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두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한 해운업계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말이 돌았다.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로 이어지는 겨울이 되면 중국에서 미국으로 움직이는 물동량이 늘기 때문에 침체에 빠진 해운업에도 생기가 돌 수 있다는 기대였다. 하지만 기다렸던 크리스마스가 코앞에 왔지만 웃고 있는 해운업체를 찾아볼 수가 없다.

사상 최악의 한 해를 보낸 해운업계지만 내년 생각에 더 막막해진다. 불황이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 중형해운사 사장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상황이 심각하다. 소형선사는 물론이고 중형선사도 내년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올해 최악의 삼중고 겪은 해운업계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던 해운업계는 불과 1년 만에 적자의 늪에 빠져들었다. 해운업 자체가 호황과 불황을 오가는 산업인 점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극적인 변화다. 전문가들은 해운업이 갑자기 침체에 빠진 이유로 크게 네 가지를 든다.

우선 고유가로 인한 비용 상승이 크다. 2009년 1월에 t당 262.8달러였던 벙커C유 가격은 올해 들어 500달러를 넘기고 최근에는 700달러까지 오른 상태다. 불과 2년 사이 3배가 올랐다. 해운업계에서는 기항지를 바꾸는 등 고유가를 극복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짜냈지만 연일 오르는 기름 값 앞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글로벌 대형 선사들의 출혈경쟁과 선복량 과잉으로 인한 운임 하락도 치명적이다. 최근 세계 2·3위 컨테이너선사들이 선박 공동운영 얼라이언스(협정)를 체결하는 등 대형 선사들의 합종연횡이 이뤄지고 있다. 이들은 박리다매 전략으로 많은 물량을 한꺼번에 계약해서 싼 운임에 실어나르고 있다. 이미 아시아~미주, 아시아~유럽 등 주요 항로의 운임은 지난해의 70% 수준으로 떨어졌다. 경쟁이 불가능한 선사들은 속속 시장에서 퇴출되고 있다.

선진국 경기 둔화도 해운업계에는 걸림돌이다. 국내 선사들은 주로 아시아에서 유럽이나 미국으로 나가는 물량으로 수익을 올리는데 선진국 경기가 둔화되면 당연히 물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등 국내 해운업체들은 이미 미국 서부 지역으로 향하는 일부 노선 운항을 중단했다. 운항을 해도 손해라는 판단에서다.

◆ 내년에도 어렵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끝나가고 있지만 해운업계는 내년에도 불황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보다는 시황이 살아나겠지만, 미미한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많다.

조선·해운 전문연구기관인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김우호 해운시장분석센터장은 “내년에도 선박 공급량이 관건이 될 것이다. 일단 신규 투입 예정량은 내년에도 올해 수준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KMI는 내년 벌크선운임지수(BDI)를 1600~1800포인트로 보고 있다. 올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여전히 손익분기점으로 불리는 2500포인트에는 근접하지도 못한다.

최근 한국을 방문했던 독일 해운·물류 연구기관 ISL의 부르크하르트 렘퍼(Burkhard Lemper) 박사도 “2012년 여름에도 올해와 같이 선박 투입율이 늘어날 것”이라며 “내년에도 컨테이너 시장은 소폭 회복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 허리띠 졸라맨 국내업체들

국내업체들은 내년까지 이어질 불황에 철저하게 대비하는 모습이다. 한진해운은 올해에만 회사채 발행과 유상증자, 해외 전환사채 발행, 감천터미널 매각 등으로 1조원이 넘는 현금을 확보했다. 지난 9월말 남아있는 현금만 7315억원이다. 현대상선도 올해 들어 두 번의 회사채 발행을 통해 6800억원 정도의 자금을 조달하는 등 현금 확보에 매진하고 있다.

이미 수천억원의 현금을 확보했지만 해운업계는 여전히 불안한 모습이다. 내년에도 불황이 예상되는데다 자금 여건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해운업체들의 내년 현금흐름 전망치는 계속 악화되고 있다. 현대상선이 지난 7월말 3201억원에서 마이너스 919억원으로 악화됐고, 한진해운도 4196억원에서 2721억원으로 악화됐다. 현금흐름은 영업 활동으로 번 돈에서 투자에 들어간 돈을 제외하고 남는 여윳돈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 때문에 해운업체들은 유동성 마련 외에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군살을 빼고 있다. 수익이 떨어지는 노선 운항을 중단하고, 조금 늦게 가더라도 연료를 적게 쓰는 경제적 운항속도를 준수하는 등 비용절감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한진해운은 임원들의 급여를 10% 반납했다. 김영민 한진해운 사장은 최근 사내게시판에 “어려운 시기인 만큼 각자 위치에서 맡은 바 최선을 다하고, 다양한 비용절감 활동으로 수익성 개선에 힘써달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국내 해운업체들이 불황에 대비해 현금을 충분히 확보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내년에도 글로벌 해운 시황이 긍정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해운업체들의 수익이 당장 개선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