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급등한다고 난리인데 같은 위험자산인 주식은 강세. 유럽 재정위기는 수위를 더해가는 데 수요가 몰려야할 안전자산 채권은 오히려 약세.'
20일 국내 금융시장은 평소와는 다른 현상을 보였다. 개장초 이탈리아 신용등급 강등 소식이 전해지면서 투자심리가 위축되는 듯 보였지만 증시는 잠깐 하락한 뒤 이내 상승반전에 성공했다.
반면 원화값인 환율은 대외리스크를 충실히 반영하며 올랐다.(원화가치 하락). 위기가 부각되면 채권값은 뛰게 마련이지만 이날 채권금리 상승에서 보듯 오히려 채권값은 내렸다.
◆ 환율 뛰는 데 주가는 강세
20일 환율이 또 한 번 급등하면서 1140원대 후반까지 올라섰다. 장중 1150원을 넘기도 하는 등 환율은 지난해 12월 이후 최고치까지 뛰었다. 금융당국이 진화에 나섰지만 소용이 없었다.
환율이 뛰면 일단 외국인들의 자산 가치가 감소, 손절매 물량이 나올 수도 있어 주식과 채권 모두 부담이다. 실제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는 1700억원대의 외국인 순매도가 기록됐다.
하지만 코스피지수는 1% 가까이 상승, 환율부담에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일부 환율급등을 즐기는 현상도 생겨나고 있다. 수출주를 중심으로 한 제조업 주가의 상승이 바로 그것이다.
이날 전기전자업종은 1.6%, 화학은 1.5%, 운송장비 업종은 1.3%씩 오르며 지수상승을 주도했다. 삼성전자(005930)와 현대자동차, 기아차, 하이닉스반도체 등 그동안 환율급락에 움추렸던 수출 주도주들이 모처럼 기지개를 폈다.
◆ 환율급등? 아직은 감내할 수 있는 수준
전문가들은 환율과 증시와의 관계가 밀접한다 한들 그렇다고 해당 거래의 방향이 매일매일 100% 일치하는 것으로 보는 것 자체가 곤란하다고 해석했다.
이날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은 순매도를 보였지만 이들의 매도를 받아낸 건 프로그램 매수였다. 한 마디로 저가매수가 들어온 것.
한 자산운용사의 주식운용본부장은 "거래가 소강국면인 상황에서 대규모 프로그램 매수가 들어오자 지수가 올랐다"며 "이건 환율의 급등락과는 크게 상관없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8월 이후로는 국내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정황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9월 들어 외국인 이날까지 외국인 순매도 규모는 1조원이지만 이는 8월의 5조원에 비할바가 못된다. 채권은 오히려 2조원대의 순매수다.
이상원 현대증권 연구위원은 "최근의 환율 급등은 심리적, 혹은 투기적인 성향이 반영된 것이지 금융자산 투자자금의 이동으로 인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 증권사 고위 임원도 "유럽의 재정위기가 심각하다고는 하지만 당사국이 아닌 이상 한국은 아직까지 펀더멘털(기초체력)에 의한 매매가 가능한 시장"이라며 "1800 아래로 내려가면 사자는 나온다"고 말했다.
◆ 외국인 팔자 뚜렷치 않아…더 오르면 불안
물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외국인의 경우 환율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유럽계 자금이 조금씩 새고 있는 상황에서 환율까지 오르게 되면 자금 이탈속도가 가팔라질 수 있다는 것.
최창규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외국인은 현물 뿐만 아니라 선물, 특히 야간선물에서 매도를 지속하고 있다"며 "아래방향을 보고 베팅한다는 얘기인데 글로벌 리스크를 쫓아가는 것이라 환율이 더 오르면 지금과 다를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는 채권시장도 마찬가지다. 채권의 경우 8월 폭락장 이후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에 선호가 부각됐지만 추석연휴 이후로는 줄곧 약세다. 외국인은 현물을 사고는 있지만 국채선물 시장에서 꾸준히 매도 포지션을 쌓고 있다.
한 보험사의 채권매니저는 "지금까지는 오히려 8월에 급등한 부분이 조정을 받아 시장 가격을 찾아간다는 분위기"라며 "하지만 환율이 더 오르면 물가부담이 커지면서 금리를 자극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