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은 최근 시스템 엔지니어 출신인 버지니아 로메티를 CEO로 선임했습니다. 이 회사 설립 100년 만의 첫 여성 경영자입니다. IBM뿐 아닙니다. 휴렛패커드는 IBM보다 한 달 앞서 이베이 출신 여성경영자 멕 휘트먼을 CEO로 영입했고, 제록스는 미국 500대 기업 최초의 흑인 여성 CEO인 우슐라 번즈에게 경영을 맡겼어요. 오라클의 CEO 사프라 캐츠도 여성. 지금 미국 IT업계는 말 그대로 '여인천하'입니다.
기술적 측면만 강조해온 IT 분야는 최근 들어 사용자들과의 소통이나 감성적 측면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고 있습니다. 기계와 여성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던 고정관념은 그 둘 사이에 '감성'이라는 요소가 끼어들면서 빠른 속도로 허물어지고 있지요.
자동차산업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사용자로서 영향력을 넓혀가던 여성들이 이제는 단순 구매자를 넘어 개발자, 생산과 마케팅 전반에 핵심 역할을 하는 '키(key) 플레이어'로 참여하고 있어요. 특히 전기차 등 미래 자동차 개념이 등장하면서 감성적 요소의 비중이 커지고 있고, 그에 따라 여성들의 역할도 점차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볼보는 지난 2004년 여성 스태프들을 중심으로 팀을 꾸려 YCC(Your Concept Car)라는 새로운 콘셉트카를 선보였습니다. 당시에는 개발자들과 인터뷰를 하면서도 그저 이벤트 정도로만 여겼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YCC의 아이디어는 놀랍습니다. 차 높이는 미니스커트를 입고도 편히 오르내릴 수 있게 딱 맞췄어요. 양손 가득 핸드백과 쇼핑백을 들고 있더라도 뒤 타이어 옆에 서기만 하면 도어가 스르르 열립니다. 같은 방식으로 설정해두고 차 뒤쪽으로 가면 트렁크가 절로 열리지요. 바닥에 짐 내려놓고 자동차 열쇠 찾느라 허둥댈 일도 없습니다. 운전석 바닥에 하이힐 뒷굽 지지대가 있는가 하면, 보닛 열기를 두려워하는 여성 운전자들을 위해 워셔액 주입구도 차체 바깥으로 빼놓았어요.
그런데 몇 년이 지난 지금 이 차를 찬찬히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여성들만을 위한 콘셉트'가 아니라는 거죠. 짐 많을 때 자동으로 열리는 도어는 남성들에게도 너무나 편리한 기능입니다. 운전석 주변 곳곳에 마련해놓은 수납공간은 태블릿PC나 스마트폰 등 들고 다닐 물건 많은 요즘 남성들에게도 더 없이 고마운 장비고요. 여성들만 보닛 열기를 꺼려할까요? 사실 보닛 한번 열지 않는 남성들도 수두룩합니다.
여성들을 편하게 해줄 거라 생각했던 장비들은 알고 보니 남성들에게도 꼭 필요한 것들이었습니다. 남성들은 불편한 걸 불편하다고 말하지 않았거나, 아예 불편한 줄조차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었던 거지요. 이 '불편한 진실'을 깨닫고 나니 갑자기 IT업계의 몇 년 뒤가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