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광이라면 1980~90년대 메이저리그를 주름잡았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라는 팀을 기억할 겁니다. 1901년 창단 이후 총 아홉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던 명문 구단이에요. 이 팀의 마지막 월드시리즈 우승은 1989년이었습니다. 그 이후 재정난에 시달리다 선수단 총연봉이 가장 낮은 구단 중 하나로 전락합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 무렵부터 애슬레틱스의 매력이 빛을 발하게 되지요.
야구는 숫자 놀음입니다. 9이닝이 끝날 때까지 던지고 치고 달리는 모든 움직임이 정교하게 기록됩니다. 선수 연봉과 구단 수익성도 고심해야 합니다. 1998년 애슬레틱스의 단장에 취임한 빌리 빈은 바로 이 데이터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때까지 야구판을 지배하고 있던 모든 통설을 깨뜨리기 시작하지요. 그 결과 뉴욕 양키스 선수 연봉 총액의 30%에 불과한 애슬레틱스는 2000년대 들어 좋은 성적을 거두며 되살아납니다.
야구가 숫자 놀음이라지만 자동차산업에 비하면 조족지혈입니다. 우선 자동차 개발과 제작에는 엄청나게 정교한 숫자가 줄줄이 등장합니다. '자동차산업은 곧 금융업'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고도의 회계작업도 이뤄집니다. 자동차의 첨단화와 더불어 숫자의 비중은 나날이 커지고 있어요.
개발과 제작뿐 아니라 판매 통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고객들이 어떤 차종을, 어떤 장비를, 어느 정도의 성능을, 어느 정도의 가격을 선호하는지는 차곡차곡 데이터로 저장되지요. 애프터서비스센터를 찾는 고객들의 가장 큰 불만은 무엇인지, 가장 고장이 잦은 부품은 무엇인지, 가장 교체가 잦은 소모성 부품이나 가격 불만이 가장 큰 정비 내역은 무엇인지에 대한 데이터는 향후 경쟁력 유지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수입차시장에서는 정비나 부품 관련 불만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솟구치는 국산차 가격에 대해서도 고객들은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국산차 및 수입차 회사들이 시장과 고객들에 대한 데이터를 얼마나 많이 갖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숫자 놀음이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숫자에만 얽매인 숫자 놀음은 사람과 멀어지기 십상이지요. 빌리 빈 단장은 숫자와 데이터를 통해 혜안(慧眼)을 키운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데이터에 통달한 명감독들이 종종 '감'으로 허를 찌르는 건 바로 그 같은 통찰력의 힘이지요. 자동차회사들이 엑셀 파일 이면에 숨은 시장의 정서까지 헤아릴 수 있을지 새삼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