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명장이 만드는 명란젓의 맛은 어떨까. 염도 7~8%의 기존 명란젓에 비해 염도를 4%로 낮춘 그의 명란젓은 지나치게 짜지 않은 편이다. 또 청주를 넣어 만들어, 먹으면 입 안에서 청주향이 살짝 감돈다. 장 명장이 오랜 기간 연구를 거쳐 개발한 독자적인 레시피다.

명란젓은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의 음식

"현재 명란은 미국과 러시아를 합쳐 연간 5만t이 생산됩니다. 알 개수로 따지면 2억개로 엄청난 양이죠. 이 중 일본인이 4만5000t을 소비하고 나머지 5000t을 한국인이 먹습니다. 이처럼 일본이 명란 최대 소비국이지만 사실 명란을 먼저 먹기 시작한 곳이 우리나라예요. 조선시대 명태라는 이름이 처음 생겼고 이후 자연스럽게 명란젓도 만들어 먹게 됐죠. 조선 말 개화기 때 일본 사람들이 국내에 많이 들어오면서 명란젓의 맛을 안 후 자국으로 가져가기 시작했어요. 이후 일본에서 명란젓이 다이어트식품으로 알려지면서 전국적인 인기를 끌고 있죠. 명란젓은 일본말로 '가라시멘타이코'라 하는데 현재 일본 후쿠오카 지역의 명산품으로 손꼽힙니다. 이곳에선 매년 '가라시멘타이코의 날'이란 지역 축제도 열리고 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탄생한 명란젓이 일본의 토산품으로 자리 잡은 것이 안타까웠다. 한국에서 명란젓이 왜 인기가 없는지 분석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일본보다 명란젓 소비가 낮은 이유는 크게 3가지더군요.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트륨 섭취에 상당히 민감합니다. 이 때문에 짠 젓갈을 잘 안 먹죠. 또 젊은 사람들 중에는 명란이 비리다는 사람이 많아요. 게다가 알 종류인 명란은 콜레스테롤이 높아 건강에 나쁘다는 잘못된 상식이 퍼져 있어 국내 소비가 적었죠. 그런데 조사해보니 강원대의 한 교수가 명란에는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오히려 혈전용해, 고혈압 예방 등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나머지 두 가지 단점을 개선해 국내에도 명란젓을 대중화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는 짜지 않고 비린내도 없는 신개념의 명란젓을 만들기 위해 수년간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청주로 빚어낸 저염명란’이다. 얼핏 생각하면 저염명란은 소금만 덜 넣으면 될 거 같지만 실제로는 간단치가 않다. 소금을 너무 적게 넣으면 알이 죽처럼 다 퍼져버린다. 반대로 소금을 너무 많이 넣으면 알이 떡처럼 뭉쳐진다. 또 다른 문제도 있었다. 염도를 낮추면 그만큼 유통기한이 짧아진다. 보통은 염도 12% 이상 유지해야 합성보존료를 넣지 않아도 유통기한 6개월을 유지할 수 있다.

그는 숱한 실험 끝에 업계 최저인 4%의 저염명란을 개발했다. 최대한 염도를 낮추면서도 명란 고유의 알갱이 입자를 살린 독자적인 기술이다. 그는 또 명란젓을 맑은 청주를 기본으로 한 조미액에 담가 72시간 저온 숙성하는 방식으로 만들어 비린내도 없앴다. 이 같은 제조기술력을 인정받아 그는 지난해 대한민국 수산제조분야 최초의 명장으로 선정됐다.

‘청주로 빚어낸 저염명란’은 기존 명란젓의 단점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제품이다. 반면 유통기한은 10일로 짧다. 이 때문에 그의 명란젓에는 오랜 기간 두고 먹으려면 반드시 냉동 보관하라는 설명이 붙는다. 명란젓을 냉장실에 보관하면 보름까지는 괜찮으나 이후에는 썩거나 변질될 수 있다.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명란젓은 염도 7~8%에 합성보존료를 넣어 유통기한이 6개월로 길다. 그에 비하면 ‘청주로 빚어낸 저염명란’의 유통기한은 턱없이 짧지만, 오히려 저염도와 합성보존료 무첨가라는 장점으로 국내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홈쇼핑 대박상품으로 떠오르면서 3월부터 전국 이마트에도 입점했다.

장 명장은 현재 수산제조분야의 최고봉으로 손꼽히지만 원래 경북 청도군 산골마을 출신이다. 과거 그가 부산의 국립부산수산대학교(현 부경대)를 가겠다고 하자 아버지께서 ‘뱃사람은 안 된다’며 크게 반대하셨다고 한다. 그는 배 타는 일이 아니라 수산물을 가공하는 것이라고 설득한 끝에 수산대에 들어갔다. 대학 졸업 후 그는 1973년 대한수산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국내 연안 수산물을 가공해 주로 일본으로 수출하는 기업이었다. 여기서 그는 3년간 어묵 만드는 일을 배웠다. 그러다 삼호물산으로 스카우트됐다.

