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동 파이시티 복합유통센터 조성사업이 또다시 논란의 한 가운데 섰다. 시행사인 파이시티의 이정배 전 대표가 이명박 정권 실세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에 파이시티 인허가를 둘러싸고 거액의 금품 로비를 했다는 비리 의혹이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에도 큰 타격이 될 사건이다.
이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양재동 화물터미널 터는 원래 주인인 진로그룹이 파산했고 파이시티의 시공사였던 대우자동차판매와 성우종합건설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다. 지난해에는 법정관리인이 출근길에 피습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우리은행 팀장 2명은 대출과 관련해 수십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이래저래 우여곡절이 많은 이 사업이 올해 포스코건설의 시공사 선정으로 탄력을 받는 듯 했지만 이번 비리 의혹 사건에 또다시 발목이 잡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양재동 화물터미널 터와 얽힌 불운했던 과거를 떨쳐내고 화려하게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원래 주인 진로그룹, IMF 외환위기로 파산
양재동에 화물터미널이 들어선 것은 1989년이다. 서울시는 도심 주차난을 해소하기 위해 용산에 있던 시외버스터미널을 서초동 한국트럭터미널 자리(현 반포 고속버스터미널)로 옮기기로 했다. 한국트럭터미널의 모회사이던 진로그룹은 트럭터미널을 양재동으로 이전하기로 하고 1987년 하반기부터 양재동에 9만6000㎡의 부지를 확보해 터미널을 신축했다. 1989년 9월에 트럭터미널 이전이 마무리됐다. 1991년 한국트럭터미널은 진로유통과 합병, 진로종합유통으로 출범했다.
진로그룹은 1988년 1월 당시 장진호 회장이 취임하면서 주류회사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유통, 백화점, 건설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장 회장은 취임 당시 9개였던 계열사를 1997년 22개까지 확장했다가 IMF 외환위기를 맞아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졌다. 진로종합유통은 1998년 화의에 들어갔다가 회생하지 못하고 2003년 파산 선고를 받았다. 진로그룹 계열사들은 회사별로 뿔뿔이 매각됐고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는 2004년 1월 법원 경매를 통해 파이시티의 전신인 경부종합유통에 넘어갔다.
◆ 인허가 지연으로 시공사 대우자판, 성우종합건설 워크아웃
파이시티는 터미널 부지를 용도 변경해 유통타운으로 바꿀 계획을 세우고 2004년부터 시행사로서 복합유통센터 건설을 추진했다. 양재동 화물터미널 터는 지리적 위치가 좋아 유통 물류 핵심 지역으로 떠오른 곳이어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 사업은 대우자동차판매와 성우종합건설이 시공을 맡았다. 관행대로 시공사가 지급보증을 하고 865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받았다. 우리은행이 금융주간사를 맡았다. 우리은행 농협 교원공제회 등 대주단이 4750억원을 PF로 대출했고 나머지 3900억원은 하나UBS자산운용이 부동산 펀드로 조달했다. 부동산 펀드 중 우리은행은 1900억원어치를 특정금전신탁으로 고객들에게 판매했다.
하지만 당초 2007년까지 2년이면 끝난다던 건축계획 승인은 2009년 11월이 돼서야 나왔다. 사업이 이렇게 지연되면서 이자 부담은 계속 늘어났고 업친데 덮친격으로 부동산경기는 침체곡선을 그렸다. 시행사인 파이시티는 이자 부담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보증을 선 시공사가 이자를 대납했다. 그러다가 결국 대우차판매와 성우종합건설은 2010년 4월과 6월 차례로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 포스코건설 시공사로 선정, 연구동 1개 매각되면 착공
대우차판매와 성우종합건설의 워크아웃으로 사업이 지지부진했고 시행사 대표의 횡령사건까지 터지자 채권단은 2010년 8월 법원에 시행사 파산신청을 냈다. 시행사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추진으로 맞섰고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1월 법정관리가 개시됐다. 지난해 5월 시공사 재선정 작업에 들어갔고 포스코건설이 지난 3월 시공사로 최종 확정됐다.
포스코건설과 우리은행은 향후 완공될 업무시설(오피스 1개동, 연구동 1개)과 판매시설, 물류 시설 중 업무시설과 판매시설을 선매각해 건설자금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 업무시설과 판매시설이 모두 선매각되면 착공에 들어가기로 했다.
지난 19일 양재 파이시티 복합유통센터 신축 예정 시설에 대한 공개 매각이 이뤄져 판매시설은 STS개발이, 오피스 건물은 한국토지신탁이 각각 우선매수 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판매시설에는 신세계백화점, 홈플러스, CJ 등이 입점할 예정이다. 오피스 건물은 지상 35층에 연면적 38만1185㎡ 규모로 2015년 10월 완공 예정이다. 매각 예정가는 판매시설 9170억원, 오피스 건물 4565억원 등 총 1조3700억원 정도다.
앞으로 업무시설에 속해 있는 나머지 연구동만 매각되면 착공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물류시설에 대해서는 다음달 2~3일 매각 주관사 선정 공고를 낼 예정이다. 업무시설과 판매시설 매각 계약금 4000억원이 들어오면 계약금의 30%는 채권단에게 일부 변제하는 데 사용되고 나머지는 공사대금으로 쓰인다.
◆ '오욕의 땅' 악명 떨쳐낼까
김광준 파이시티 법정관리인은 "연구동 건물에 대한 인수희망자를 접촉하고 있는 와중에 이런 일(최시중 로비 사건)이 터져서 안타깝다"며 "연구동 매각이 좀 늦어질 수는 있지만 잘 팔릴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은행 관계자도 "김 관리인은 과거 지하철2호선 동대문운동장역 근처 쇼핑몰 '굿모닝시티' 법정관리 때 이 회사 총괄전무로 굿모닝시티의 성공적 회생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어서 사업이 잘 추진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앞서 김 관리인은 지난해 5월 출근길에 괴한의 습격을 받아 흉기로 7군데나 찔리는 사고를 당했다. 또 우리은행 신탁사업단의 부동산금융팀장이었던 천모씨와 후임 정모씨는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에게 로비했던 이정배 전 파이시티 대표로부터 수십억원의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양재동 복합유통단지 개발은 또다시 소용돌이 한복판에 서있다. 시공사로 선정된 포스코건설에 대해서도 특혜 시비가 일고 있다. 부동산 불황기에 나온 초대형 개발사업인 만큼 수주전에서 치열한 경쟁이 예고됐지만 입찰에는 포스코건설이 단독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이정배 전 파이시티 대표는 지난해 11월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진정서에서 우리은행과 포스코건설이 불법적으로 사업권을 탈취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은 "시행사인 파이시티를 교체해 사업을 효율적으로 재추진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일축했고 포스코건설도 "시공사 선정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됐고 사전에 우리은행 등과 공모를 한 일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치권과 관련한 비리 의혹 사건은 항상 어디로 불똥이 튈지 모르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양재동 복합유통단지가 '오욕의 땅'이라는 악명을 떨쳐내고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