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 세계 통신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은 삼성전자 휴대폰 사업을 총괄하는 신종균(56) 사장이다. 삼성은 작년 3분기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을 제치고 처음으로 세계 1위에 올랐다. 갤럭시 시리즈가 아이폰을 이긴 것이다.

삼성전자 수원디지털시티(사업장)에서 만난 신 사장은 대뜸 "그동안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메모리반도체·LCD(액정표시장치)·TV 같은 다른 사업은 다 세계 1등인데 자신이 맡은 휴대폰 사업만 2등이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올해는 스마트폰뿐 아니라 일반 휴대폰(피처폰)을 합친 전체 시장에서도 노키아를 따돌리고 세계 1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스마트폰 세계 1위를 달성한 삼성전자 신종균 사장. 휴대폰 사업과 더불어 PC·카메라 사업까지 맡게 돼 책임이 더 막중해졌다.

―스마트폰 1위 달성을 축하한다.

"이제 분기 1등 한 번 했는데 뭘. 더 열심히 해서 연간 기준으로도 1등을 하겠다."

―2009년 '아이폰 쇼크' 당시 '삼성 휴대폰은 끝났다'는 비관적 전망이 많았다.

"사실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 스마트폰 시장이 그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 어디로 가야할지, 뭘 해야할지 답답해서 이것저것 다 해봤다."

―어떤 일들이 있었나.

"신제품을 개발할 때 통화 중 끊김 현상 등 문제 해결을 위해 연구원들이 3개월 동안 하루 8시간씩 차를 타고 다니면서 성능 테스트를 했다. 서울과 부산을 20번 이상 왕복하면서 통신용 소프트웨어를 시험하고 보완했다. 건물 엘리베이터 안에서 통신이 안 되는 것을 해결하느라 엘리베이터 안에서 8시간 동안 노트북PC와 스마트폰을 들고 씨름한 직원도 있다."

―열심히만 한다고 1등이 되는 건 아닐 것이다.

"삼성은 전통적으로 제조와 하드웨어가 핵심 경쟁력인 회사다. 소프트웨어나 콘텐츠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담는 그릇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제품 자체의 경쟁력이 매우 중요하다. 또 미국·유럽 등 선진국과 아시아·아프리카·남미 등 신흥 시장의 특성을 고려해 프리미엄 제품과 보급형 제품을 다양하게 내놓은 것도 효과가 있었다."

벤츠폰·블루블랙폰 등 삼성전자를 대표하는 '텐밀리언셀러(1000만대 이상 팔린 제품)'는 대부분 신 사장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소수(少數) 모델을 최소 비용으로 대량 생산하는 해외 경쟁 업체들과 달리, 신 사장은 프리미엄 제품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히트작을 양산하는 전략을 추구한다.

애플은 1년에 한 가지 모델만 내놓고도 막대한 이익을 올리고 있다.

"애플처럼 한 가지만 해서 성공하면 얼마나 좋겠나. 이익률도 훨씬 높고. 그런데 그 한 가지가 뭔지 알기가 힘드니 있는 힘껏 다 하는 수밖에 없다. 지역·계층별로 소비자 입맛이 다 다른데 한 제품에 올인(다 걸기)하는 전략은 위험하다. 우리는 고객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만든다는 생각이다."

―약점으로 지적되는 소프트웨어는 어떻게 보강하나.

"삼성이 소프트웨어가 약한 게 아니다. 오래전부터 자체 OS와 사용자 환경(유저인터페이스·UI) 등 핵심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며 역량을 축적해왔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도 그냥 갖다 쓰는 게 아니라 전 세계 통신사에 맞게 일일이 손을 봐야한다. 그게 다 소프트웨어 역량이다. 더 좋은 스마트폰을 위해 1만건이 넘는 소비자 반응과 행태를 분석하기도 했다."

―애플과 진행 중인 특허 분쟁은 어떻게 되나.

"삼성에서 부품을 사가는 최대 거래처여서 '소송을 하지 말고 참자'는 의견도 많았다. 그런데 그쪽은 우리 제품을 아예 판매조차 못 하게 했다. 나도 내 사업을 지켜야 하는 입장인데 어떻게 가만히 있나. 직원들 사기도 있다. 현재로서는 타협으로 해결할 생각이 없다."

―올해 주목할 스마트폰의 트렌드는.

