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88층짜리 페트로나스 트윈타워(Petronas Twin Tower) 앞 버스정류장. 10여m 줄을 서서 기다리던 시민들은 버스가 도착하자 모두 빨간색 플라스틱 교통카드를 꺼내 들었다. 테오 메이 밍(Meng·72)씨는 "나이 든 사람들은 버스 요금 낼 동전을 찾다가 버스를 놓치기 일쑤"라며 "카드를 목에 걸고 다니다가 버스가 보이면 바로 탈 수 있어 매우 편리하다"고 말했다.

이 카드는 서울 교통카드와 모양이 흡사하다. 서울시와 LG CNS가 공동 출자한 ㈜한국스마트카드가 말레이시아 대중교통공사 '프라사라나(Prasarana)'에 공급한 선불 교통카드이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시내버스에 탄 줄카르나인(Zulkarnain₩오른쪽)씨는"한국의 티머니(T-MONEY) 시스템을 이용하니 버스 타기도 편하고 경제적으로도 이득"이라고 말했다.

◆ 말레이시아도 "'티머니' 교통카드 좋아요"

한국스마트카드와 LG CNS는 지난 2월 쿠알라룸푸르에 버스 교통카드 운영시스템을 구축했다. 동전과 지폐로 버스 요금을 내던 쿠알라룸푸르에서 티머니 시스템의 '약효'는 즉각 나타났다. 하루 25만명 수준이던 버스 이용객이 한 달 만에 2만명이 늘었다.

프로톤(proton)·마이비(myvi) 등 값싼 소형차가 기록적으로 팔려나가면서 심각한 교통 체증으로 골머리를 앓던 시(市) 당국으로서는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프라사라나에서 버스회사 래피드케이엘(RapidKL)을 총괄하는 책임자 다토 모하메드 하즐란(Hazlan)씨는 "버스 이용객이 급작스럽게 늘어나 버스 500여대를 추가로 구매했다"고 말했다.

버스 회사도 매출이 확 늘었다. 버스 이용객은 10% 늘었지만 수입은 20% 증가했다. 일부 기사들이 버스비를 현금으로 받으면서 몰래 챙겼던 금액이 제대로 수납된 것이다. 래피드케이엘의 압둘 아지즈(Aziz) 사업운영팀장은 "버스 기사들이 요금을 가로채는 나쁜 관행이 교통카드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사라졌다"고 말했다. 또 "같은 구간을 운행하는 시간도 20분가량 줄어들어 운행 횟수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승객들에게도 합리적인 혜택이 돌아갔다. 학생 네로시니(Neroshini·19)양은 티머니 카드를 이용하면서 버스비가 줄었다. 이전에는 거리에 상관없이 무조건 2링깃(760원)을 내던 버스요금이 이동에 거리에 따라 차등 부과되고 있기 때문이다. 티머니 시스템은 위성항법장치(GPS)를 통해 승객이 타고 내리는 정거장 위치를 파악한다. 네로시니는 집에서 학교까지 3정거장 밖에 되지 않아 요금을 1링깃 정도만 낸다. 버스비가 절반으로 내린 것 같은 효과다. 반면 장거리 이용객의 요금은 최대 3링깃이다.

카드 발급과 충전은 우리나라보다 더 간단하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가판대나 편의점에서 카드를 사거나 요금을 충전하지만 쿠알라룸푸르에서는 버스 내에서 카드 발급과 충전이 가능하다. 티켓 자동판매기를 버스 기사 옆에 설치해놨다. 한국스마트카드의 서정형 사업개발팀장은 "쿠알라룸푸르에는 한국처럼 가판대가 없고, 편의점과 제휴하는 건 비용부담이 크기 때문에 카드자판기를 버스에 설치했다"며 "시민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현지 일간지 '뉴 스트레이츠 타임스'는 지난 6월 "시민에게 외면받던 버스가 티머니 시스템 도입 이후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쿠알라룸푸르 시내버스에 장착된 카드단말기와 판매기

◆ 인도·멕시코에도 한국 교통카드 수출 추진

한국스마트카드는 LG CNS와 함께 지난 2008년부터 뉴질랜드의 웰링턴과 오클랜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버스 운영과 교통카드 시스템을 공급했다. 지난달에는 남미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의 1만2000대 버스 운영 시스템 구축사업을 3억달러(3200억원)에 수주해 본계약을 앞두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2004년 버스 중앙차로와 교통카드를 도입해 대중교통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혁했을 때 콜롬비아 보고타의 교통시스템을 참고했었다. 한국스마트카드의 서정형 해외사업팀장은 "이번 수주는 보고타에서 배운 것에다 국내 기술과 운영 경험을 보태 현지에 재(再)수출한 것"이라고 말했다. 보고타 사업이 성공적일 경우 콜롬비아의 항구도시 카르타헤나에서도 수주가 가능할 것으로 회사 측은 예상하고 있다.

한국의 교통카드 시스템 도입을 논의 중인 도시는 이 밖에도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아부다비,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 인도의 뭄바이와 델리, 멕시코의 멕시코시티 등이 있다. 한국스마트카드 측은 "서울처럼 대도시에서 교통카드 시스템을 공급하고 운영해본 업체는 별로 없기 때문에 해외에서 추가 수주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