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발전은 지난달 23일 인천시 남동구 수산정수사업소 지붕에 1000㎾급 태양광 발전소를 지었다. 인천시내 350여 가구가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발전량이다. 동서발전도 지난달 초 부산 르노삼성차 공장 지붕과 주차장에 태양광 발전소를 짓기로 했다. 앞서 남동발전은 지난여름부터 충남 아산 삼성전자 탕정사업장 옥상에 1200㎾급 태양광 발전소를 가동 중이다.
최근 발전회사의 태양광 발전소 건설이 잇따르고 있다. 발전소 장소는 대형 공장 옥상이 대부분이다. 발전회사들이 태양광 발전소 건설에 나서는 건 발전량 일부를 의무적으로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한 'RPS(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 제도 시행이 불과 한 달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전사들은 아직 내년 신재생에너지 의무 공급량만큼 발전 설비를 확보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이대로 내년 1월부터 RPS제도가 시행되면 일부 발전사는 의무량의 10%도 못 채울 형편이다. 한 발전회사 신재생에너지팀 관계자는 "발전사들이 RPS 의무량을 채우지 못해 과징금을 맞는 일이 속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13개 발전사, 전력량 2% 신재생에너지로 공급
RPS는 발전회사가 연간 전력 생산의 일정량을 의무적으로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공급하는 제도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시장확대와 경쟁력을 키우는 게 목적이다. 내년에는 올해 발전량의 2%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해야 한다. 이 비율은 매년 0.5~1.0% 포인트씩 늘어나 2022년에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10%까지 늘려야 한다.
적용 대상은 원전 1기의 절반 정도인 50만㎾ 이상의 발전 설비를 가진 발전회사. 한국수력원자력과 5곳의 한국전력 발전 자회사, 수자원공사·지역난방공사와 민간발전회사 등 13개 발전회사다. 정부는 앞으로 RPS 적용 대상을 전력 소비가 많은 대기업으로도 확대할 계획이다.
RPS가 적용되는 13개 발전회사는 직접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갖춰 내년부터 의무량을 채우거나, 의무량을 못 채울 경우 민간 발전회사가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명서인 공급인증서(REC)를 구매해 해결해야 한다.
앞서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위해 2001년부터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운영해왔다. 생산 원가가 비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용과 전기요금 차이를 정부가 직접 예산으로 보전해주는 제도다. FIT는 올해 말 폐지되고, 내년부터는 RPS로 전환된다. 정부 입장에서는 재정 부담을 줄이면서 동시에 신재생에너지 시장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RPS 도입으로 내년 4조1000억원 규모인 신재생에너지 시장이 2022년 54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추정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미국·영국·이탈리아·스웨덴 등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9개 국가가 RPS를 도입했고, 20개 국가는 FIT를 운영 중이다.
◇발등에 불 떨어진 발전사
RPS 시행 한 달을 앞두고 발전회사는 초비상이다.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내년 발전량의 2%를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A 발전회사 관계자는 "의무량의 반의반도 못 채울 것"이라며 "정부가 목표치를 너무 높게 잡았다"고 비판했다.
RPS 시행으로 한전의 발전 자회사가 내년에 확보해야 하는 신재생에너지 설비는 180만㎾ 수준이다. 원전 2기와 맞먹는다. 반면 운영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설비 규모는 30만~40만㎾로 의무량의 20% 정도에 불과하다. 발전회사들은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늘려야 하지만 환경파괴를 우려한 주민 반발과 정부 부처 간 엇박자로 설비 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다. 중부발전은 2006년부터 강화도에 조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환경 파괴를 걱정한 주민 반발로 6년이 지난 현재까지 착공조차 못 했다. 강원도 양구에는 풍력발전 시설을 지으려 했지만, 생태보전·문화재보호 때문에 사업이 중단됐다.
이 때문에 발전사들은 당장 내년 부족분을 공급인증서(REC) 구매로 해결할 계획이다. 하지만 내년 13개 발전사의 신재생에너지 의무 발전 규모는 9000GWh지만 2009년 우리나라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4617GWh에 불과하다. 신재생에너지 설비가 제한된 상황에서 시장에서 거래될 공급인증서도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발전사들은 RPS 시행 첫해부터 무더기 과징금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B 발전회사 관계자는 "현재로선 과징금을 무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RPS 사업을 주관하는 에너지관리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는 "내년 의무 발전량의 30%는 다음해로 넘길 수 있고, 공급인증서 구매를 통해 대부분 의무량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RPS로 태양광 등 위축 우려
정부는 RPS 제도를 통해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태양광·풍력 등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드는 '설비형' 신재생에너지 분야는 오히려 투자 감소와 글로벌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발전회사들이 비용 부담 때문에 태양광이나 조력·풍력 등 설비형 신재생 에너지보다 발전 단가가 상대적으로 싼 폐기물을 기존 화력발전 연료와 섞어 사용하는 방식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3년 글로벌 태양광 시장에서 50%의 점유율을 기록했던 일본은 RPS 시행으로 지난해 시장 점유율이 14%로 떨어졌다.
정부는 설비형 신재생에너지 투자 기피를 막기 위해 내년 의무량 중 20만㎾는 반드시 태양광 발전으로 채우도록 했다. 또 중소 태양광 업체를 키우기 위해 태양광 의무 발전량의 절반은 외부에서 공급인증서를 구매해 채우도록 했다.
☞RPS(Renewable Portfolio Standards·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 제도)
발전회사가 연간 전력 생산량의 일정 비율을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공급하도록 의무화한 제도. 신재생에너지 공급 비율은 내년 2%를 시작으로 2022년에는 10%까지 늘려야 한다.
☞공급인증서(REC·Renewable Energy Certificates)
민간 발전회사가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명서다. RPS를 적용받는 13개 발전회사는 신재생에너지 의무 공급량을 채우지 못할 경우 시장에서 거래되는 공급인증서를 구입해 의무량을 채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