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경쟁상대였기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사업다각화로 필름의 쇠퇴를 넘어섰다."

19일 코닥이 파산 신청을 한 데 대해 후지필름HD 고모리 시게타카(古森重隆·73) 사장이 밝힌 소회이다.

세계 필름 시장 양대 강자(强者)의 운명은 완전히 엇갈렸다. 코닥은 파산보호 신청을 하며 몰락했지만, 후지필름은 2011년 회계연도(2012년 3월 결산)에 2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한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가져왔을까.

고모리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코닥도 사진 필름 시장의 소멸에 대비해 디지털 컴퍼니로 변신을 꾀했지만 우리는 디지털뿐만 아니라 의료·검사장비·복사기·LCD패널 소재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고 말했다. 1936년 설립된 후지필름은 필름시장을 놓고 '필름 제국' 코닥과 한동안 혈투를 벌였지만, 현재 필름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도 되지 않는다. 후지필름은 기업 인수합병에 연간 500억~1000억엔 정도를 투자하고 있으며 최근 경영난을 겪고 있는 올림푸스 인수전에도 참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2조3000억엔(약 34조원)의 매출을 올린 후지필름은 2018년에 의료분야에서만 1조엔(약 15조원)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후지필름은 1984년 LA올림픽의 후원사로 선정되면서 미국시장 공략에 들어가 코닥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코닥도 1990년대 일본시장 공략을 본격화했지만, 후지필름의 벽을 뚫지 못했다. 코닥은 유통망 등 비관세장벽 탓이라며 1995년 후지필름을 미국정부에 통상법 위반으로 제소했다. 당시 미국정부까지 나서 일본정부를 압박, 미·일 간에 '필름무역 마찰'이 촉발됐을 정도로 앙숙이었다.

코닥이 당장의 수익에 급급해 필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사이에 후지필름은 '필름 이후'를 위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벌였다. 2000년에 사장으로 취임한 고모리 사장은 2004년 '제2의 창업'을 선언하며 사진부문을 중심으로 5000여명의 감원을 단행했다. 당시 임원들이 "주력 사업을 포기하려는 것이냐"며 반발하기도 했다. 90억 달러를 투자해 40개사를 인수합병했지만, 사업확장의 근간은 필름 관련 기술이었다. 필름 개발과정에서 사용된 20만점의 화학물질을 활용, 제약·화장품사업에까지 진출했다. 2007년에 후지필름이 내놓은 '아스타리프트'라는 화장품은 필름의 가장 중요한 재료인 '콜라겐'이라는 단백질을 인간의 피부에 적용해 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사진의 변색을 막기 위해 연구한 '아스타키산틴'이라는 항산화 성분 역시 피부 노화를 억제하는 데 효과가 있다.

130년 역사의 필름 분야 선구자‘이스트먼 코닥’이 미국 뉴욕 남부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한 19일(현지시각), 뉴욕 맨해튼 번화가인 타임스퀘어에 설치된 코닥 전광판 앞을 시민들이 지나치고 있다.

투명성과 얇은 두께, 균일한 표면을 유지해야 하는 필름 기술을 활용해 LCD패널 소재기업으로 변신하는 데도 성공했다. LCD패널의 시야각을 확대해주는 필름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독점하는 등 LCD패널 소재의 강자이기도 하다. 후지필름은 필름과 디지털 광학 기술을 접목해 의료 진단기기 시장 진출도 확대하고 있다.

고모리 사장은 리먼쇼크가 터지자 2008~2009년에 이익률 10%를 목표로 내걸고, 명예퇴직 등 또 한 번의 대대적인 사업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고모리 사장은 "시장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근육질 회사로의 변신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일부에서는 코닥과 후지의 명암을 가른 것은 미국과 일본의 다른 기업풍토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당장 주주의 이익을 우선해야 하는 미국식 자본주의와 달리, 미래의 성장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고 기다리는 일본식 기업 풍토가 후지필름의 변신을 가능하게 했다는 평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