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선물투자 의혹과 비자금 조성 수사를 압수수색을 통해 공개수사로 전환한 계기는 코스닥 상장사인 글로웍스의 주가조작 사건을 조사하면서 부터다. 글로웍스를 수사하다 SK 전 임원인 김준홍씨가 연루됐고, 김씨가 최 회장과 연결고리를 가졌다는 단서가 이번 압수수색을 단행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압수수색에서 최 회장의 자금유용 증거를 발견하고 구속할 경우 최 회장은 2003년에 이어 10년 새 2번 구속당하는 유일한 10대 그룹 회장이 되는 불명예를 얻을 수 있다.

그래픽=박종규

◆ 글로웍스 수사서 SK 연결고리 나와 회장 비자금 수사로 확대

박성훈 글로웍스 대표는 2009년 몽골 금광개발 추진 과정에서 허위공시를 통해 주가를 띄워 사상 최대 규모인 700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올 4월 구속됐다.

박 대표는 2000년 초중반 유명 음악포털인 벅스를 창립, 지분 문제로 소송에 휘말리다 회사를 네오위즈에 매각한 유명한 벤처기업인. 박 대표가 금광개발을 추진하면서 주가를 띄운 이면에는 그의 유명세도 한 몫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에 이 사건은 단순한 주가조작 사건으로 종결될 뻔 했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SK 그룹 전 임원인 김준홍 베넥스인베스트먼트(이하 베넥스) 대표의 이름이 나오면서 수사가 확대됐다. 김 대표는 박 대표와 함께 글로웍스 주가조적에 개입해 124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김 대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1998년 SK그룹에 입사해 3년 만에 상무로 초고속 승진했다. 김 대표는 최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과 하버드 케네디스쿨 동기이기도 하다. 김 대표가 세운 창투사 베넥스에는 SK그룹이 2800억원을 투자하면서 베넥스가 SK 위장계열사거나 최 회장의 개인금고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검찰은 이 같은 상황에서 SK그룹이 베넥스에 투자한 돈 중 일부가 세탁됐다는 정황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최 회장이 1000억원대의 손실을 본 선물투자 자금이 실제로는 SK그룹이 베넥스에 투자한 돈이라는 것이다.

최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SK그룹 부회장도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 7월 베넥스를 수사하다 김 대표의 개인 금고에서 최 부회장의 돈 120억원을 발견했다. 검찰은 최 부회장을 출국 금지시키고 120억원이 비자금일 가능성을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계열사 자금으로 선물 투자, 손실도 계열사가 채운 듯

그동안 SK그룹은 최 회장이 선물투자를 통해 5000억원대 손실을 입었다는 것에 대해 "선물투자는 최 회장 개인자금으로 한 것이라 회사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 같은 주장을 뒤집을 단서를 포착하고 압수수색을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

사정기관에 따르면 SK그룹 계열사들이 베넥스에 출자한 2800억원 중 500여억원이 2008년 10월 자금 세탁을 거쳐 김 대표의 차명계좌로 빠져나간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돈은 김 대표의 차명계좌를 거쳐 최 회장의 선물투자를 맡은 SK해운 고문 출신의 무속인 김원홍씨(해외체류)의 계좌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돈이 최 회장이 선물옵션에 투자했던 5000억원의 일부라고 보고 있다.

또 SK그룹은 SK가스, SK E&S, 부산도시가스 등 계열사 자금을 동원해 한 달 만에 500억원 상당을 베넥스 계좌에 되돌려놓은 것으로 조사됐다. 최 회장이 쓴 돈을 채워 놓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 압수수색으로 최 회장이 SK 계열사가 베넥스에 출자하게 하고 베넥스 자금 500여억원을 자신의 선물투자에 동원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밝혀지면 횡령 혐의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높다.

SK측은 "최 회장이 나중에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500억원을 모두 변제했다"며 계열사 공급 횡령을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 회장은 2003년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분식회계 사건 당시 계열사 자금을 동원해 선물투자에 나섰다가 손해를 보고 구속된 적이 있다.

◆ '최태원 미스터리' 주변 인물에도 관심

이번 사건의 핵심에 있는 인물은 베넥스 대표인 김준홍 씨다. 검찰은 베넥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SK텔레콤과 SK C&C가 출자한 돈이 세탁을 거쳐 김대표의 차명계좌로 빠져나간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최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98년에 SK그룹에 입사해 쉐라톤워커힐에서 근무하며 기획팀장, 비전추진실 상무 등 주요 보직을 두루 맡았다. 또 SK텔레콤에서 신규사업전략을 담당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연세대에서 생물공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국제금융석사를 받았다.

김씨는 SK그룹을 떠난 뒤에도 그가 대표로 있는 베넥스에 SK그룹 계열사들의 자금 2800억원을 유치하는 등 최 회장과 긴밀한 관계를 과시했다.

김 대표의 차명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간 김원홍 씨의 존재도 궁금증을 일으키고 있다. 김씨는 무속인 출신으로 SK해운의 고문을 지냈고 최 회장에게 선물투자를 적극 권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씨는 검찰 수사 초기 홍콩으로 출국해 잠적한 상태다.

최 회장에게 선물투자를 권유한 또 다른 인물에 대한 이야기도 돌고 있다. 미국계 헤지펀드 매니저로 알려진 은모씨다. 그는 재벌 2~3세 모임의 멤버로 최 회장과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모임은 최태원, 신동빈, 이웅렬, 정용진 등 재벌 2~3세들과 벤처부자들이 주축이 돼 설립한 투자모임이다. 지난 2003년 최 회장이 검찰에 구속될 때, 선처를 호소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은씨는 미국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외국계 IT기업에 입사해 9년 만에 한국 지사장을 맡았다. 이후 호주계 증권사로 옮겨 M&A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투자자문 활동을 했다. 그는 최 회장의 선물투자에도 직접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