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이 지난 2일 일감이 떨어졌다며 휴업을 선언했다. 지난해 12월 15일 경영 악화를 이유로 생산직 노동자 400명을 희망퇴직시키기로 결정한 지 322일 만이다.

지난 3년간 선박을 한 척도 수주하지 못한 한진중공업은 2008년 9월에 수주한 11만t급 탱크선 2척을 이달 말 선주에게 인도하면 도크가 텅 비게 된다. 지난 7월 건조의향서(LOI)를 체결한 컨테이너선 본계약도 노사 갈등이 이어지면서 지연되고 있다. 설사 수주를 하더라도 설계와 자재구매 등 선행공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조선소는 10개월가량 할 일이 없다. 70년 역사의 한진중공업이 공전하고 있다.

◆ 김진숙 크레인 농성 300일째 이어져‥끝없는 노사 갈등

한진중공업이 휴업을 선언하기 하루 전인 1일은 공교롭게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올라간 지 300일이 되는 날이었다. 김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 노사가 정리해고 문제로 갈등을 빚던 지난 1월 6일 새벽, 35m 높이의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정리해고 철회를 주장했다.

노사분규를 1년 가까이 끌고 있는 한진중공업 사태는 지난해 12월 15일 시작됐다. 사측은 경영 악화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며 생산직 근로자 400명을 희망퇴직시키겠다고 노조에 통보했다. 노조는 즉각 반발했고 5일 만인 12월 20일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후 한진중공업 노사는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고공농성에 들어갔고, 노조 간부들도 2월 들어 추가로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사측은 희망퇴직을 거부한 생산직 290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하고, 크레인 시위자 등에 1억원대의 거액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사측은 부산 영도조선소와 울산공장, 다대포공장 등 3곳에 대한 직장폐쇄까지 단행했다.

노사 분규가 계속되는 가운데 유혈 사태도 발생했다. 6월 12일, 16대의 희망버스가 한진중공업에 도착했고, 시민단체와 노동운동가들이 한진중공업 진입을 시도하다 용역 직원과 충돌한 것이다. 이 일로 사측과 노조원 수십 명이 부상을 입었다.

한때 노사가 합의에 이르면서 사태가 해결될 조짐을 보이기도 했다. 사회적인 갈등이 극심해지자 노사는 6월 24일 노사협의회를 열고 사흘간 끝장협상에 들어갔다. 결국 6월 27일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총파업 철회와 조합원 현장 복귀를 선언했다. 하지만 강성 노조원들이 강하게 반발했고, 결국 한진중공업 사태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당시 노사합의를 이끌었던 채길용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은 최근 진행된 지회장 선거에서 탈락했고, 강성인 차해도 지회장이 당선됐다.

◆ 한국의 폴트라인 영도조선소

한진중공업 사태는 단순한 노사 분규를 넘어서 한국의 폴트라인(Fault Line)이 됐다. 폴트라인은 원래 지구를 떠받치는 판들이 서로 엇갈려 지진을 일으키고 있는 단층선을 의미한다. 하지만 지난해 IMF(국제통화기금) 수석 경제학자인 라구람 라잔이 자신의 저서 ‘폴트라인’에서 계층 간 소득 불균등의 심화를 세계경제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적하면서, 폴트라인은 다양한 이념들이 충돌하는 지점을 뜻하는 말로 더 널리 알려졌다.

영도조선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사 갈등은 정리해고 문제를 뛰어넘어 진보와 보수 등 다양한 가치들이 정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다섯 차례에 걸쳐 한진중공업을 방문한 희망버스에는 한진중공업과 관계없는 수많은 시민단체 회원들이 참여했다. 희망버스기획단은 오는 26일 6차 희망버스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국회에서도 한진중공업 사태는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영도조선소를 직접 방문하며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을 다짐했다. 결국 8월 18일 조남호 회장이 출석한 가운데 국회에서 청문회가 열렸다. 하지만 청문회는 이렇다 할 절충안을 마련하지 못 한 채 끝나고 말았다. 청문회에 참석한 국회의원들은 조남호 회장에게 정리해고를 철회하라고 윽박만 지를 뿐, 한진중공업 사측이나 노조가 납득할 만한 해결책을 찾아오지 않았다.

◆ 사태해결 의지 의심받는 경영진

조남호 회장을 비롯한 한진중공업 경영진의 무책임한 태도도 사태를 키운 원인이었다. 조 회장 측은 국회가 청문회 참석을 통보하자 해외로 출장을 나갔고 50여일 동안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출입국 기록을 확인한 결과, 해외에서 체류 중이라고 밝힌 기간 중 일부는 한국에 있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 3년간 한 척의 수주도 하지 못한 부분도 조선업계에서는 이례적으로 받아들인다. 한진중공업은 영도조선소가 좁은데다 지난 몇 년동안 이어진 조선업 불황으로 수주에 실패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조선업계 관계자는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는 중국 조선소들보다 경쟁력이 충분하고 수십년 동안 영업을 하며 쌓아온 네트워크도 상당할텐데 수주가 전무했다는 점은 경영진의 의지를 의심케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한진중공업의 경영 실적도 나쁘지 않다. 한진중공업은 2008년에 매출 2조173억원, 영업이익 3967억원을 기록했다. 2009년에도 매출 1조6145억원, 영업이익 2502억원을 기록했고, 지난해에도 매출 1조943억원, 영업이익 1497억원을 유지했다. 노조 관계자는 "조선업 불황으로 매출이 감소하는 것은 맞지만 영업이익을 충분히 유지하고 있는데, 충분한 논의도 없이 정리해고부터 실시하려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