"기술적으로도 많이 발전하겠지만 감성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최근 출시한 스마트폰 '갤럭시노트'가 대표적이다. 여기에는 전자펜으로 글씨를 입력하는 기능이 있다. 사람들이 키보드나 터치스크린만 두드리다 보니 글을 쓰는 법을 잊어버렸다. 갤럭시노트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살리려고 의도적으로 펜 기능을 집어넣었다. 이 전자펜은 현재 가장 정확도가 높은 입력 도구다. 나도 회의 때 메모할 게 있으면 이걸 쓴다. 갤럭시노트는 월 100만대씩 생산할 정도로 반응이 좋다."

―요즘 특별히 관심을 두는 분야는.

"휴대폰과 연관된 주변 산업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금융과 기술의 융합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 내년에는 근거리 무선통신(NFC)이나 전자지갑 같은 기술이 실생활에서 쓸 수 있게 발전할 것이다. 플라스틱 신용카드가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살아가는 모습이 자꾸 바뀐다. 이런 게 스마트 라이프다."

―앞으로 기술은 어떻게 변할 것으로 보나.

"기술의 발전 속도는 순식간에 휙 성장한다. MP3(디지털음악)가 나왔을 때 음반 업계가 반발하고 갈등이 많았지만, 결국 그쪽으로 가지 않았나. 휴대폰도 듣고 말하던 기기에서 보고 즐기는 기기 위주로 바뀌었다. 올해는 4세대 이동통신(4G LTE)이 대중화되면서 새로운 서비스가 많이 나올 것이다. PC에서 하는 것과 똑같은 서비스를 스마트폰으로 즐길 수 있다."

―올해 세계경제가 어려울 것이라고 하는데.

"스마트폰 시장은 계속 성장하겠지만 전반적으로 세계경제가 작년보다 나아질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위기와 기회는 항상 공존한다. 눈에 잘 안 보이는 가운데 뒤섞여있는 채로 우리 앞에 다가온다. 책임자의 판단과 선견력이 중요하다. 직원들에게는 '생각은 많이 하되, 걱정은 말라(Just think, don't worry)'고 말한다. "

―구체적인 위기 극복 계획이 있나.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건 기술혁신(technology innovation)뿐이다. 경쟁자를 압도하는 기술혁신을 달성하는 것, 거기에 답이 있다."

―예산 줄이고 허리띠도 졸라매나?

"투자는 불황과 관계없이 타이밍을 맞춰서 한다. 주식 투자와 같다. 주가가 떨어지고 시장이 붕괴한다는 말이 나오면 그때가 주식을 사야 할 타이밍이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단기 실적도 중요하지만, 지금 투자한 효과는 몇 년 뒤에 나온다. 그러니 미리미리 투자해야 한다. 설비보다 사람에 대한 투자가 제일 중요하다. 결국 모든 일이 사람이 하는 것이다."

―경영을 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첫째가 관심이다. 새 일을 맡으면 책임감이 자연스럽게 생기고 관심이 생긴다. 아는 만큼 보인다. 요즘 신제품 발표회에서 사진기자들이 와서 날 찍으면 카메라 브랜드를 주의 깊게 본다. 연말 조직 개편에서 카메라 사업까지 담당하면서 생긴 변화다. 그전에는 기자들이 무슨 휴대폰을 쓰는지만 봤다."

―지독한 일벌레로 유명한데.

"온종일 전 세계에서 보내오는 보고서를 읽고 집에서도 전화기를 들여다보다가 잠든다. 다들 악착같이 했으니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 아닌가."

☞신종균 사장은

광운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30년간 무선통신과 휴대폰 분야를 파고든 엔지니어 출신 경영자. 2002년 국내 기업 사상 최초로 1000만대 판매를 돌파한 휴대폰(일명 '이건희폰')을 개발했다. '세계 최초' '세계 최고'란 타이틀이 붙는 제품 개발을 독려하고 "휴대폰에 삼성의 DNA(유전자)를 담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탁월한 성과를 바탕으로 특진을 거듭해 2010년 사장에 올랐다.

외국 생활을 하지 않았지만 해외 바이어를 만나면 직접 제품에 대해 영어로 설명한다. 개발자도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독학해 수준급 실력을 쌓았다. 삼성전자 내에서도 알아주는 '일벌레'이자, 승부근성이 강하기로 유명하다. 토·일요일까지 출근하는 날이 많아 참모들이 "제발 좀 쉬시라"고 간청할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