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직후의 아우디 차량. 이 상태에서 수리비 900만원이 들어간다.

고가의 수입차에 들이받힌 ‘피해 운전자’가 자신의 승용차 수리비의 6배가 넘는 돈을 지불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27일 보험업계와 경찰 등에 따르면, 운전자 A(여·35)씨는 지난달 21일 자신의 산타페 차량으로 서울 송파구 신천동의 한 교차로를 지나던 중 교차로 오른쪽에서 진입해온 핑크색 아우디에 자동차 우측 뒷부분을 부딪쳤다.

이 사고로 A씨의 차량은 우측 뒤편 펜더와 휠, 범퍼가 망가졌고, 핑크색 아우디는 앞범퍼와 보닛, 라이트 등이 깨졌다.

사고 당시 아우디 운전자는 자신이 피해자라며 경찰에 신고했고, 보험사 직원이 도착할 때까지 차에서 내리지도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조사 결과, 사고는 교차로에 먼저 진입한 A씨가 늦게 진입한 아우디에 들이 받친 상황이란 점이 감안돼, A씨가 피해자, 아우디 운전자는 가해자로 각각 분류됐다.

그러나 ‘피해자’ A씨에게는 자신의 산타페 수리 비용인 60만원의 6배에 달하는 360여만원이 ‘차량 수리비’로 청구됐다.

사고가 발생하면 양측 차량의 수리비를 합산한 뒤, 이를 기계적으로 ‘과실 비율’에 따라 나눠 내도록 하는 우리 법원의 판례 때문이다. 이 사고에서 아우디 차량의 수리비는 900만원이 나왔고, 경찰과 보험사 측은 과실 비율을 ‘A씨 40%, 아우디 운전자 60%‘로 보고 있다.

A씨는 “내 갈 길을 가다 뒷부분을 다른 차에 받혔는데 너무 억울하다. 고급 외제차가 법규를 위반해 운전하더라도 보통 사람들은 이를 알아서 피하지 못하면 거금을 물어내라는 소리 아니냐”고 말했다. A씨는 “현재 논의 중인 4대 6의 과실 비율도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소송까지 검토 중”이라고 했다.

A씨와 같은 사례 때문에 국내 보험업계와 법조계 일부에서는 교통사고 시 잘못이 조금이라도 더 큰 쪽에 전적으로 책임을 물리는 경우가 많은 ‘독일식 판결’이 적용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법원의 한 재판연구관(판사)은 "고가(高價)의 외제차 비율이 높아지면서, 거의 잘못이 없는 상태에서도 자신의 차량 수리비 몇 배에 해당하는 돈을 무는 선의의 피해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현행 교통사고 처리 과정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많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날 사고를 낸 핑크색 아우디 차량은 걸그룹 출신 연기자 B씨의 소유로, 사고 당시에는 그의 모친이 운전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