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된 중고차 전조등 바꾸는데 30만원이라니. 참! 너무 억울했죠."

회사원 이모(35)씨는 최근 승용차 전조등이 깨져 정비소에 들렀다가 받아 든 견적서에 화들짝 놀랐다. 2008년식 윈스톰(SUV) 전조등 2개를 바꾸는데 수고비 포함한 견적비가 30만원에 달했던 것. 정품인 탓에 가격이 생각보다 비쌌다. "차도 헌 차인데, 전조등까지 새것일 필요가 있나 해서 중고를 알아봤어요. 새것과 다름없는 물건을 양쪽 모두 6만원에 살 수 있었어요."

24일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자동차 중고부품상 밀집거리. 중고부품 전문점 '진모터스' 김성진 사장은 "요즘엔 제주도에서도 주문이 들어온다"고 했다. 이날도 전남 순천에 사는 고객이 인터넷으로 주문한 그랜저XG 조수석 사이드미러를 포장 중이었다. "범퍼·전조등 중고 시세는 새것 정품보다 반값에 살 수 있어요. 경기가 어려운 탓에 작년보다 주문량이 30% 늘었어요."

24일 중고차와 중고부품 가게가 밀집한 서울 장안동의 한 부품가게에서 주인 김성진씨가 지방으로 보낼 중고 전조등을 손질하고 있다. 누렇게 변색된 표면을 약품처리하고, 전구를 갈아 끼우는 등의 간단한 작업으로도 10년 된 램프를 새것처럼 쓸 수 있다.

승용차 자가 운전자들 사이에서 중고 부품 재테크가 성행이다. 품질은 큰 차이가 없는데, 단지 헌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값은 크게 싸기 때문이다. 2002년식 EF쏘나타 앞범퍼 정품은 9만원대이지만 중고는 3만원이면 OK. 도색비(7만~10만원)와 장착비(3만~5만원)를 감안해도 32%나 싸다. 김 대표는 "중고부품도 3개월에서 최대 1년까지 무상수리해 주기 때문에 걱정 안해도 된다"고 말했다.

◇중고부품 시장 활기

자동차는 출고돼 해를 거듭할수록 값이 떨어지지만, 부품값은 그렇지 않다. 10년 된 EF쏘나타와 신형 YF쏘나타 앞범퍼 정품 값은 9만7000원으로 같다. 대림대 김필수 교수는 "시장가치가 300만원인 10년 된 중고차를 400만~500만원이나 들여 수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보니, 소비자들이 자연스레 중고부품에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고부품 온라인 쇼핑몰도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폐차장에 수집된 차의 멀쩡한 부품만 골라내 재가공한 뒤 품목별로 파는 새로운 업태다. 범퍼·램프·문짝·소음기·그릴처럼 동력 관련 핵심부품이 아닌 외관 부품이 주종을 이룬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일본의 폐차부품 재활용률은 90%에 달하지만 우리는 정반대다. 국내에서는 2009년 국내 15개 손보사가 자동차 부품비로 지출한 보험료(1조6600억원) 중 중고부품 사용률은 0.1%도 안 됐다. 보험개발원 이상돈 팀장은 "보험처리만 됐다 하면 너도나도 새 부품으로 '과소비'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정부 중고부품 사이트도 나와

보험업체들도 손해율(보험사가 가입자에게 보상금으로 내준 돈을 가입자에게 이미 받은 보험료로 나눈 비율)을 낮추기 위해 중고부품으로 수리하면 보험료를 일부 돌려주는 특약상품을 속속 출시 중이다. 현대해상·삼성화재 등 8개 보험사가 중고부품으로 수리할 경우 부품별 최대 5만원을 돌려주는 구조의 상품을 내놓고 있다. 보험개발원도 중소 부품사 컨소시엄을 모집해 온라인 중고부품 거래사이트(www.eco-aos.or.kr)를 열었다. BMW 딜러인 도이치모터스도 미국 중고차 경매 전문회사인 코파트와 손잡고 중고부품 사업을 준비 중이다.

지식경제부와 생산기술연구원은 소비자들이 중고 품질이 못 미더워 활용을 꺼린다고 보고, 정부 품질인증 대상을 현 4개(교류발전기·에어컨 컴프레서·등속조인트·시동전동기)에서 5년 내 30개까지 늘리기로 했다. 또 분해·재조립 과정을 거쳐 완전히 새 상품처럼 만드는 '재제조(再製造·Remanufacturing)' 시장을 지난해 6100억원에서 2020년 2조7000억원 수준으로까지 키우기로 했다.

☞ 재제조(再製造) 부품

중고부품 중 소단위로 분해·세척·보수·재조립 과정을 거친 뒤 원래 성능과 유사하게 재활용한 것. 현재 정부는 4개 품목(교류발전기·에어컨 컴프레서·등속조인트·시동전동기)에 대해 품질인증을 발급하고 있다. 전체 중고부품 시장 규모는 재제조 부품 시장의 10배 이상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