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스완, 예상치 못했지만 세계 경제를 뒤흔들 사건.

지난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를 파산시킨 미국정부는 나름대로 ‘별 것 아니다’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덩치가 크다고는 해도 파산시 영향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은 전혀 예측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리먼의 부실은 복잡한 금융 파생상품이라는 핏줄을 타고 수십배로 증폭되어 전 세계 금융권을 마비시켰다. 금융 자본주의의 꽃이라던 투자은행(IB)과 파생상품 모델이 처참히 붕괴됐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골디락스(물가상승 없는 호황)를 즐겨오던 세계경제는 이 한방으로 나락에 떨어졌고 3년이 지난 지금도 그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697년 호주 서부에서 검은색의 백조가 발견될 때까지 사람들은 검은 백조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검은 백조를 실제로 발견한 순간부터 그 믿음은 잘못된 것이 돼버렸다. 이처럼 검은 백조처럼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 실제로 나타나는 경우를 ‘블랙스완’이라 한다.

현재 한국의 경제체력으로는 지금 보이는 유럽 재정위기의 여파 정도는 충분히 넘을 수 있다는 예측이 일반적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혹시 나타날지 모르는 ‘블랙스완’이 가장 두렵다고 얘기한다.

물론 블랙스완은 ‘예측치 못했기에’ 블랙스완이며, 그렇기에 파괴력이 크다. 하지만, 혹시 모르는 ‘블랙스완’의 가능성을 모두 점검하고 대비하는 것이 혹시 더 커질 수 있는 위기, 그리고 그 이후를 대비하는 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조선비즈가 경제·금융·학계 전문가 11명을 대상으로 ‘앞으로 블랙스완을 발생시킬 요소가 무엇일까’에 대해 물어봤다.

◆ 환율전쟁과 무역보복…정치 리더십 실종이 ‘국가분쟁’이란 블랙스완 부를수도

최근 들어 금융시장에 영향을 가장 많이 끼치는 요소로 ‘정치’를 전문가들은 꼽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정치권에서 정부 부채 상한선 증액을 놓고 분열된 모습을 보이며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을 자초했으며, 유럽 재정위기 불똥이 유럽 정치 지도자들이 그리스 구제안을 둘러싸고 의견을 모으지 못하고 허송세월하는 동안 전 유럽으로 확산됐다.

세계 최대의 채권회사 핌코(PIMCO)의 최고경영자인 모하메드 엘 에리언은 최근 “부채협상에서 노출된 미국 정부의 정치적인 무능력함이 투자자들의 순매도를 이끌었다”며 “유럽의 위기도 정치인들이 단호한 대처에 실패함으로써 더욱 악화됐다”고 말했다.

정치 리더십 부재가 경제지표를 움직여 투자자들의 공포감을 키우는 마법 같은 효과가 있다고도 전문가들은 말한다. 양기인 신한금융투자 센터장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려간 주요국의 채권금리와 리보금리, 레버리지 등이 최근 상당 부분 정책 움직임에 따라 좌우된다”며 “이 지표들이 내려가면 현재 경제상황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아 보이게 해,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정책 리더십이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실제로 정치 리더십 부재가 초래할 블랙스완은 어떤 것이 있을까. 전문가들은 정치 리더십 부재가 향후 상황을 악화시켜 환율전쟁, 무역보복, 국가분쟁까지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한다. 하성근 연세대학교 교수는 “국제 문제를 다루는 IMF( 국제통화기금), WB(세계은행), G20 기관들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힘있는 국가들의 정치력이 개입되면 문제가 경제적인 논리로 해결되기보다 각국의 파워게임으로 연결될 수 있다”며 “이 경우 심각해지면 환율전쟁, 무역보복, 국가분쟁이라는 예상치 못한 블랙스완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조경표

