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팡탕(Pantin) 지역. 에르메스 가죽 공방이 있다고 하기에 낡은 고택(故宅)을 예상했건만 7층 규모의 최신식 유리 빌딩이 눈앞에 서 있었다. 모든 벽면에 유리창을 낸 건 작업장에 햇볕을 잘 들게 해 가죽이 최고 상태로 숙성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가 공장을 중국으로 옮겨 가공 작업을 거친 뒤 본사에서 최종 조립만 하는 어셈블리(assembly) 명품인 데 비해 에르메스는 고집스럽게도 모든 작업을 프랑스에서만 진행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에르메스 창업자 6대손이자 아트 디렉터인 피에르 알렉시스 뒤마는 "170년 전 장인들이 했던 그 방법 그대로 만들고 있다"며 "장인 정신에 대한 고집이 오늘의 에르메스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최소 4만3000시간 연습 후 실전 투입

가방 하나에 보통 1000만원이 넘는 가격. 몇몇 사람들은 '소형 자동차 하나 '모시고' 다니는 건, 그야말로 사치가 아니냐'고 한다.

에르메스 총괄 CEO인 파트리크 토마는 "단순히 소비가 아닌 투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는 경매에서 증명된다. 최근 미국 댈러스에서 열린 공개 경매에서 에르메스 버킨 가방(2006년 제품)이 예상 낙찰가 8만달러의 2.5배가 넘는 20만3150달러(2억3000만원)에 낙찰됐다.

에르메스 가죽 장인들은 가방의 안감 재단부터 가죽 마감처리 하기, 끝단 염색하기, 손잡이·버클 달기 등을 모두 한 자리에서 작업한다. 버킨·켈리의 경우 보통 7~10년 정도 경력자들부터 만들게 되는데 장인 한 명이 일주일에 1개 반 정도 완성한다.

'에르메스 길들이기'의 저자 마이클 토넬로는 이러한 방식으로 개당 5000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고 밝혔다.

마치 명화(名畵)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높아진다면, 가방 브랜드 중 유독 에르메스만 그런 대접을 받는 건 무슨 이유일까.

의문은 공방에서 풀린다. 에르메스 가죽 공방은 이곳 팡탕을 비롯해 파리 시내의 포부르 생토노레 등 총 10군데에 나뉘어 있다. 30년 전 300명으로 시작했던 가죽 장인도 2000여명으로 늘었다.

170년 전 왕실에 마구(馬具)를 납품했던 새들 스티치(Saddle stitch·말 안장 꿰매는 방식) 방식을 지금도 고집한다. 양손에 바늘을 쥔 장인들이 밀랍(蜜蠟)을 묻혀 단단해진 프랑스산 리넨 실을 꿰어 송곳으로 구멍을 낸 가죽에 실을 꽂는다. 한 구멍에 오른손 왼손 번갈아 균일하게 힘을 주고 바느질한다. 이러한 새들 스티치는 단단함에서 일반 재봉틀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버킨 가방의 경우 700조각의 가죽을 2만6000번의 바느질로 연결해 완성한다. 버킨 백 손잡이는 가죽 7겹을 붙여 만들어 그만큼 견고하다. 대를 이어 들어도 별 손상이 없다는 것이다.

팡탕공방 로런스 켈리에 디렉터는 "가죽 학교에서 3년, 에르메스 공방에서 2년, 총 4만3000시간 이상 연습 기간을 거쳐야만 공식적으로 제작에 투입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송곳·바늘·집게·망치 등 일반 가정집에도 있는, 하찮은 도구 같지만 장인들의 손에 쥐어지면‘명품’을 만드는 필수품이 된다. 바늘이 들어가는 구멍도 기계가 아닌 송곳으로 뚫고, 바느질의 최종 마무리도 송곳으로 섬세하게 다룬다. (왼쪽 사진) 에르메스 버킨 가방(가운데 사진). 가장자리 광택 작업도 중요한데, 사포로 가죽을 부드럽게 문지른 뒤, 염색과 광택 작업을 하고 인두로 마무리 처리를 한다. /에르메스 제공<br>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스냅샷으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장인 한명 가치가 50억원

명품 브랜드 전문 리서치 기관인 알파밸류의 리서치 책임자 피에르 이브 고티에는 영국 일간 가디언지에 "시가 총액을 비교할 때 에르메스 장인 1명의 가치가 330만 유로(약 5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 수치는 프랑스의 2위 은행 소시에테제네랄(SG) 직원의 30배에 달하는 것이다.

에르메스는 '한 명의 장인이 가방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책임지고 만들기 때문에 그만큼의 생산성이 있다'고 평가받는다.

가방 하나는 18~22시간에 걸쳐 완성돼 1인당 2주일에 3개 정도 만든다. 완성된 제품에는 장인의 데스크 번호와 제작된 해가 찍히기 때문에 수년, 혹은 수십 년 후에 고객이 수선이나 부분 교환을 원할 때 그 가방이 제작된 데스크 번호로 배달되는 '평생 책임 제도'로 운영된다.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기 때문에 여자 장인들은 찾기 어렵지만 최근 들어선 꼼꼼함을 내세운 여성 인력도 늘고 있다.

한국 여성도 있다. 에르메스 본사 장인이었던 강희선씨는 지난해 말 아시아 지역에 파견돼 앞으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제품의 수선과 각국을 돌며 제작 과정 시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파트리크 토마 에르메스 CEO는 "작은 흠이라도 있으면 1억원짜리도 폐기해 버린다"며 "'럭셔리'가 단지 '화려하고 사치스러운'의 의미라면 에르메스는 과감하게 럭셔리와 결별하고 품질만으로 승부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