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에 있는 S아파트. 주택 경기가 호황이던 4~5년 전 이 아파트는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80여 가구로 이뤄진 1동짜리 '나홀로' 단지라서 투자가치가 떨어진다는 평가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매물이 나오자마자 거래가 될 정도로 인기가 높아졌다. 2008년 8월 말 2억1000만원 수준이었던 집값도 2억7000만원까지 올랐다. 단지 인근 S부동산중개소 사장은 "작년까지만 해도 대부분 투자자들이 대단지 중대형 주택을 찾던 것과 달리 올 들어서는 가격이 저렴한 소규모 단지를 찾는 고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2008년 9월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서울과 수도권 주택시장이 침체를 거듭하는 가운데서도 도심의 1~2동짜리 '나홀로' 단지는 오히려 강세다. 본지와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가 2008년 9월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이후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가격을 조사한 결과, 금융위기 이전보다 집값이 10% 이상 오른 단지 가운데 주택 수가 300가구 이하인 소규모 단지가 7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울은 300가구 이하 단지(80%)를 비롯해 500가구 이하 소형 단지가 10개 중 9곳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나홀로' 단지가 강세를 보였다.

주택시장이 호황일 때 투자자들에게 외면받았던 ‘나홀로’ 단지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은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소규모 아파트 단지 모습.

국토해양부가 발표하는 아파트 실거래가 조사에서도 2008년 금융위기 전 1억6250만원이었던 영등포구 당산동 대우디오빌(전용 28㎡·총 212가구)은 최근 2억1500만원에 거래됐고, 같은 기간 수원의 쌍용스윗닷홈(59㎡·287가구) 시세는 1억6750만원에서 1억9000만원으로 올랐다.

집값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가격 '거품'을 형성하던 2003~2006년 당시 소비자들은 서울과 수도권 인기 주거지역에 들어선 1000가구 이상 중대형 주택에 투자하려고 몰려들었다. 집값이 오를 때 중대형 주택으로 구성된 대단지가 더 크게 오를 뿐 아니라 상가·편의시설 등이 잘 갖춰져 있어 생활환경도 쾌적하다는 점에서였다.

반대로 소규모 단지는 주로 상업시설 주변에 있어 주거여건이 나쁘고 환금성도 떨어져 투자자들에게 외면받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1~2인 가구 등 젊은 층들로부터 직장에 출퇴근하기 편리하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투자가치가 새롭게 재조명 받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D부동산중개소 직원은 "최근 전세시세가 많이 올라 전셋집을 찾다가 주변의 값싼 소형 단지 아파트를 사들이는 실수요자들도 많다"며 "교통여건을 중시하는 맞벌이 부부 위주로 거래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소규모 단지는 대부분 전용면적 85㎡ 이하 소형주택으로 이뤄진 점도 인기 비결 중 하나다. 실제 금융위기 이전보다 집값이 10% 이상 오른 아파트 가운데 전용면적 85㎡ 이하 중소형 주택이 94%를 차지했다.

부동산에 대한 투자심리 위축이 지속되고 자산 증식보다 실거주를 목적으로 하는 실수요자들이 계속해서 증가하는 만큼 '나홀로' 단지의 인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114' 김은선 선임연구원은 "주택 투자자들 사이에 단기간에 시세차익을 내는 것보다 초기 투자비 부담을 줄이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며 "다만 교통여건이 좋은 도시형생활주택, 오피스텔이 도심에 계속해서 지어지고 있는 만큼 이들 주택이 입주하는 1~2년 뒤에는 희소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