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산 와인의 가격거품이 심각하다. 한국 소비자들은 FTA를 체결해 관세가 전혀 붙지 않는데도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값을 치르고 칠레산 와인을 마시고 있다. 소비자시민모임이 지난 8일 발표한 국제 물가비교에서 칠레산 '몬테스알파' 카베르네 쇼비뇽 국내 판매가격(4만4000원)은 조사대상 18개국 중 가장 비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FTA로 관세 없어지고서 가격 오히려 올라

와인 소비자가격은 '수입원가+세금+통관·보관·운송비+수입상 마진+도매상 마진+소매상 마진(이윤)'으로 구성된다. N사가 수입하는 몬테스알파의 수입원가는 8370원(7.5달러)이다. 여기에 주세(酒稅)와 교육세, 부가가치세 등 세금 3875원이 더해진다. 수입과정에서 발생하는 통관비, 보관비, 국내 운송비 등은 수입원가의 8% 정도. 이 모든 것을 더해도 몬테스알파의 국내 수입상 입고가격은 1만3000원이 채 안 된다. 그러나 소비자 판매가격은 4만4000원이다. 유통 과정에서 수입상과 도·소매상 등이 챙기는 마진이 3만1000원이나 되는 것이다.

2009년 칠레산 와인에 부과되던 15%의 관세는 완전히 없어졌다. 몬테스알파 수입원가(8370원)를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와인 1병에 붙는 총 세금은 5711원에서 3875원으로 1836원이 줄었다. 그러나 몬테스알파의 판매가격은 오히려 올랐다. 2008년 3만5900원에서 해마다 올라 올해는 4만4000원까지 뛰었다. 수입상·유통상들이 높은 마진율로 폭리를 챙기는 통에 정작 소비자들은 FTA로 인한 관세 인하의 이득을 전혀 누리지 못한 것이다.

"프랑스 와인 마진은 30~40%, 칠레산 와인은 최고 70%까지 폭리"

K사가 수입하는 칠레산 와인 '1865'도 비슷한 가격 구조다. 수입원가는 8달러 정도로 1만원이 채 안 되지만, 소매점에서 판매되는 가격은 4만7000원이다. 1865나 몬테스알파 같은 인기 와인은 수입상들이 도매상에 물건을 넘기면서 50~70% 정도의 마진을 챙긴다. 한 와인 수입업자는 "칠레산 와인은 국내 와인 시장에서 가격구조가 가장 왜곡된 상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이탈리아, 미국산 와인은 업체들이 30~40%의 마진을 남기지만, 칠레산은 50%에서, 심할 경우 70%의 마진을 남긴다"며 "가격을 높게 붙여도 장사가 잘되니 업체 입장에서 굳이 가격을 낮출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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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와인 전문가는 "2000년대 들어 칠레 와인이 국내에서 비정상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가격 거품이 생겼다"며 "국내에선 필요 이상으로 비싼 칠레 와인이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이상한 현상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소비자들은 '칠레 와인은 저렴하다'는 잘못된 선입견을 갖고 있고, 수입상과 유통상은 이를 악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국내에서 칠레산 와인 소비는 크게 늘었다. 2001년 칠레산 와인 수입액은 65만2000달러에 불과했지만, 2010년 수입액은 프랑스산 와인(3598만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2450만달러에 달한다. 10년 사이에 37배나 성장한 것이다. 올해 9월까지 칠레산 와인 수입액(2224만달러)은 미국산·스페인산·호주산 와인 수입액을 더한 것보다 많다. 와인업계에서는 "칠레 와인업자들은 한국 덕분에 먹고 산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대형 유통업체 와인 바이어 S씨는 "몬테스알파나 1865를 만드는 와이너리는 모두 한국에서 번 돈을 가지고 미국·일본 등 시장에 진출한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몬테스알파M, 한국은 19만5000원-영국은 5만8000원

중저가 와인에 비해 수요가 적은 고가 와인에서도 칠레산은 가격거품이 심하다. 2005년 APEC 정상회담 만찬 때 사용된 '몬테스알파M'은 국내에 잘 알려진 프리미엄 칠레 와인이다. 국제 와인가격 비교 사이트인 와인리서처닷컴(www.wine-researcher.com)에서 2006년산 몬테스알파M의 국가별 가격을 살펴보니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한국 가격은 19만5000원으로 나오는데 영국에선 3분의 1도 안 되는 5만8000원이었다. 달러로 표시되는 가격을 10일 기준환율(원달러)로 환산해보니 홍콩(6만5000원)·그리스(7만9000원)·미국(8만8000원)에서도 국내의 절반 이하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와인이 상대적으로 비싼 중국(14만4000원)조차도 한국보다 5만원 이상 저렴했다.

'칠레산 와인이 과도하게 비싸다'는 비판에 대해 와인업계는 "높은 세금과 수입과 판매를 겸할 수 없는 유통구조적인 문제가 가격을 올리는 주요 원인"이라고 항변했다. 몬테스알파를 수입하는 N사 관계자는 "2년째 적자를 보는 마당에 수입업체가 폭리를 취한다는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며 "인터넷 판매를 할 수 없어 인건비나 매장 유지비가 많이 드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화점 내 매장에서 나가는 수수료나 대형마트 판촉 등 판매관리비 부담도 와인 가격을 높이는 이유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