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오후 전남 보성군 보성읍에 있는 조성원예영농조합법인 토마토 재배 농장. 온실 형태의 농장 안으로 들어가니 한겨울의 황량한 바깥 풍경과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대열(隊列)을 맞춰 빽빽하게 늘어선 토마토 줄기는 2m 이상 자라 열대 밀림처럼 우거졌고, 줄기마다 어른 주먹만 한 크기부터 갓 열매를 맺은 작은 토마토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온실 내부 온도는 24도. 입고 있던 외투를 벗을 수밖에 없었다. 바닥을 살펴보니 줄지어 자라는 토마토 줄기 사이로 기찻길처럼 생긴 쇠파이프 두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4000평 규모의 온실에 깔린 파이프 길이만 총 12.5㎞. 손을 대보니 뜨끈뜨끈했다. "파이프를 타고 60~80도 정도의 뜨거운 물이 계속 흐르고 있거든요. 온돌처럼 24시간 내내 난방을 하고 있어요." 조성원예영농조합법인 김영수 이사는 "밖이 아무리 추워도 온실 안 평균 온도가 17도 아래로 안 내려간다"며 "하지만 난방비는 다른 농가의 5분의 1 정도밖에 안 든다"고 말했다.

전남 보성의 조성원예영농조합 직원들이 소각장 폐열로 난방하는 온실에서 토마토를 따고 있다. 이곳에서 수확한 토마토는 시세의 절반 가격에 롯데마트를 통해 판매된다.

고(高)유가 시대에 난방비를 아끼는 비결은 온실에서 300m쯤 떨어진 보성군 환경자원사업소 소각장에 있었다. 조성원예영농조합법인은 소각장에서 쓰레기를 태울 때 발생하는 '폐열'을 이용해 난방하고 있다. 소각장에서 대기로 배출하는 뜨거운 스팀을 지하에 매설한 관을 통해 온실로 끌어와 보일러를 돌리고, 온수를 만들어 난방하는 것이다.

74개 농가로 구성된 조성원예영농조합법인은 보성군의 지원을 받아 2010년 10월 4000평 규모의 온실을 만들었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허공에 날리는 에너지를 재생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고, 토마토 농가는 난방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김용옥 보성군의회 부의장은 "지자체마다 그냥 내다버리는 소각장 폐열을 재활용하는 방법을 궁리하지만, 농업 분야에서는 보성군 토마토 온실만큼 최첨단 설비를 갖춘 곳이 드물다"며 "원예 선진국인 네덜란드에서 온실 시스템을 견학하러 올 정도"라고 말했다. 소각장을 위탁 운영하는 켄텍에너지 보성사업소 신종철 소장은 "소각장 폐열을 이용해 수영장이나 사우나를 운영하는 방안도 추진했지만, 수익성이 없어 외면당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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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각장 폐열을 이용하면서 농가 난방비는 획기적으로 줄었다. 온실을 관리하는 김영선 매니저는 "비상용으로 기름 보일러도 같이 가동하는데 1년 난방비가 5000만원 정도 들었다"며 "비닐하우스에 온풍기를 가동하는 기존 방식을 쓴다면 4000평 농사짓는 데 기름값만 2억5000만원은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 하우스 농가보다 유류비를 최대 80%까지 절약할 수 있고, 전체 생산 원가는 약 40% 정도 낮아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효과는 생산량 증가다. 일반 농가가 야간에만 주로 온풍기를 가동하는 것과 달리 온수로 종일 일정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어 토마토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자라는 것이다. 김영수 이사는 "보통 토마토 한 줄기가 한 번에 3~4개씩 1년 동안 총 25번 정도 열매를 맺는데 우리 토마토는 30회 이상 열매를 맺는다"며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지만, 평균적으로 1평당 토마토 150㎏을 수확해 일반 농가보다 생산량이 30% 정도 많다"고 말했다. 조성원예영농조합법인은 지난해 이 온실에서만 15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난방비 절약과 생산량 증가는 토마토 가격 인하로 이어졌다. 조성원예영농조합법인은 롯데마트와 손잡고 시세의 반값에 팔리는 토마토를 29일 출시할 예정이다. 롯데마트는 연간 소각장 폐열로 키운 토마토 460t을 '손큰 토마토'라는 브랜드를 붙여 7500원(2㎏ 1팩)에 판매한다. 현재 토마토 1.2㎏을 9500원에 판매하는 것과 비교하면 반값도 안 되는 가격이다. 롯데마트 나일염 MD(상품기획자)는 "토마토 시세가 높은 시기에 판매 가격을 대폭 낮출 수 있고, 농가 입장에서도 판로 걱정 없이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