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내서 살아가는 게 일상인 사회가 됐다. 집을 보유한 사람들은 대부분 주택담보대출을 끼고 있고, 직장인 중 마이너스 통장 없이 사는 사람이 드물다. 지난해 3분기말 기준 적자 가계 비율은 28.2%다. 10가구 중 3개는 적자이며 그 적자는 고스란히 가계대출로 메우고 있다.

지금 30대, 40대, 50대가 학교에서 배운 금융교육은 저축 교육이었다. 학교는 모든 학생들에게 통장을 하나씩 만들어 매월 소액이라도 저축을 하도록 했다. 근검절약을 생활화하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 금융관행은 180도로 바뀌었다. 기업들이 은행 대출을 줄이자 개인들이 은행으로부터 대출 받기가 쉬워졌고 금리가 낮아졌다.

저축 교육만 받았던 사람들은 빚에 둔감하고 신용 관리에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카드 할부다 신용대출이다 해서 돈을 쓰라는 곳이 많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소비 수준이 높아져 돈을 쓸 곳도 많아졌다. 휴대폰 비용처럼 과거에 없던 소비가 새로 창출되기도 했고 교육 비용처럼 그 규모가 터무니 없이 커지기도 했다.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신용교육 체계를 구축해야 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가정-학교-사회로 이어지는 3중의 금융·신용 교육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 대출 두려워하지 않고, 저축할 필요 못 느끼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은 저축과 대출을 대하는 태도와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대출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 저축은 굳이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20대, 30대 초반의 젊은 직장인들은 월급의 대부분을 소비한다. 직장 초년생도 쉽게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어서 대출을 받아 생활비를 충당하기도 한다. 올해 27세인 김미숙씨(가명)는 친구들과 만나 식사를 하거나 옷, 가방을 구매하는 데 쓰는 일상적인 생활비에 월급의 대부분을 쓴다. 저축에는 별 관심이 없다. 김씨는 ‘결혼 자금을 모아야 하지 않냐’는 질문에 “결혼자금은 부모님에게 의존하면 되고, 집은 남자 쪽에서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회사 동료들 중에 매달 50만원씩 적금하는 사람도 있는데 매우 예외적인 경우”라고 말했다.

29세인 직장인 이미영씨는 직장생활 초기에 종신보험 상품 1개, 변액보험 상품 1개에 가입했다. 보험 설계사인 고모와 대학 선배가 가입을 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두 개의 보험으로 월 40만원이 나간다. 월급이 150만원 정도여서 이것저것 쓰고 나면 빠듯하게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마이너스 통장도 개설했다. 이씨는 어느 정도 마이너스 대출을 쓰면서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30대와 40대는 내집 마련 또는 전세자금 마련에 허덕인다. 40대 직장인 최정호씨는 2003년 말 신림동에 살다가 자녀 교육 때문에 강남으로 이사가야 한다는 아내의 말을 따랐다. 정부가 10. 29대책을 내놓은 직후여서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보고 아파트를 팔고 전세로 이사했다. 신림동 아파트를 팔고 같은 평수로 강남에 전세로 오니 수중에는 3000만원이 남았다. 이후 8년 동안 전세가격은 1억5000만원이 올랐다. 최씨는 모아놓는 예금과 펀드로 전세가격 상승분을 메꿔오다가 최근 전세가격 상승폭이 너무 커서 전세담보대출까지 받았다. 최씨는 “가끔 수입과 생활비 지출이 미스매치되는 경우가 있어서 마이너스 대출도 이용한다”고 말했다.

신용 상담 사례들을 보면 말도 안 되게 비상식적인 금융이용자들도 눈에 띈다. 30대 중반 직장인 이호정씨는 2년 전 어머니가 단독주택을 구입한다며 1억원의 대출을 받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이씨는 어머니의 요청을 뿌리칠 수 없어 4000만원을 은행 대출로, 나머지 6000만원을 2금융권 대출과 대부업 대출로 마련했다. 어머니는 잠깐 동안만 돈을 빌려 쓰겠다고 했지만 아직도 감감 무소식이다. 이씨는 월급 중 절반 이상이 대출이자로 빠져나간다. 캐피탈에서 빌린 2금융권 금리는 연 25%에 달하고 대부업체 대출은 연 40%에 육박한다. 이씨는 “다행히 남편이 상황을 이해해 주고는 있는데 이렇게 계속 갈 수는 없다”며 “어머니께 주택을 팔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집값이 오르기를 조금만 더 기다리자고 하신다”고 허탈해했다.

34세인 직장인 박세연씨는 대부업체 대출을 2개월 연체해 신용회복위원회에 개인 프리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상담하는 과정에서 월 지출이 너무 많다는 내용이 지적됐고 신용상담사가 구체적인 지출 내역을 물었다. 신용상담사는 그 과정에서 휴대폰 요금으로 월 15만원 정도가 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신용상담사는 당장 휴대폰부터 없애든지, 통화시간을 대폭 줄이라고 충고했다.

◆ 학교-가정-사회, 3중 신용교육 시스템 구축하라

최근 금융감독원이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함께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고등학생 중 학교 금융교육이 불충분하다는 의견은 63%였다. 학교 금융교육이 실생활에 필요한 내용이라는 응답은 6.4%에 불과했고 용어와 개념에 치우쳐 있다는 의견이 41.1%였다. 2014년부터 고등학교에서 '실용경제' 과목이 적용되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모자라다. 초등학교 때부터 체계적인 금융·신용 교육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비상식적인 금융 이용 행태를 막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금융·신용 교육을 통해 올바른 금융 습관과 경제관을 길러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천규승 KDI 경제교육실 전문위원은 "수입-지출 균형, 부채 부담의 위험성 등을 알고 있지만 지금처럼 소비를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금융·신용 지식이 행동으로 옮겨지기 어렵다"며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실생활에서 습관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1차는 가정에서, 2차는 학교에서, 사회에 진출하고 난 후에는 3차로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교육해 습관화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천 위원은 특히 "신용회복위원회는 신용불량자가 된 후에 금융·신용 교육을 하는데 그 때는 이미 회복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신용카드 사용 내역서나 휴대폰 요금 내역서를 보고 미리 상담을 통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을 사전에 막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금융사 중심의 금융교육 바뀌어야

사회에서의 금융교육을 대부분 금융회사들이 주도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일부 기관이나 금융사 관련 협회에서 진행하는 투자자교육, 청소년 금융 교육 등은 지나치게 금융사 중심으로 돼 있다. 합리적인 소비, 수입과 지출, 금리와 인플레이션 등을 소개하기도 하지만 항상 금융권별 상품 소개가 빠지지 않는다. 다양한 투자수단, 주식투자를 하는 방법, 재무설계하기 등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교육받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금융상품을 이용하고 싶게끔 유도한다.

김홍식 금융위원회 금융소비자 과장은 "투자자보호재단, 청소년금융교육협회 등은 그나마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금융 관련 협회나 개별 금융회사들이 진행하는 금융 교육은 금융상품 홍보수단으로 이용될 위험성이 있다"며 "정부도 올해부터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는 예산의 한계가 있는 데다 법 테두리 안에서 금융교육 내용까지 제재하기도 어려워서 정부가 얼마나 실효성 있는 정책을 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