◆ 은행부실이 재정부실로 재정부실이 다시 은행 부실로…어느날 나타날지 모르는 ‘뱅크런’이라는 블랙스완

이미 잘 알려진 문제이기는 하지만 유럽 재정위기가 유럽 은행위기로 번져 ‘뱅크런(은행이 망하기 전에 돈을 찾으려 기관· 예금자가 은행으로 몰리는 현상)’이 블랙스완을 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만약 뱅크런이 유럽의 어느 한 국가에서라도 발생한다면, 주변 재정불량국에서도 뱅크런이 전파될 수 있어 큰 혼란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대형금융기관의 자금융통 기능이 마비되면서 끝내 리먼 브라더스와 같은 대형 금융기관의 부도로 이어졌다. 최근에도 유럽 은행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예금인출 가능성에 대한 루머가 나돌고 있다. 지멘스, 영국 로이즈 등 일부 대기업들이 유럽 대형은행에 맡겼던 대규모 자금을 유럽중앙은행(ECB)에 예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기업들의 예금인출이 확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다만 유럽 은행들이 증자를 결정하면 은행권의 부실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황찬영 맥쿼리증권 전무는 “현재 유럽 은행들이 부실한 채권에 투자를 많이 해 오히려 부채는 안 줄어든 상황에서 자본마저 줄어들게 됐다”며 “유럽은행들이 의미 있는 증자를 한다면 은행부실이 전이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금융위기 당시 국내 기업은행, 신한은행, 부산은행 등도 증자를 실시하며 외국인들에게 한국은행들이 유동성 문제가 없다는 확신을 심어줬다”며 “금융위기로 바닥을 쳤던 은행업종이 증자로 바닥을 친 후 1년 동안 170% 급등했다”고 말했다.

◆ 상황은 그리스에서 멈출 수 있나?…‘연쇄 디폴트’라는 블랙스완

일부에서는 그리스뿐만이 아니라 유럽국가들의 줄줄이 디폴트를 내는 상황을 ‘블랙스완’으로 꼽는다. 이는 결국 신흥국의 위기로 이어지며 전세계 공멸의 시나리오가 된다.

그리스가 디폴트된다면 기업이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에 돌입하는 것과 같이, 당장 채무를 갚을 능력이 없는 국가의 채무를 탕감해주고 이 국가가 구조조정을 시행하도록 한다. 다만 채권단인 타 국가와 금융회사가 못 받는 돈의 금액이 커져 그 여파가 어느 정도 일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허연 크레디트스위스증권 상무는 “부도가 어떤 형태로 나느냐에 따라 시나리오는 달라지지만, 현재와 같이 아무런 대비책이 없는 상태서 두 개 이상의 국가에서 부도가 나타나 유로존이 붕괴된다면 충격이 무질서하게 발생할 것”이라며 “이 경우 S&P500지수가 750까지 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그는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 가능성을 10%로 내다봤다.

또 이로 인해 유로존이 붕괴되고 유로화가 없어지는 상황까지 갈 경우, 신흥국 은행들의 유동성도 직격탄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유로화가 없어질 경우 독일의 경우 통화 가치가 40~50%가량 높아져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며 경제가 어려워져 독일 은행들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 경우 독일이 해외에 대출해준 자금을 회수한다면 현재 독일에서 자금을 빌린 한국, 동아시아, 남유럽, 라틴아메리카 등의 국가의 외화유동성에도 비상등이 켜질 수 있다.

다만 일부에서는 그리스가 디폴트를 선언하면 더 이상 타 국가와 금융기관이 그리스에 돈을 쏟아붓지 않고 불확실성이 해소돼 긍정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또 만약 유럽이 디폴트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가지 않는다면 신흥국에는 기회가 된다는 의견도 있다. 황찬영 맥쿼리증권 전무는 현재 큰 그림으로 봤을 때 유럽의 패권이 아시아 신흥국으로 넘어오는 과정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는 파생상품이 얼마나 금융기관에 많이 엮여 있는지 모르니 해결하기가 복잡했지만, 현재 유럽 이슈는 훨씬 단순하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며 “다수의 전문가는 2008년도와 비슷한 정도의 위기가 오고 있다고 말하지만, 개인적으로 봤을 때 금융위기 때보다 상황이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은행들의 자기자본비율, 외환보유액, 충당금은 리먼사태보다 두배가량 개선됐다”며 “다만 심리가 악화돼, 기업들이 투자를 안 하고 사람을 안 뽑는다면 정말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고 말했다.

한편 다수의 전문가는 현재 상황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증시·환율·CDS·채권금리 등은 이미 최악의 상황을 반영한 수치라고 이야기했다. 허연 크레디트스위스 상무는 “현재 증시와 경제지표들은 실제 펀더멘털(기초체력)보다 훨씬 더 많이 빠져 있다”며 “블랙스완의 상황을 이미 금융시장은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