동과 여수시 묘도를 잇는 2260m의 왕복 4차선 다리인 이순신대교는 콘크리트 주탑 높이(270m)가 세계 최고다. 주탑 높이가 서울 여의도의 ‘한화63시티’(63빌딩·249m)보다 높다. 현수교 시공 기술의 핵심인 주경간장(주탑과 주탑 사이의 거리)은 1545m으로 일본 아카시대교(1990m), 중국 시호우먼교(1650m), 덴마크 그레이트벨트교(1624m)에 이어 세계 4번째다. 현수교는 주경간장이 멀면 멀수록 기술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순신대교 위치도.

◆ 첫 '한국형 현수교', 세계 6번째로 완전 기술 독립

현수교는 주탑과 주탑을 케이블로 연결하고, 케이블에서 수직으로 늘어뜨린 강선(Wire)에 상판을 매다는 방식의 교량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와 한국의 광안대교가 대표적이다.

현수교는 일정 폭마다 콘크리트 기둥(주탑)을 세워줘야 하는 일반적인 다리에 비해 주탑이 최소화되기 때문에 외관미가 뛰어나고 선박의 운행에도 문제를 끼치지 않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건설 작업이 힘들다는 것이다. 현수교는 해상 교량 가운데 시공과 설계기술의 난이도가 가장 높은 다리다. 세계적으로 현수교를 자국 기술로 지을 수 있는 국가는 미국·중국·일본·영국·덴마크 등 5개국뿐이다.

이순신대교의 주탑 높이는 세계 최고다.

국내에는 이미 남해대교·광안대교·영종대교·소록대교 등 4개의 현수교가 있지만, 모두 외국의 기술과 장비 및 기술진에 의존해 시공됐었다.

대림산업의 서영화 이순신대교 현장소장은 “이순신대교 이전의 현수교는 총 공사비의 10%가 외국으로 빠져나갔다고 보면 된다”며 “특히 시공 단계 중 가장 최 난이도의 케이블 가설을 국내 기술로 할 수 있게 돼 약 200억원의 기술 수입 대체효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 신(新)공법 총동원, "일반 시공법보다 공사기간 50% 단축"

100% 국산 기술·인력으로 시공된 이순신대교는 대림산업이 자체 개발한 신공법이 다수 적용됐다.

현수교 시공의 핵심인 케이블 설치 작업에는 ‘에어 스피닝’(Air Spinning)이 적용됐다. 이는 자동차 바퀴 모양의 활차(줄을 걸어서 회전할 수 있도록 만든 홈이 파인 바퀴)가 5.35mm 두께의 강철선 4가닥을 가지고 광양-주탑-주탑-묘도 순서로 반복적으로 오가는 방식으로 케이블을 이었다. 이 활차는 이순신대교의 케이블 작업을 하는 동안 광양-묘도를 총 3200회 왕복했다.

이순신대교 야경 모습.

또 공사기간이 많이 소요되는 주탑 시공을 위해 대림산업은 ‘슬립 폼’(Slip Form) 공법을 적용해 일반적인 콘크리트 주탑 시공 기간의 50% 수준인 11개월 만에 공사를 끝냈다. 주탑 높이가 254m인 덴마크의 그레이트벨트교가 주탑 공정에 30개월 걸린 것을 감안하면 절반도 안 되는 시간에 공사를 마친 것이다. 이순신대교 주탑 건설에 쓰인 이 공법은 콘크리트 거푸집을 떼었다 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유압 잭을 사용해 거푸집을 자동으로 상승시키는 방식으로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방식이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주탑이 상부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기 때문에 콘크리트 타설을 위한 거푸집의 모양은 계속 달라져야 했다”며 “주탑 가설의 오차를 최소화하기 위해 레이저 및 위성 GPS를 이용해 24시간 정밀 측량을 했다”고 말했다.

이밖에 교량 상판이 강풍·태풍에 흔들리지 않도록 ‘보’(girder·건설 구조물을 떠받치는 보)를 비행기 날개와 같은 유선형으로 설계한 점, 케이블의 강도를 세계에서 가장 세게 만들었다는 점도 이순신대교가 세계 교량 건설 시장에서 호평받은 신공법이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이순신대교에 일본, 중국, 독일, 스위스, 터키, 싱가포르 등 세계 토목학계 관계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며 “설계 단계부터 수시로 현장을 방문해 현재까지 약 1만5000여명이 현장을 다녀갔다”고 말했다.

주탑의 높이는 한화63시티보다 높다.

◆ 대림산업, “50조 세계 교량시장 진출 교두보 세워”

이순신대교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2조원대를 넘어설 전망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순신대교로 인해 인근지역 생산유발효과 1조8734억원, 부가가치유발효과 3494억원, 고용창출효과 2만6192명이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먼저 여수국가산업단지와 광양국가산업단지간의 물동량 수송이 간편해지면서 물류비용 및 시간 소요가 줄어들고, 광양만권에 대한 설비투자 및 관광개발 여건이 개선될 전망이다. 이순신대교가 완성되면 두 국가산업단지간의 이동거리가 60km에서 10km로, 이동시간은 80분에서 10분으로 단축된다.

KDI의 자료에 따르면 이순신대교는 하루 평균 5만2000~6만2000대의 차량이 이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세계 정상급 기술로 이순신대교 건설이 성공리에 마쳐감에 따라 약 50조원 규모의 해상 특수교량 시장에 국내 건설사가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는 평가다.

대림산업 김윤 부회장은 “최근 유럽·일본 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에서도 해상 특수교량 발주가 많이 나오고 있다”며 “대림산업은 이순신대교를 통해서 완성한 한국형 현수교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 해상 특수교량에 적극적으로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