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년 전, 대한민국에는 희망이 없었다. 1961년 우리는 선진국들이 보내 주는 원조자금으로 나라 살림의 40%, 국방비의 95%를 썼다. 자원도 하나 없이 빚만 쌓여가는 대한민국은 어디를 봐도 가망이 없었다.

좌절과 무기력에서 우리를 건져 올린 것은 지금 '독재정부의 반(反)시장적 경제발전모델'이라고 비판받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었다. 1962년 도입된 이 계획은 최종 폐기된 1996년까지 한국 경제의 든든한 나침반이자 이정표로 기능을 다했다. 개발도상국은 이를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주도형 경제개발의 성공모델"이라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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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빛을 본 지 만 50년이 되는 해다. 비판도 있지만, 이 '계획' 덕에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무역 1조달러, 외환보유고 3000억달러의 경제 대국 대한민국의 오늘이 가능했다.

이제 우리는 정파와 이해관계를 떠나 대한민국이 직면한 새로운 도전에 대응할 새로운 50년의 비전을 고민할 때이다. 앞으로 50년의 새로운 비전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성장·분배의 '사회비전' 절실

본지는 국내 20대 그룹 CEO와 전략담당 책임자, 국책·민간연구기관장, 중소기업인 등 40명을 대상으로 새로운 50년 비전의 방향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대답은 경제비전보다 사회비전이 절실하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지난 50년의 그늘을 보듬고, 다가올 50년을 준비할 사회통합형 비전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응답자의 73%가 앞으로 경제정책은 성장 일변도를 넘어서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추구하는 방향'으로 틀을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진념 전(前) 경제부총리는 "이제껏 해오던 성장 중심 모델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 경제 규모에 맞는 사회적 안전망 구축,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으로 국민적 에너지를 결집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응답자들은 지난 50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소득양극화(38%)와 수출·내수 산업 불균형(23%), 재벌 독과점 심화(23%) 등 한결같이 양극화 현상을 지적하면서 향후 50년의 비전에 양극화의 해소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외 계층이 사회 내부에 잠재해 있으면 사회의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적절한 사회 통합 및 구조개혁 비전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교육이나 고용, 분배정책 같은 사회정책도 단발성 접근 방식을 버리고 과거 경제개발계획처럼 보다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고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조언했다.

◇정부에서 민간과 시장 중심으로

응답자들은 지난 50년간 경제성장의 비결로 '대외 원조를 산업에 투자한 정부정책'(43%)을 꼽았다. 대외 원조로 확보한 제한된 자원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수출기업에 몰아준 정부의 전략이 먹혀들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앞으로는 민간의 창의성과 도전정신이 성장의 모멘텀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강호인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정부 주도의 비전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미래 비전은 민간 중심으로 자연스레 형성돼야 하고, 정부는 이런 작업을 지원하는 역할 정도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 50년 비전을 만드는 데 어려운 점은 더 이상 우리가 벤치마킹할 선진 모델이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선진국과 해외 기업을 빠르게 추격하는 입장이던 우리 경제는 이제 스스로 성공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 선도자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설문 참여자 명단

정준양 포스코 회장, 정기영 삼성경제연구소장, 김억조 현대자동차 사장, 권오용 SK 사장, 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 이재성 현대중공업 사장, 임병용 GS 사장, 지창훈 대한항공 사장, 장일형 한화 경영기획실 사장, 표현명 KT 사장, 추성엽 STX 사장, 이광우 LS 사장, 권오철 하이닉스 사장,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 박광호 동부 사장, 김영준 롯데경영연구소장, 문홍성 두산 전략지원실장, 황선복 금호 경영전략실 부사장, 윤경림 CJ 부사장, 김성영 신세계그룹 전략기획팀 상무, 채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이주열 한은 부총재, 하성근 한국경제학회장, 김인호 시장경제연구원장,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장,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 오정근 고려대 교수, 신재윤 기획재정부 1차관, 김태준 금융연구원장, 최병일 한국경제연구원장, 최용식 에스에스티대표, 서석홍 동선합섬 대표, 한영수 한영넉스 대표, 주대철 세진텔레시스 대표, 권혁홍 신대양제지 대표, 장춘상 아륭기공 대표, 김동규 한창산업 대표, 정태일 한국OSG 대표, 배조웅 국민레미콘 대표, 김영래 한일세라믹 대표〈무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