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IT(정보기술) 업체들이 경쟁사를 견제하고 수익을 늘리기 위한 '특허전쟁'에 돌입하고 있다. 특허소송 제기를 사업 모델로 삼은 지식재산전문관리회사(NPEs)들이 국내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까지 노리면서 한국은 글로벌 특허 전쟁에서 주요 공격 대상국으로 떠올랐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NPEs들이 늘어나면서 글로벌 특허 소송이 크게 늘고 있다. 특허전문 사이트인 페이턴트프리덤에 따르면 NPEs가 제기한 글로벌 특허소송은 2001년 143건에서 지난해 1143건으로 8배 가까이 늘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NPEs는 약 560개로 추정된다.
스마트폰과 발광다이오드(LED) 등 IT 분야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이들 '특허괴물'들은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특허청에 따르면 국내 기업이 직면한 글로벌 특허 소송은 2004년 37건에 머물다가 2007년에 164건, 2008년 153건, 2009년 114건, 2010년 135건, 2011년 159건으로 꾸준히 100건 이상을 기록했다.
국내 기업이 관련된 해외 특허소송 가운데 IT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4년 58.5%에서 2011년 87.7%로 크게 뛰었다. NPEs에 피소된 소송 건수가 가장 많은 상위 10개 기업 가운데 삼성전자는 3위(101건), LG전자가 10위(82건)를 차지했다.
글로벌 특허 소송에서 국내 기업들은 공격 대상이 된 사례가 훨씬 많다. 2004~2011년 진행된 국내 기업이 관련된 글로벌 특허소송 가운데 해외업체로부터 피소된 경우는 전체 891건 가운데 726건(81.5%)에 이른 반면 한국기업이 제소한 경우는 165건(18.5%)에 머문다.
특히 국내 특허권자 승소율은 26%에 머문다. 반면 스위스는 승소율이 85%, 미국은 59%, 프랑스 51%에 이른다. 중국도 특허권자 승소율이 우리보다 높은 33%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허 승소율이 낮다는 것은 특허권의 유효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최근 들어서는 중소 중견 기업을 노린 경우가 늘고 있다. 최근 7년간 국내 기업이 관련된 글로벌 특허 소송에서 39.5%가 중소 기업과 중견기업을 노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1000억원 이상 기업은 특허전쟁 위협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에서 특허업무를 담당하는 한 변리사는 "미국내 소송은 현지 변호사를 통해 이뤄지지만 중소기업들이 시간당 임금이 한국보다 최소 3~4배 이상 받는 현지 변호인을 선임하기 어렵다"며 "NPEs들이 대비가 잘된 대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이런 부분에 취약한 중소·중견기업을 노리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특허 소송은 원고나 피고 입장에서 시간과 비용적 측면에서 모두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특허소송에는 평균 2~3년이 소요되며 법률비용도 따라서 증가하기 때문이다. 유에스뉴스앤월드리포트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평균 100만 달러에 머물던 글로벌 특허 소송에서 발생하는 손실이 2000년대 후반 300만 달러 이상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배상액도 천문학적일 수 밖에 없다. 지난해 9월 미국 법원은 듀폰측이 코오롱이 자신들의 영업 비밀을 침해한 사실을 인정해 9억1990만 달러(약1조원)를 판결했다.
문제는 대응 체제가 미흡하다는데 있다.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에서 해외 특허동향을 조사하는 예산은 0.1%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NPEs들의 공격대상이 대기업에서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으로 확대되고 있지만 해외 특허전쟁 대응 사업은 특허청이 단독으로 맡고 있다. 국내엔 기업의 글로벌 특허 분쟁을 지원하는 전문 변호사와 변리사들이 있지만 주로 삼성과 LG 등 대기업에 한정돼 활동하고 있다. 특히 매출액 1000억원 정도인 중소기업들은 특허전문 대응 인력을 충원하거나 정보 수집에 있어서 한계가 많다.
손수정 STEPI 부연구위원은 "최근 들어 특허 소송은 단순한 특허권 보호를 위한 목적 외에도 거액의 합의금을 노린 경우도 늘고 있다"며 "기업간 소송은 비밀리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현황을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NPEs들이 늘어나면서 특허 분쟁이 하나의 큰 시장으로 커진 것은 분명하다"며 "특허소송에서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국내 기업들이 지재권 보호를 위한 노력과 함께 분쟁의 빌미를 주지 않도록 특허권 부여를 엄격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