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고급차 브랜드인 벤츠가 인터넷 쇼핑몰(오픈마켓)에서 판매를 시작한 것에 대해 자동차 업계와 마케팅 전문가들 사이에 ‘적절하지 못한 전략’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서 명품 브랜드로 꼽히는 벤츠를 중저가 상품을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할 경우 브랜드 이미지가 심하게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옥션

옥션은 지난 9일 메르세데스-벤츠 공식 판매사인 더클래스효성과 온라인 마케팅을 함께하기로 하고, 온라인 장터에서 벤츠 4개 차종을 판매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옥션에서 판매되는 차종은 ‘C200 CGI 블루이피션시 AV(5320만원)’, ‘C220 CDI 블루이피션시(5370만원)’, ‘E300 EL(6880만원)’, ‘GLK220 CDI 4MATIC 블루이피션시(5890만원)’ 등 총 4종이다.

유지수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는 “옥션에서 벤츠를 파는 것은 애써 쌓은 브랜드 가치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라면서 “앞으로 경쟁차인 BMW와의 격차가 더 벌어질 것 같다”고 평가했다.

E300 EL

◆ 명품車 브랜드 ‘벤츠’, 중저가 취급하는 온라인 판매 ‘굴욕’

벤츠는 자동차 중에 ‘명품 브랜드’로 꼽힌다. 명품은 최고 부유층을 겨냥해 희소성이 있는 제품을 한정된 장소에서 판매하는 특징이 있다. 명품 소비자들은 가격에 크게 민감하지 않고, 오히려 가격을 가치의 척도로 인식하고 있어 고가일수록 잘 팔리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옥션과 같은 온라인 오픈마켓이 벤츠와 같은 명품 브랜드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최지원 SK마케팅앤컴퍼니 그룹장은 “명품 브랜드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희소성’인데 온라인의 특성인 ‘개방성’은 이런 원칙에 근본적으로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최 그룹장은 “상당수 명품 브랜드는 온라인을 정보 제공 도구로 이용할 뿐 직접적인 유통 경로로 활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최고급 명품들은 자체 플래그숍(대형매장)이나 백화점, 면세점 등 한정된 매장에서 판매한다는 룰을 지키고 있다. 에르메스 같은 최고급 가방 브랜드나 파텍 필립 같은 최고급 시계 브랜드가 온라인에서 제품을 공식적으로 판매하지 않는 것이 그 예다. 한 명품업체 관계자는 “온라인 쇼핑몰을 통한 제품(명품) 판매를 고려해 본 적이 있지만, 오히려 브랜드 이미지를 훼손시킨다고 판단이 돼 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장기적으로는 매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명품은 소비자가 직접 상품을 만져보면서 “중저가 제품과는 다르다”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이런 ‘체험’이 생략되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오세조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인터넷 오픈마켓은 명품이 갈 채널은 아니다”라면서 “이런 마케팅을 계속 한다면 브랜드 이미지에 좋지 않다”고 말했다.

C200 CGI 블루이시피션시 AV

◆ 온라인 車판매 실패 사례 눈여겨 봐야

전문가들은 기존에 명품을 온라인에서 판매해서 성공한 예가 드물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동차 업계의 경우만 봐도 과거 미국 포드와 크라이슬러, 일본 혼다, 스바루 등 중저가 차량을 대량생산하는 업체가 홈쇼핑을 통해 차를 판매한 적이 있지만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은 예는 드물다.

지난 2월 CJ홈쇼핑에서 인사이트의 판매 방송을 한 혼다는 1시간 만에 2700건의 시승 예약을 받아 업계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홈쇼핑 판매 이후 실적은 오히려 나빠졌다. 방송을 한 2월 혼다의 수입차시장 점유율은 5.18%로 1월(3.74%)보다 올랐지만, 3월에는 오히려 2.8%로 떨어지며 홈쇼핑 판매 이전보다도 시장점유율이 낮아졌다.

