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적인 금융시장 불안 가능성 적지만 실물경기 둔화 압력 커질 듯
-정부 "3단계 컨틴전시 플랜 재점검‥위기 발생시 대응방안 준비 중"
새해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 경제의 주축국들의 신용등급이 무더기로 강등되면서 우리 경제에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어느정도 예견된 소식이지만 가뜩이나 올해 경제성장 속도가 크게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유럽 재정위기가 쉽게 진정될 사안이 아니라는 인식을 확인시켜준 것이라 수출 중심의 우리 경제가 적잖은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소비심리도 위축돼 내수도 얼어붙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표면적으로는 '지나친 우려는 금물'이라는 반응이다. 신용등급 강등에도 불구하고 국제금융시장이 안정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낙관적인 인식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유로존 국가 신용등급 강등 발표 이후 첫 개장일인 16일의 국내 주식·외환시장 반응을 주시하는 분위기다. 이와 동시에 위기 상황에 따른 3단계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점검하는 등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다.
◆ 유로존 국가 신용등급 강등 여파는 제한적일 듯
미국계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 13일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로존 9개국의 신용등급을 한꺼번에 강등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로존 국가들의 신용등급 강등 쓰나미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다.
이런 악재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시장의 동요는 크지 않은 편이다. 신용등급 강등이 이뤄진 13일 뉴욕 주식시장에서 다우지수는 0.39% 떨어지는데 그쳤다. 신용등급 당사자인 유럽 시장도 런던 FTSE 100 지수가 0.46%, 프랑스 파리 증시의 CAC 40 지수가 0.11% 하락하는 선에 마감했다.
유럽과 미국 금융시장이 크게 동요하지 않은 것은 유럽 국가의 신용등급 강등이 이미 예고된 사태이기 때문이다. 신용등급 강등설은 한 달여 전부터 시장에 유포되며 고비 때 마다 시장 지표를 뒤 흔들어 놨다. 이런 이유로 신용등급 강등 발표가 시장을 괴롭히던 불확실성을 없애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증시·외환 전문가들도 이번 신용등급 강등 여파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재정부 한 관계자는 "프랑스의 신용등급이 두 단계가 아니라 한 단계 낮춰진 건 시장의 불확실성을 낮춰졌다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긍정적인 요인이 될 수도 있다"면서 "국내 금융시장을 바라보는 외국인들의 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 각종 대외신인도 지표들도 일단은 안정적인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유로존 불확실성 더 커져···실물경기 둔화 압력 커질 듯
그러나 실물경기 측면으로 접근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추가적인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을 의식한 유로존 국가들의 재정긴축과 유럽계 은행들의 자금 회수 등으로 실물경기가 크게 둔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런 움직임으로 유럽 시장에서 소비심리가 위축될 경우, 우리 수출 전선(戰線)에 이상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재정부 다른 관계자는 "유로존 국가들의 신용등급 강등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은 대(對) 유럽 수출에 큰 차질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수출이 당초 예상보다 부진할 경우 실물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로존 국가나 금융회사들의 신용등급이 추가로 대거 강등되거나 구제금융 신청이 이뤄진다면 국내 금융시장도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유로존 국가들의 신용등급 강등은 해당 국가 은행들에게 자본 확충 압력을 높이고, 이를 이유로 우리나라에 묻어놨던 투자금을 회수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 은행들이 유럽 국가에서 빌린 자금은 592억달러(68조80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런 식의 악순환이 나타날 경우 우리 은행들도 자본확충을 위해 시중에 깔린 대출금을 회수할 수 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자금경색으로 인한 실물경제 위축이 가중될 가능성이 있다. 또 유럽계 자금이 이탈되는 과정에서 환율 급등이 재연돼 가뜩이나 거시경제 운용에 부담이 되는 물가상승 압력을 더 가중시킬 가능성도 있다. 저성장과 고물가의 스태그 플레이션이 현실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의 관계자는 "상반기 내내 유로존 재정위기로 인한 불확실성이 지속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이번 신용등급 강등이 확인시켜줬다"면서 "경기둔화폭이 예상보다 더 커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 민간 "마이너스 성장도 배제 못해"···정부, 상황별 대응방안 준비 중
민간에서는 1분기 중 마이너스 성장의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김중수 한은 총재가 지난 13일 "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예상에 못 미칠 수 있다"고 밝힌 것이 이런 전망을 부추겼다.
이렇게 경기둔화폭이 예상보다 커질 경우를 대비해 정부는 기존에 세웠던 3단계 컨틴전시 플랜을 점검·보완하고 있다. 현재 처럼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는 단계를 넘어서 경제 전반에 자금경색과 실물경기 둔화 흐름이 나타나게 될 경우, 유동성 공급 확대 등의 경기 방어적인 거시 정책을 쓸 방침이다.
상황이 더 악화돼 자본의 급격한 유출이 나타나고 실물경기가 고용창출력을 저하시킬 정도로 침체된다면 추가경정 예산 편성을 통한 재정지출 확대로 이어지는 확장적 거시정책도 동원될 전망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상저하고'형 성장 전망을 수정할 정도로 심각한 경기침체가 나타난다는 징후를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경제 상황이 급격히 변할 때를 대비해 다양한 정책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