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계열사에 다니는 김종만(39) 차장은 입사 14년차다. 매월 25일이면 월 600만원이 넘는 돈이 꼬박꼬박 통장에 찍히는 고액 연봉자인데도, 월말이 되기 전 통장 잔액이 바닥을 드러내기 일쑤다. 5년 전 영등포에 있는 아파트를 사면서 빌린 주택 담보대출 3억원의 원리금 상환 230만원, 매달 27일 청구되는 카드 대금 100여만원, 지방에 사는 부모님 용돈 50만원이 기본적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본적인 생활비와 각종 지출을 합치면 저축이 쉽지 않다. 결혼 초 "애 잘 키우자"며 호기롭게 외벌이를 선언했던 게 요즘은 후회된다. 김씨는 "벌어서 갚으면 된다고 쉽게 생각했는데 아무리 갚아도 빚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며 "아이가 클수록 교육비 같은 지출은 산더미 같이 늘어날 텐데, 만일 회사를 떠나게 된다고 생각하면 식은땀이 흐른다"고 말했다.

빌리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갚는 데는 수십년이 걸리는 것이 빚이다. 빚에 카드회사나 캐피탈 등 고(高)금리 대출까지 섞여 있다면 이자는 무섭게 불어난다. 전문가들은 "가계 부채를 줄이려면 최대한 소비를 줄여 빨리 빚을 갚는 것 말고는 특별한 왕도(王道)가 없지만 가계 부채를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테크닉은 몇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빚은 총자산의 40% 이내로

첫 단계는 일단 가계 부채의 전체 규모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무 설계 전문가들 경험에 따르면 총부채 규모가 총자산의 40%, 원금과 이자로 매달 나가는 돈이 월소득의 20% 이내라면 살림살이는 일단 '파란불'이라고 봐도 좋다. 월 500만원을 번다면 원리금으로 100만원을 넘기지 않으면 된다는 뜻이다. 부동산 담보대출은 대출액이 주택 구입 자금의 3분의 1을 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점검했을 때 만약 빨간불이 들어왔다면 구조조정에 들어가야 한다. 첫 단계는 지출을 줄이는 일이다. 강창희 투자교육연구소장은 "매달 100만원을 쓰던 사람이 90만원으로 지출을 줄인다면 10% 수익을 내는 셈"이라면서 "요즘 같은 저성장·저금리 시대에는 자산을 늘리려 무리하기보다는 부채를 줄이는 데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또 지출할 때는 이자와 공과금 등 고정비용을 먼저 지출하고, 나머지 돈으로 소비성 지출을 하는 것도 빚을 갚는 습관을 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 주 거래 은행을 활용해 수수료와 이자비용 등을 줄이고, 신용카드도 소비 성향에 맞춰 1~2개로 줄이는 등 작은 노력도 필요하다.

무담보 대출은 마이너스통장부터

같은 대출이라 하더라도 담보 유무나 대출의 성격, 대출 기관 등에 따라 조건이 크게 다르다. 따라서 대출 조건을 꼼꼼히 살펴 가장 유리한 곳에서 돈을 빌리고, 기존 대출 중에서 고금리에서 저금리로 갈아탈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부동산 담보대출은 토지나 상가를 담보로 한 대출보다 주택 담보대출 금리가 낮고, 특히 아파트 담보대출은 절차나 비용 면에서도 유리한 점이 많다. 예금이나 보험에 가입한 경우에는 적금 담보대출이나 보험 약관 대출을 활용하면 가장 쉽고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다. 또 은행이 최근 서민 전용 대출 상품을 내놓고 있는 추세이므로, 이용할 자격이 있는지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담보 없이 자금을 빌릴 때는 '마이너스통장→신용대출→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순으로 활용하는 것이 정석이다. 마이너스통장은 일반 대출에 비해 2%가량 금리가 높지만, 정해진 기간 내에 돈을 쓰고 갚을 수 있어 유연성이 높다.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는 금리가 두 자릿수로 높을 뿐 아니라 신용등급에도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가급적 활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상황이 더 안 좋아 부득이 대부업체 같은 사금융을 이용할 경우에는 정식 등록 업체인지, 이자율이 법정 한도인 연 39%를 넘지 않는지 등을 확인하고, 폭행이나 협박을 당했을 때는 증거를 녹취해야 불법 추심으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갚는 순서도 전략을 짜라

대출 조건을 잘 살펴 빚을 가장 유리한 1~2곳으로 모은 다음에는 갚는 순서를 정해야 한다. 중도 상환 수수료 등의 비용과 만기일, 금리 등을 감안해 금리가 높고, 대출 금액이 적고, 만기일이 가장 가까운 상품 순으로 상환하는 것이 원칙이다. '제2금융권 이하 대출→현금서비스→신용대출→마이너스 대출→담보대출' 등의 순서로 빚을 갚아 나가고, 목돈이 생기면 재(再)투자보다는 높은 금리 대출을 상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농협 강남PB센터 최복례 팀장은 "대출은 빨리 갚는 것이 현명하지만,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상환 기간을 늘려 매월 상환하는 원리금을 줄이는 것도 현명한 빚테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