독일 고급차가 TV나 인터넷 홈쇼핑서 팔리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C220 CDI 블루이피션시

◆ 벤츠 수입사와 판매사 갈등 조짐도

업계에서는 이번 프로모션이 벤츠(더클래스 효성)의 판매 부진 때문에 기획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1만9534대를 판매하며 수입차 시장점유율 18.60%로 2위를 차지했던 벤츠는 올 들어 3월까지 누적 시장 점유율이 14.98%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1위인 BMW가 22.18%에서 22.76%로, 3위인 폴크스바겐도 11.84%에서 12.57%로 시장 점유율을 높인 것과 대조적이다. 4~5위인 아우디와 도요타도 각각 9.85%에서 11.62%로, 4.78%에서 9.28%로 시장 점유율을 높였다.

수입차 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벤츠는 가격 할인 등을 최소화하며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자부심을 가장 잘 지켜왔다”면서 “최근 판매 부진을 겪으며 딜러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져 이런 일이 일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MBK) 관계자는 “옥션과 씨티카드의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마케팅”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사전에 더클래스효성이 MBK와 조율을 하지 않은 프로모션”이라고 선을 그었다.

토마스 우르바흐 MBK 대표는 12일 B클래스 출시발표회에서 “딜러들이 자유롭게 경쟁하면 한국고객에게도 많은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면서도 “일부 딜러가 개별 이익을 위해 전체브랜드에 해를 입히는 상황을 만들 경우, 해당 딜러에 제재를 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프로모션에서 옥션은 고객의 주문이 들어오면 더클래스효성에 통보하고, 더클래스효성은 영업 담당자를 지정해 전시장 방문과 차량 시승을 돕는다. 이들은 고객이 가격의 최대 40%에 해당하는 300만~2500만원의 계약금을 씨티카드로 결제하면 12개월 무이자 할부 혜택과 엔진오일 및 오일필터를 평생 무료로 교환해주는 혜택을 제공한다.

GLK220CDI 4MATIC 블루이피션시

◆ 명품이 온라인을 조심하는 네가지 이유

명품업체들이 인터넷에서 제품을 팔지 않는 이유는 첫째 충성 고객의 집단 반발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만의 상품'을 갖기 위해 명품을 산 고객이 '짝퉁 판매', '병행수입' 등의 이미지를 가진 온라인 쇼핑몰에서 상품이 유통되는 것을 보면 브랜드 충성도가 떨어질 우려가 크다. 최은정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가 한국심리학회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고급 명품을 소비하는 고객은 온라인을 통해 명품 브랜드의 가치는 인식하지만, 구매 의도는 물론 검색 의도도 갖고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 교수는 논문을 통해 "명품업체는 온라인 판매에 있어 브랜드 관리 차원에서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둘째 기존에 잘 구축된 오프라인 매장 중심의 영업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명품 업체들이 온라인 판매를 꺼리는 이유다. 온라인 매출이 늘어나면 기존 오프라인 판매망의 매출은 줄어들 수 있다. 명품의 주 소비층이 오프라인 매장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기존 판매망이 무너지는 상황이 오면 나중에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온라인 판매로 단기적으로는 판매 증대 효과를 볼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매출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셋째 온라인 유통을 허용하면 가격 붕괴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 역시 문제로 꼽힌다. 고급 브랜드를 유지하기 위해 고가 정책을 유지하는 명품이 온라인에서 유통되면 경쟁 때문에 가격이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 명품 업체들이 오프라인 매장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도 가격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존 소비자 입장에서도 가격 붕괴는 바라지 않는 결과다. 비싼 돈을 주고 산 제품이 나중에 싸게 팔리는 것을 좋아할 소비자는 없다. 오세조 교수는 "온라인에서 싸게 판매하며 '여기 오면 싸니 모두 와서 사세요' 하는 것은 명품 소비자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라면서 "명품이 한정된 물량이나 재고만 한시적으로 싸게 파는 이벤트라면 모르지만 그것을넘어서면 결국 브랜드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넷째 품질이 아닌 가격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장기적으로 회사의 체질을 약화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유지수 교수는 "벤츠가 크라이슬러와 합병했다가 분리하는 과정에서 브랜드 정체성이 흐려졌다는 비판이 많이 나왔다"면서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다 보니 품질과 성능으로 승부를 겨루던 벤츠의 조직 문화에 변화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벤츠를 온라인에서 판매할 경우 판매감소, 가격할인, 브랜드가치하락, 판매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생길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