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업계의 이른바 '치킨 게임'이 한국 기업의 승리로 끝날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치킨 게임이란 2대의 자동차가 서로 마주보며 달리다가 먼저 운전대를 돌려 피하는 쪽이 지는 '끝장 승부'를 말한다.
메모리반도체 업계는 수년째 공급 과잉과 가격 폭락으로 치열한 생존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 1위 삼성전자, 2위 하이닉스와 출혈 경쟁을 벌여 왔던 일본·대만 기업들은 결국 백기를 드는 분위기다.
◇반도체 '치킨 게임' 한국 승리로 끝난다
현재 D램 시장의 주력 제품인 1기가비트(Gb) DDR3의 가격은 0.5달러로, 사상 최저 수준이다. 대부분 업체가 물건을 팔면 팔수록 손해가 커지는 수준까지 떨어진 것이다.
그러자 결국 세계 3위 D램 업체인 일본 엘피다가 올 3분기 생산량을 20% 줄였다고 일본 언론들이 1일 보도했다. 엘피다는 그동안 일본과 대만 공장에서 매달 25만장 정도의 웨이퍼(반도체 원판)를 투입해 D램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수요가 부진하자 올 3분기에는 웨이퍼 투입량을 5만장 줄였다. 4분기에도 사용하는 웨이퍼를 1만장 이상 줄일 것으로 업계는 관측하고 있다.
대만 업체들은 이미 감산(減産)에 들어간 상태다. D램 세계 5위인 난야는 9월부터 생산량을 10% 줄였다. 세계 6위인 파워칩도 10월 들어 생산량을 50% 줄였다.
D램 업체들은 원가 이하로 물건을 팔면서도 누군가 먼저 손을 들고 나가기를 기다렸다. 주요 업체 한곳만 쓰러져도 공급이 부족해 반도체 가격이 폭등하고 순식간에 그간 쌓인 손해를 만회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삼성과 하이닉스가 굳건히 버티자 일본·대만의 중위권 업체들이 재고 처리와 자금난을 버티지 못해 사실상 항복 선언을 한 것이다.
◇나노공정 양산으로 기술 격차 벌려
한 번 감산에 들어간 업체가 다시 생산량을 과거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약 3개월이 걸린다. 장비를 다시 가동하고 웨이퍼를 집어넣어 최종 제품을 생산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감산을 한 업체는 당장 반도체 호황이 와도 재미를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일본·대만 업체들이 감산에 들어간 이유는 손해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엘피다는 지난 3분기에 매출 642억8000만엔(8200억원)에 영업적자 451억8000만엔(6465억원)을 기록했다. 반도체를 100원어치 팔면 손해가 70원 이상 난다는 의미다. 대만 업체들은 작년 연말 D램 가격이 1달러 수준으로 떨어질 무렵부터 영업적자를 내기 시작했다.
반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는 올 3분기에 1조59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주요 메모리 반도체 업체 가운데 유일한 흑자다. 하이닉스는 2분기 영업이익 4479억원에서 3분기에는 2770억원의 영업손실을 봤지만 대만·일본 업체와는 달리 견딜 만한 수준이다.
반도체 불황 속에서 국내 기업들이 경쟁사와 기술 격차를 벌리고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8월 20나노 공정 기술을 적용해 제품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하이닉스 권오철 사장은 "연말까지 20나노 기술 개발을 마치고 내년부터는 양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해외 경쟁 업체들은 아직 30나노 기술을 적용한 제품도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엘피다가 30나노 기술을 사용해 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시장에선 제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업계에선 삼성전자와 해외 경쟁업체 사이에 최소 1년6개월의 기술 격차가 있다고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에 D램 분야 시장점유율을 사상 최고 수준인 41.6%까지 끌어올렸다. 하이닉스의 점유율도 사상 최대인 23.4%였다. 두 회사를 합치면 65%에 달한다. 대만·일본 업체의 감산으로 두 회사 점유율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카메라·스마트폰에 주로 들어가는 낸드플래시 메모리도 사정은 비슷하다. 2분기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은 40.1%, 하이닉스의 점유율은 13.1%였다.
전문가들은 해외 업체들의 연이은 감산으로 인해 반도체 가격의 폭락세는 일단 멈췄다고 보고 있다. 현대증권 진성혜 연구원은 "4분기 D램 가격에는 큰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발 경제위기가 수습 국면으로 돌아서면 가격이 상승할 수도 있다. 한국 업체들에 제일 큰 과실이 돌아간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