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역대 최대 해외수주실적을 올린 건설업계가 올해 들어서는 맥을 못 추고 있다. 국내 건설업체의 텃밭인 중동지역에서의 수주가 지연되면서 최악의 실적을 기록한 것이다.

6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2월까지 국내건설사들의 해외수주 총 25억81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78억5400만달러)보다 67.2% 급감했다. 이는 2008년 이후 해외건설 수주 실적 중 최악이다.

특히 중동지역에서의 수주 실적이 극히 저조했다. 올해 중동지역 수주액은 4억283만달러로 전체 수주액의 15%에 불과했다. 지난해는 48억4079만달러로 전체의 61%를 차지했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중동지역 수주가 감소하면서 전체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다”며 “하지만 중남미 지역은 지난해보다 실적이 개선됐고 아시아 등 나머지 지역에서는 지난해와 엇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준공한 삼성물산의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알 슈웨이핫 S2 민자담수발전 플랜트 전경. 삼성물산은 지난 2008년 세계 최대 발전 플랜트 건설업체인 프랑스 알톰을 물리치고 8억1000만달러에 이 사업을 수주했다.

◆ 정부, “계약 지연 때문…곧 회복될 것”

정부는 ‘중동발 수주불안’에 대해 특별한 이유가 파악되지 않았다며 느긋한 입장이다. 올해 중동지역 수주 실적이 나쁜 것은 연초 계약이 예정된 대형 프로젝트의 막판 협상이 지연돼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의 수주 경쟁력이 악화됐다거나 중동지역 수주 상황이 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일시적인 수주 지연에 따른 현상으로 이달부터는 다시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들어 수주가 확실시된다고 예상했던 대형 프로젝트들의 계약이 줄줄이 미뤄지는 상황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와 일본 스미토모가 발주한 30억 달러 규모의 ‘페트로라빅 2’ 석유화학플랜트 공사는 다수의 국내 건설사가 최저가로 입찰한 가운데 자금조달 등의 문제로 낙찰자 발표가 연기됐다.

또 쿠웨이트의 코즈웨이 도로공사 역시 올 초 계약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깨고 쿠웨이트 내부 문제로 낙찰자 선정이 미뤄지고 있으며 지난해 양해각서를 체결했던 한화건설의 72억달러 규모 이라크 국민주택건설 프로젝트도 주택 설계 등 세부 사항에 대한 합의가 늦어지면서 계약이 지연되는 모습이다.

2월 말 기준 연도별 해외건설수주액(자료: 해외건설협회·단위:억달러)

◆ 건설업계, 중동 정세 불안 확산 우려 커져

건설업계 일각에서는 최근 일부 프로젝트 지연도 문제지만 중동 지역 정세가 더욱 불안해 향후 국내 업체들의 수주활동에 빨간 불이 켜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아직 중동 정세가 불안해 발주가 취소되거나 계약이 파기된 프로젝트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미국과 이란, 중동 민주화 움직임 등 중동 정세가 현재보다 더 악화된다면 영향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S사가 지난해 수주한 바레인 발전플랜트 공사는 중동 정세 불안이 확산되면서 공사비 지급 지연 등의 이유로 진행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 지역 편중 낮춰야"…시장 다각화 위한 자원외교 필요

이런 상황에서 건설업계에서는 그동안 중동 지역에 집중돼 있던 해외건설 수주구조에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내 건설사의 중동지역 수주액은 전체 해외건설 수주액의 70%가 넘을 정도로 중동지역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중동지역에서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그 충격은 고스란히 국내 건설사들에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물론 건설사들도 해외시장 다각화를 위해 노력은 하고 있다. 그래서 중동지역 의존도도 최근 들어 떨어지는 모습이다. 하지만 민간기업의 노력만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한계가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 때문에 건설업계에서는 정부의 보다 세심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건설업체 한 관계자는 “국내 대형건설사들이 일찌감치 중남미 등 중동 이외의 지역에 눈을 돌려 시장 개척에 힘쓰고 있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라며 “중동 지역에 집중된 정부의 자원외교가 보다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