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계열 금융회사의 같은 팀에서 일하는 민모(44) 팀장과 허모(33) 과장은 세대도, 관심사도, 자녀 연령대도 다르지만 공감하는 고민거리가 있다. 빚 걱정이다.

30대 허 과장은 5년 전 5000만원 빚내는 것으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그동안 빚을 갚는다고 갚았는데, 지난해 서울 문정동 아파트(102㎡) 전세금을 1억원 더 올려 주느라 빚이 7500만원으로 늘었다. 매달 통장에서 90만원이 원리금으로 꼬박꼬박 나간다. 아내는 재작년에 다섯 살 난 큰아이를 잘 키우겠다고 다니던 은행을 그만뒀는데, 외벌이 살림에 부담이 만만치 않다. 그는 "둘째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한 달에 500만원 벌어 20%를 빚 갚는 데 쓰는 형편 때문에 포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40대 민 팀장은 2007년 집 사려고 빌린 2억5000만원이 발목을 잡고 있다. 30년 만기 상환 조건으로 돈을 빌려 원금은 그대로 쌓여 있는데, 이자만 한 달에 60만원 정도씩 나간다. 7억2000만원을 주고 산 아파트(105㎡)는 4년 만에 가격이 6억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는 "지금 중학교 3학년인 큰아이가 대학에 가면 등록금 때문에라도 집을 팔아 빚을 갚고, 작은 집으로 이사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허니문푸어(honeymoon poor), 하우스(house)푸어, 에듀(education)푸어, 실버(silver)푸어…. 세대마다 사연이 다른 '대출 인생'이 도사리고 있다. 왕성한 경제활동으로 자산을 불려야 할 중년의 중산층이 빚에 찌들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10가구 중 한 집 '하우스푸어'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1070만5000가구 중 108만4000가구(10.1%)가 하우스푸어다. 빚을 져 집을 샀는데 원리금 상환액이 가처분소득의 10%를 넘는 경우를 하우스푸어로 잡았다. 하우스푸어의 평균 가처분소득은 246만원인데, 이 중 102만원을 매달 대출 원리금으로 내고 있다.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 비율이 42%에 달한다. 우리나라 30대 가구주 20%, 40대 가구주 중 14%가 하우스푸어다. 연구원은 하우스푸어 108만 가구 중 8%(9만 가구)는 담보대출의 상환이 아예 불가능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스냅샷으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빚을 내 집을 산 것은 1차적으로 개인 책임이지만, 금융회사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신용 불량자가 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우리나라 중산층은 밥을 굶는 한이 있더라도 이자를 꼬박꼬박 갚아나가려 한다"며 "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이런 점을 잘 알고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빌려줬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집은 안 샀지만 결혼 비용과 전세금 때문에 빚을 지는 30대 '허니문푸어'도 적지 않다. 여성가족부가 전국 47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2차 가족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 비용이 남자는 평균 8000만원, 여자는 약 3000만원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30세 미만 가구 자산의 중간값이 4146만원(2011년)이기 때문에 자산의 2배가 훨씬 넘는 돈을 들여 결혼 생활을 시작하는 셈이다. 부모 도움이 없다면 빚을 지지 않고 신혼을 시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에듀푸어가 실버푸어로 전락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자녀 1인당 평균 양육비는 총 2억6204만원이다. 초등학생 자녀는 월 88만원, 중학생 98만원, 고등학생 115만원, 대학생 142만원으로 아이가 커갈수록 더 많이 들어간다. 자녀 양육비와 사교육비 부담이 늘면 저축액이 줄 수밖에 없다.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노후 대비를 위한 월평균 저축액은 17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소비·저축 여력을 뺏긴 '에듀푸어'는 은퇴 후에도 빚 걱정을 해야 할 '실버푸어'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지방 공단의 중소기업에 다니는 문모(56)씨는 2009년 살고 있는 아파트를 담보로 1억원을 빌렸다. 몇 년 전 부인이 식당을 열 때 받은 신용 대출(9000만원)도 있는데, 빚을 더 진 것이다. 기존 식당을 잘나간다는 프랜차이즈 감자탕집으로 전환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빚은 늘고, 이자로만 월 130만원씩 나가는데, 사정이 별반 나아지진 않았다. 문씨는 "모아 놓은 돈도 없고, 퇴직하면 식당이나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에 빚을 냈다"며 "하루 20만~30만원 정도 되는 매출 전표를 보고 있으면 마누라가 나이 들어 이자 갚으려고 저렇게 고생하나 싶다"고 말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45%에 달해 OECD 평균치(13.3%)를 훨씬 웃돈다. 혼자 사는 노인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 1인 가구 빈곤율이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77%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허니문푸어→하우스·에듀푸어→실버푸어'의 악순환 사슬을 끊기 위해서 가계 스스로 '빚 출구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저(低)성장 시대가 분명한 만큼 예전처럼 빚을 내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과도한 사교육비 등 씀씀이를 의식적으로 줄여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