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모(39)씨는 최근 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해외 유명 골프 브랜드의 드라이버를 30만원에 샀다. 정식 수입품은 40만원이었지만 이 제품은 병행 수입한 제품이어서 가격이 10만원 저렴했다. 병행 수입은 독점 수입권을 가진 회사가 아니라 다른 유통업체가 해외에서 구매해 국내에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김씨는 "가짜가 아닌지 약간 불안하긴 하지만 어차피 똑같은 공산품이라고 믿고 값이 싼 제품을 구입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수입 제품의 국내 판매 가격을 낮추기 위해 병행 수입을 활성화한다는 방침을 밝히자 유통업체들이 발 빠르게 관련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정부와 유통업계는 병행 수입이 확대되면 가격 경쟁이 심해져 물가가 내려가고 소비자 선택 폭도 넓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사후 관리(애프터서비스·AS)나 위조품 유통 우려도 커질 전망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온라인 쇼핑몰을 중심으로 명품·잡화·디지털카메라·화장품·운동화·골프채 등의 병행 수입 제품이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 최근엔 대형마트도 향수·청바지 등 병행 수입 사업에 나섰다. 정부는 현재 의류·잡화·화장품 위주로 3393개 품목이 병행 수입돼, 연간 시장 규모가 1조5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병행 수입 제품의 최대 강점은 가격 경쟁력이다. 이랜드 계열 NC백화점은 명품 브랜드와 수입 화장품 등을 병행 수입해 판매하고 있다. 해외 브랜드 토리버치의 '샐리웨지 힐'은 공식 수입 제품은 51만8000원이지만, 이 백화점에서는 42만9000원으로 17% 저렴하다. 정상가 288만원짜리 펜디 핸드백도 215만8000원으로 70만원 이상 싸게 판다. 대형마트인 이마트는 병행 수입을 통해 3만원대 리바이스 청바지, 1만원대 페라가모 향수를 판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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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행 수입 제품이 저렴한 것은 유통비용을 대폭 줄이기 때문이다. 공식 수입 업체는 마케팅·유통망 관리 등에 많은 투자를 하지만, 병행 수입 업체는 이런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골프 용품 공식 수입 업체의 관계자는 "병행 수입은 공식 수입 업체가 공들여 만든 브랜드 이미지에 '무임승차'해 자기들 마진만 챙기는 구조"라며 "재고 상품이나 품질이 검증되지 않은 제품이 무분별하게 유통될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병행 수입 제품은 가격이 저렴한 대신 공식 AS센터를 이용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실제 2007년 수입차 병행 수입을 시작했던 SK네트웍스는 사업 시작 4년 만에 완전히 손을 뗐다. 당시 취지는 "공식 임포터(수입상)보다 싼 값에 고급차를 들여오겠다"는 것이었지만, 금융 위기로 환율이 크게 올라 가격 유지가 힘들었다. 게다가 소비자들이 '정식 수입차가 아니면 서비스를 제대로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해 병행 수입한 차를 외면했다.

또 해외 브랜드를 무단 도용한 모조품을 병행 수입품이라며 판매하는 업체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실제로 인터넷에는 병행 수입 제품을 샀다가 제대로 AS를 받지 못하거나, "싼 게 비지떡"이라며 상품 품질에 불만을 표시하는 소비자가 많다. NC백화점 노병규 부장은 "정부가 나서서 대형 유통업체 위주로 병행 수입을 양성화하면 품질 및 AS에 대한 소비자의 부정적 인식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병행 수입 제품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병행 수입은 신제품 재고가 많지 않고, 이월 상품을 판매할 때도 많다. 국내 대형마트가 병행 수입해 판매하던 해외 명품관을 잇따라 철수한 것도 기대보다 매출이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 병행 수입

해외 상품의 국내 독점 판매권을 가진 업체가 아닌, 다른 수입 업자가 현지 아웃렛이나 별도 유통 채널로 제품을 직접 구매해 국내에서 판매하는 것. 원래는 기존 수입 업자 권리 보호를 위해 불허했지만, 정부가 수입품 가격 인하를 위해 1995년 11월부터 허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