“당시 삼호물산은 국내 명태유통업계에서 첫째 손가락에 뽑혔어요. 사업을 유통에서 생선가공분야까지 확장하면서 제가 뽑히게 됐죠. 15년간 명태, 대구 등 주로 원양 수산물을 가공했어요. 그때 명란을 가공하러 강원도에도 처음 올라가봤죠.”

이때부터 명란을 본격적으로 다루게 된 그는 퇴사 후 1993년 명란전문기업 덕화푸드를 설립했다. 그리고 현재 연매출 200억원대 기업으로 키워냈다. 덕화푸드는 꾸준한 기업 성장을 기록하며 지난해 부산시로부터 고용우수기업으로 표창도 받았다. 그는 회사를 운영하며 여러 가지 어려움도 겪었지만 철저한 신용관리로 지금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신용은 거울입니다. 거울은 한 번 깨지면 못쓰듯 신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기간 주로 일본사람들과 거래해오다 보니 신용의 중요성을 더욱 몸소 깨달았죠."

장 명장은 업계에서 신용 좋기로 평판이 나 있다. 회사 설립 초기 임대해 쓰던 공장건물 소유주의 변덕으로 3개월 만에 급히 다른 공장으로 이전해야 했을 때, 그의 신용을 보고 부산은행에서 흔쾌히 거금을 내줬다. 이전 직장에서 거래했던 일본인 영업직원이 그를 잊지 않고 있다가 덕화푸드에 거래를 요청한 것도 그의 신용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때 일본인 영업직원이 제게 요청한 물건 거래량이 상당했어요. 당시 작은 공장건물을 빌려서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그 물량을 맞출 자신이 없었죠. 그래서 지인을 소개시켜줬는데 잘 안 됐어요. 그리고 다시 제게 기다려 줄 테니 공장건물을 리모델링해 자기들이랑 거래하자고 하더군요."

그 한 마디만 믿고 거금을 투자해 공장을 새로 설비하기에는 사실 리스크가 컸다. 그렇지만 그는 흔쾌히 답했고 공장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했다.
"일본 바이어들이 와서 공장을 둘러보고는 대단히 흡족해 하더군요. 그리고 이후부터는 덕화푸드를 믿고 물건을 가져갈 테니 자기들에게만 납품하라고 했죠."

그때부터 그는 일본 수출 사업에 주력했다. 일본시장에서 반응이 좋아 2001년 300만불 수출의 탑을 시작으로 2002년 500만불, 2004년 1000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1000만불 수출탑은 명란 단일품목으로는 국내 최대 수출이었다. 그의 명란젓 맛은 일본 최대 유통기업인 세븐앤아이홀딩스까지 전해지면서 2009년 단독 PB(유통업체 자체 브랜드 상품) 계약을 체결했다. 현재 세븐앤아이홀딩스가 운영하는 일본 전역의 8000여개 마트에서 그의 명란젓이 판매된다. 이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일본은 명란제조회사만 160여개가 있을 정도로 명란젓산업이 발달해 있다. 그런데 한국의 중소기업에서 만든 명란젓이 일본 최고의 맛으로 떠오른 것이다.

“최근 세븐앤아이홀딩스가 미각분석전문업체에 의뢰해 신맛, 단맛, 짠맛 등 일본 명란젓 제품들의 미각분포를 전문적으로 분석했습니다. 분석 결과 일본의 쟁쟁한 제품들을 제치고 저희 명란젓이 가장 맛있다고 나왔죠. 이 때문에 현재 세븐앤아이홀딩스는 일본에서 제일 맛있는 명란을 판다고 광고하고 있습니다(웃음).”

“명란 건강식품도 개발하겠다”

그는 '명란젓의 종주국'이란 지위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부산 신라대학교와 기술연구소를 공동으로 운영하며 명란의 유효성분 분석과 함께 젊은 사람들도 즐겨 먹을 수 있는 명란 레시피 개발에 힘쓰고 있다. 지금까지 명란스파게티 소스, 명란 고추장 등 다양한 신제품을 개발했다.
"명란 한 알에는 50만~150만개의 작은 알이 들어 있습니다. 이게 나중에 각각의 명태새끼로 부화되죠. 하나의 생명체가 되려면 필수 아미노산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 이 작은 알갱이들이 전부 필수 아미노산 덩어리예요. 이처럼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한 명란은 고단백식품으로 신이 내려준 웰빙 식품이죠. 이 때문에 현재 신라대와 함께 명란의 다양한 유효성분을 밝혀내고 앞으로 건강식품에도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 중에 있습니다. 이로써 명란의 좋은 점을 세계에도 널리 전파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