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모(40)씨는 최근 연금저축보험에 가입하기 위해 한 은행을 찾았다. 은행 상담창구 직원은 '최고 연 167만원까지 돌려받으실 수 있습니다'라는 제목을 단 A보험사 상품 팸플릿을 꺼내 보여줬다. 그러나 A4 용지 두 장짜리 팸플릿 어디에도 개인연금을 들었다가 중간에 해약하면 어떻게 되는지, 수익률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창구 직원에게 연금에 들겠다고 하자 그제야 좀 더 자세한 상품설명서를 보여줬다. 수익률이 얼마인지 궁금했는데, 수익률이란 말은 없고 '적립이율 4.5%'라는 애매한 용어가 쓰여 있었다. 그게 뭔지 물어보니 "공시이율"이란 설명이 돌아왔다. 역시 무슨 뜻인지 모를 말이었다. 김씨는 "전부 한글로 쓰여 있는데도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맨 뒷장 하단에는 '계약자가 낸 보험료는 보험회사 운영에 필요한 경비 등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중도에 해지하면 그때까지 낸 돈보다 적게 받거나 아예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엄청난 내용인데, 2㎜ 크기의 깨알 같은 글씨로 쓰여 있었다.
◇연금상품 설명서는 암호문
금융회사들은 연금상품을 팔 때 목표 수익률이나 보장 혜택 등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용만 강조하고, 수수료 등 불리한 내용은 대충 넘어간다. 보험사가 파는 연금상품의 경우가 특히 심하다. 최근 보험사를 인수한 금융회사의 한 고위 임원은 "보험사의 상품설명서는 일반 소비자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암호문이다. 그래서 설계사가 설명을 해준다며 중간에 끼어야 하고, 수수료도 덩달아 높아지는 유통구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품에 설명까지 부족한 채로 가입하게 되니 나중에 민원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2010년 변액연금보험 때문에 발생한 민원은 2418건으로 생명보험사 전체 민원의 절반에 가깝다. 물론 보험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금감원이 올해 초 은행·보험·증권사에 퇴직연금을 가입한 근로자 108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퇴직연금에 대한 불만사항으로 47%가 "용어가 너무 어렵다"는 것을 꼽았다.
연금 선진국에선 가입 시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은 보험사들에게 철퇴가 내려진다. 미국에선 1999년 푸르덴셜생명과 메트라이프가 변액연금보험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팔았다가 각각 26억달러, 17억달러의 배상금을 물었다. 정재욱 세종대 교수는 "아직 연금상품을 판매한 지 20년이 채 안 돼 문제가 적어 보이지만, 5~10년 뒤 실제 연금을 받게 되는 시점이 되면 집단 민원이 발생할 개연성이 높다"고 말했다.
◇수익률 알 수 없는 연금상품 공시 정보
개인연금보험 가입자 최모(39)씨는 최근 7년 가까이 월 20만원씩 부은 연금 수익률이 궁금해 B생명보험 인터넷 홈페이지를 찾았다. 공인인증서를 대고 자신이 가입한 연금상품 성적표를 확인해 보니 '83회, 해약환급금은 1818만원, 해약환급률은 109.5%, 세액 378만원'이라고 떴다.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보험사 콜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상담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 해약하시면 저희가 1818만원을 드릴 수 있는데요. 근데 세금으로 378만원을 떼고 드립니다."
요약하면 최씨가 지금까지 낸 원금은 1660만원(20만원×83개월)이고, 원금 대비 총 9.5% 수익을 냈는데, 지금 해약하면 1440만원밖에 돌려받지 못해 원금보다 220만원 손해를 본다는 뜻이었다.
금융당국이 최근 변액연금보험의 수익률 공시 체계를 소비자 친화적으로 바로잡겠다고 했지만〈본지 4월 19일자 B1면〉, 불성실한 공시는 변액연금보험만이 아닌 연금상품의 전반적인 문제다. 최씨가 가입한 유형의 개인연금보험은 현재 17개 생명보험사에서 112개 상품이 운용되고 있다.
하지만 상품 간 수익률 비교는 불가능하다. 보험업계에서만 쓰는 '공시이율(公示利率)'이라는 말로 진정한 수익률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입자가 낸 돈의 8~10%를 각종 경비(사업비) 명목으로 떼고 남은 돈에 대한 수익률만 계산한 것이기 때문에 수익률을 과대 포장하는 문제가 있다. 게다가 회사마다 사업비로 떼는 돈이 달라 내가 든 연금이 다른 상품에 비해 투자수익을 잘 내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그래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