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주부 박모(40)씨는 남편 이름으로 매월 20만원씩 넣던 연금저축보험을 깼다. 해약을 하면 지금까지 받은 세금 혜택을 모두 반납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그동안 낸 돈이 1140만원이지만, 세금(소득세+가산세)을 떼고 손에 쥔 돈은 884만원으로 이자를 받기는커녕 원금에도 20% 이상 못 미쳤다. 4년 9개월 동안 가입했기 때문에 석 달만 더 유지해도 5년이 넘어 가산세는 물지 않아도 되지만 돈이 급했다. 그는 "연금저축 하나는 놔두려고 했는데 당장 아이들 학원비가 모자라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회사원 전모(41)씨도 2년 넘게 든 연금저축보험을 지난해 8월 해지했다. 급하게 돈이 필요해 어쩔 수 없었다. 월 20만원씩 600만원가량 부었는데 원금의 70% 수준밖에 못 건졌다.

연금저축은 2001년부터 판매된 연금상품으로 대개 10년 이상 적금처럼 돈을 붓고, 만 55세가 되면 그때부터 5년 이상 매달 연금을 받을 수 있게 설계된 상품이다. 이 상품은 연말정산 때 최대 연 400만원까지 소득공제 혜택이 있어 샐러리맨들이 노후 대비용으로 많이 가입한다.

하지만 중도 해약하면 떼이는 돈이 많다. 첫째, 연금을 받기 전에 중도해지하면 그동안 내지 않았던 소득세 22%를 다 내야 한다. 위 사례의 전씨의 경우 이것이 123만원에 달했다. 둘째, 5년 이내에 해약 시 '가산세'라는 이름의, 일종의 벌금을 내야 한다. 그동안 보험료로 낸 돈의 2%인데, 전씨의 경우 12만원이었다. 셋째, 보험사가 경비조(보험설계사 수당 등)로 사업비를 떼 간다. 전씨의 경우 40만원이었다. 세 가지를 모두 합치니 175만원을 공제당한 것이다.

이처럼 불이익이 많은데도 연금저축 가입자 10명 중에 4명은 5년 이내에 해약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으로 10개 대형 생명보험사와 4개 주요 손해보험사 연금저축 가입자 중 6년차(61개월차 납입 기준)까지 보험을 해약하지 않고 유지하는 경우는 56.5%에 불과했다. 나머지 43.5%는 노후 준비보다는 오늘 당장 쓸 돈이 급해 중간에 해약을 한 것이다.

또 연금저축보험 가입자 중 10년 이상 계약을 유지하는 경우는 생보사, 손보사 모두 30%에 그쳤다. 10년 이상 가입해야 연금 소득에 대해 소득세 최저 세율(6%)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데, 10명 중 7명은 그런 혜택을 포기하고 10년 이내에 해약한다는 것이다.

연금저축은 판매 기관에 따라 연금저축보험(보험사), 연금저축신탁(은행), 연금저축펀드(증권사) 등 세 종류가 있는데, 계약 건수가 작년 말 기준으로 576만4000건에 달한다. 이 중 74%는 보험사가 판매한 연금저축보험이다.

금감원의 이번 조사에선 은행(연금저축신탁)과 증권사(연금저축펀드)에서 판매한 연금저축은 제외됐지만, 가입 기간별 해약률 등은 비슷한 추이를 보일 것으로 금감원은 보고 있다.

이처럼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면서까지 연금저축을 중간에 깨는 가입자들이 많지만, 금융 당국은 특별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연금저축의 실제 수익률과 수수료 공시를 강화하고, 연금저축 관련 내용을 통합해서 공시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이 고작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노후 대비 상품인 연금저축을 깨야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가입자들이 많은 만큼 중도 해약 불이익을 줄이는 방안 등도 검토할 단계라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