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말 많고 탈 많은 카드 수수료율 다툼을 해결할 수 있는 밑그림을 그렸다. 백화점과 같은 대형 가맹점의 수수료를 인상하고, 대신 중소 자영업자들의 수수료를 인하하도록 유도하기로 한 것이다. 금융위원회 한 관계자는 4일 "카드사 수수료 수익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대형 가맹점의 수수료를 조금만 올려도 자영업자들에게 큰 폭의 인하 혜택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백화점·대형마트 수수료 올리고 동네 가게 수수료 낮춘다
카드사들이 작년 한 해 전국의 가맹점에서 수수료로 받은 돈은 9조원이었다. 그중 7조원가량을 대형마트, 백화점, 자동차 회사와 같은 대형 가맹점에서 받았고, 자영업자들로부터 거둔 수수료는 2조원 정도였다. 이렇게 대형 가맹점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카드사들은 대형 가맹점 앞에서는 약자(弱者) 신세를 면치 못하고, 대신 자영업자들에게는 횡포를 부린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런 힘의 먹이사슬 구조는 수수료율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대형마트(1.6~1.8%), 자동차사(1.7~1.8%), 백화점(1.8~2.0%)은 모두 평균(2.1%) 이하의 수수료를 낸다. 외국계 할인점 코스트코는 삼성카드로만 결제를 받는 조건으로 삼성카드에 불과 0.7%의 수수료를 낸다. 이에 반해 자영업자들은 3~4%대의 수수료를 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불균형은 시장 논리에 따른 결과라는 점에서 그동안 방치됐지만, 최근 당국이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지난달 말 국회를 통과한 여신금융업법 개정안에는 '대형 가맹점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부당하게 낮은 수수료율을 책정할 것을 요구하거나 수수료 부담을 경감할 목적으로 대가를 지급할 것을 요구하는 행위를 하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다.
당국은 이 조항을 지렛대 삼아 카드사들을 압박해 대형 가맹점에서 수수료를 더 받고, 대신 자영업자들의 수수료를 깎아주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금융 당국의 한 간부는 "대형 가맹점 수수료율을 0.05%포인트만 올려도 수십만명의 자영업자들이 큰 폭의 인하 혜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카드업계 "실현 불가능한 탁상공론"
당국의 이런 계획에 대해 카드사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형 가맹점이 수수료를 표면상 올려주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 되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백화점이 고객들에게 무이자 할부 혜택을 주면서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을 카드사에 떠넘기는 식이다.
이런 부당한 행위를 했을 때 처벌한다고 하지만 과연 적발이 가능하겠냐는 시각도 많다. 한 카드사 임원은 "카드사가 대형 가맹점의 영원한 '봉'이라는 점을 당국이 모르는 것 같다. 2004년 BC카드가 이마트와 수수료 싸움을 벌였다가 완패한 이후로 카드사들은 대형 가맹점에 일절 대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형 가맹점들은 직접적인 관할 기관이 아니라는 점에서 금융 당국을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지난 연말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카드사들을 압박해 수수료율을 낮춘 현대자동차에 시정을 요구했지만, 현대차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대형 가맹점의 부당한 요구를 처벌하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으니 더이상 카드사들이 저자세를 보일 필요는 없다"며 "본보기로 대형 가맹점을 한번 처벌하면 가맹점 크기에 따른 수수료 불균형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