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로변은 이미 유명해져서 자리도 없거니와 임대료도 매우 높습니다. 그런데 요즘엔 골목 사이사이로 단독주택이나 소형 점포를 리모델링 해서 들어오는 마이크로(micro) 샵들이 확 늘었어요. 임대료도 입지에 비하면 저렴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제일기획 빌딩 인근. 올해 초 ‘꼼데가르송 길’이란 별칭이 붙으면서 제2의 가로수길(서울 강남구 신사동)로 떠오른 약 600여 미터의 이태원로는 흡사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명품거리 같았다. 삼성 미술관 ‘리움’을 시작으로 이 거리의 이름이 된 꼼데가르송 빌딩, SPC그룹의 ‘passion5’, 두바이 7성급 호텔 수석조리사 출신의 에드워드 권이 차린 레스토랑 ‘THE SPICE’ 등에는 깃발 든 가이드를 따라 움직이는 일본·중국 관광객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사관5로 전경. 단층 근린상가가 리모델링 시공이 한창이다.

최근들어 이 곳에 대한 관심은 대로(大路) 바깥쪽 주택 단지로 확산되고 있다. 2~3층 규모의 붉은 벽돌로 시공된 일반적인 주택과 점포들이 소호(SOHO), 카페, 부띠끄(의류·악세사리 소형 점포) 등으로 탈바꿈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남외국인아파트 인근에서 만난 한 주민은 "자주 가던 동네 잡화점도 어느새 없어지고 공사를 하고 있다"며 "동네 이곳저곳에서 인테리어 공사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임대료 2배 뛰어…자리 찾는 20~30대 디자인계 사람들 '북적'

제일기획 빌딩에서 길을 건너 꼼데가르송 길 뒤쪽으로 약 20m 내려가면 휘황찬란한 이태원로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주택 단지가 나온다. 벽돌로 시공한 주택과 1~3층 규모의 근린상가가 대부분인 이 곳은 전형적인 조용한 '벽돌 빌라 촌(村)'이다.

그런데 올해 초부터 젊은 디자이너들이 이 곳에 매장을 열면서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고 있다. 동네 주민 외에는 외부 유동인구가 거의 없는 지역이지만 공사가 한창이다. 국내 정상급 패션쇼인 '서울패션위크' 출신의 부부 패션 디자이너 스티브제이(정혁서)와 요니피(배승연)도 이곳에 매장을 준비하고 있다. '더 센토르'(THE CENTAUR)의 대표 디자이너 예란지씨는 이미 매장을 열었다.

인근의 중앙 공인 사장은 "칼국수집, 보일러 설비업체가 있던 자리에도 최근 젊은 디자이너들이 임대 계약을 맺어 시공 중이다"라며 "광고, 예술, 패션 업계 사람들이 매장이나 작은 사무실로 이용하기 위해 자리를 찾는다며 수도 없이 드나든다"고 말했다.

이 지역의 분위기가 점차 바뀌어 가면서 임대료도 상승했다. 다만 워낙 임대료가 낮았던 탓에 현 시세도 소위 '뜨는 지역'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사장은 "이곳에서는 33㎡(10평) 내외의 작은 공간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데 1년 전만 해도 그 정도 규모면 월세가 30만원 수준이었다"며 "최근에는 이태원로에서 내려오는 길목과 가까운 경우 보증금 1000만~3000만원에 월세 60만~90만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권리금도 없거나 1000만~2000만원 수준이 대다수다.

꼼데가르송 길 약도

◆ "현대카드 공연장 들어서면 제2의 합정·상수 거리 닮을 것"

이 일대가 인기를 끌게 된 것은 꼼데가르송 길과 더불어 오는 2013년 200여평 대지에 들어설 콘서트홀의 영향도 크다. 올해 2월 착공한 이 콘서트 홀의 소유주는 현대카드로 지하 6층~지상 3층 규모가 될 전망이다.

특히 이 콘서트 홀은 건축계에서는 최고로 치는 프리츠커 건축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을 지난해 수상한 세지마 카즈요와 니시자와 류에가 설계를 맡아 화제가 됐다.

제일기획 인근의 건축 설계 사무소 관계자는 "콘서트 홀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이곳 지도를 가져와 상담하시는 분들이 속속 생기고 있다"며 "현대카드에서 유치하는 콘서트가 워낙 많아서 이 동네에 콘서트 홀 때문에 방문하는 유동인구가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SPC그룹의 'passion5'와 200m 거리에는 뮤지컬 전용극장 '블루스퀘어'가 다음 달 4일 문을 연다. 이 공연장은 지하 4층~지상 4층 연면적 3만㎡ 규모로 한남 고가 차도와 맞닿아 있다. 따라서 이 곳을 찾는 관람객들은 '꼼데가르송 길' 상업 시설을 이용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상가정보연구소 박대원 소장은 "불과 1~2년 만에 한강진역에서 이태원역 사이의 대로변이 바뀐 것처럼 현대카드 콘서트홀이 들어서는 한남동 주택가는 유동인구가 증가하면서 문화·예술이 특화된 상권으로 발돋움할 것"이라며 "홍대 상권이 커지면서 합정동과 상수동 단독주택·빌라촌이 신흥 상권이 된 것처럼 이 지역도 비슷한 형태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