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2~3번씩 채권단 회의를 하는데 회의를 할 때마다 룸살롱을 가자고 해요. 은행 직원 4~5명과 함께 가면 한 번에 700만~800만원씩 깨지는데, 채권단이 가자면 가야죠.”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 개선작업)이 진행 중인 중견 건설업체 A사의 한 간부는 회사 자금을 관리하는 은행 직원들의 비위를 맞춰주는 게 주된 업무다. 이 간부는 9일 “은행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데 하자는 데로 따라줘야 하지 않느냐”며 “자주 가다 보니 아예 단골로 정해 놓은 룸살롱도 있다”고 말했다.

A사가 채권단 중 하나인 F은행과 자주 찾는다는 룸살롱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A’업소로 1인당 비용은 70만~100만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이 유흥업소 관계자는 “대부분 ‘2차’까지 가는데 7~8명이 오면 1000만원이 넘지만, 자주 오는 단골이어서 800만원대로 맞춰준다”며 “가게엔 단골 기업 3~4개를 담당하는 상무만 80명이 있는데 요즘 건설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워크아웃 건설사가 늘어나는 가운데 일부 은행 직원들이 워크아웃 건설사를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파견 나와 건설사로부터 온갖 접대를 요구하고 건설사의 콘도를 빌리는 등 개인적인 민원까지 해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워크아웃 기업인 A건설사가 은행 직원과 자주 가는 것으로 알려진 강남구 신사동의 한 유흥업소 전경. 성매매 비용까지 포함하면 1인당 70만~100만원의 비용이 든다.

채권단이 워크아웃 건설사를 살리기보다는 빌려준 돈을 회수하는데만 몰두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일부 은행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더해지면서 “워크아웃 신청해봐야 은행 좋은 일만 시켜준다”는 인식까지 생기고 있다.

워크아웃 상태인 중견 건설업체 B사의 채권단은 B사와 회의를 할 때 회의 시간을 항상 오후 4시 전후로 잡는다. B사 관계자는 “회의 시간을 앞당기자고 해도 항상 3~4시로 잡는데, 회의 끝나고 밥 먹자는 얘기 아니겠느냐”며 “대부분 오후에 회의하면 저녁을 먹고 룸살롱 가는 분위기가 형성된다”고 말했다.

일부 워크아웃 건설사들은 자금 관리단 은행 직원들에게 법인카드를 발급하기도 한다. C건설사 관계자는 “연 1억원 한도의 법인카드를 은행 직원들에게 발급해 줬는데 용도는 무제한”이라며 “얼마나 쓸까 했는데 잘 쓰고 다니더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채권단이 워크숍을 가는데 콘도를 빌려달라는 것은 기본이고 술까지 사달라고 한다”며 “일부 은행은 신용카드를 강제로 발급해 직원들 신용카드가 5~6개씩 된다”고 덧붙였다.

일부 은행 직원들이 각종 접대를 받는 동안 워크아웃 건설사 직원들은 몇 개월째 월급을 못 받거나 사소한 복지 혜택도 못 누리는 경우가 많다.

D건설사는 그동안 직원 복지 차원에서 사옥에 입주한 커피숍에 장부를 만들어 직원들이 이용하도록 했다. 그러나 최근 자금 관리단이 장부를 검사하고 나서 “커피가격이 왜 이렇게 많이 나오느냐”며 커피값 지원을 끊고 직원들이 직접 돈을 주고 사먹도록 했다. D건설사의 한 직원은 “커피가격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치사하다”고 말했다.

워크아웃 건설사들이 은행에 쩔쩔매는 이유는 이들이 돈줄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나 오피스텔을 분양하려면 은행이 중도금 대출을 해줘야 하고, 일반 운영 자금도 은행 직원이 승인을 해줘야 쓸 수 있다.

한 워크아웃 건설사는 은행 직원이 자신의 지문을 인식하는 기계를 통해서만 결제를 할 수 있도록 해 은행 직원이 자리를 비우면 건설사의 대부분 업무가 마비된다.

은행이 기업을 살리기보다는 채권 회수에만 급급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워크아웃 중인 중견 건설업체 E사는 주채권 은행인 S은행으로부터 300억원을 지원받았지만, S은행은 준공을 앞두고 있던 한 아파트 사업장에 대부분의 돈을 투입하라고 지시했다. 준공 심사를 받으려면 하도급 업체에 미지급한 공사비를 모두 줘야 하기 때문이다.

E사 관계자는 “이 아파트 단지는 S은행이 주로 대출을 해준 사업장이었는데, 대출금을 회수하려고 준공을 서둘렀던 것 같다”며 “당시 직원들 월급도 3개월 이상 밀려 있고 급하게 쓸 곳이 많았는데 은행은 자기 대출금부터 회수하려는 꼼수를 부렸다”고 말했다.

채권단이 채권회수에 몰두하면서 기업의 알짜 자산을 모두 매각하는 사례가 빈번해지자 LIG그룹 계열사인 LIG건설과 동양건설산업처럼 워크아웃을 신청하지 않고 바로 기업회생절차(옛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기업도 있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과거엔 워크아웃을 신청하면 경영권을 지킬 수 있었지만, 요즘은 회생이 어려울 정도로 자산만 뺏기는 경우가 많아 워크아웃이 필요 없다는 인식도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은 이에 대해 “은행도 부동산 부실 대출로 인한 피해가 매우 크다”며 “고객 돈을 운영하는 만큼 최대한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워크아웃 건설사로 파견 나온 직원들이 접대를 받는 것에 대해 한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건설사가 대출을 받기 위해 먼저 은행 직원들에게 룸살롱에 가자고 하는 경우도 많다”며 “이들을 피해 다니는 것도 곤욕스러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