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처럼 배운 게 돈놀이밖에 없는 사람은 밑지고는 장사 못 하죠. 그래서 다시 '일수 대출'(돈을 빌려주고 매일 이자와 원금을 나눠 받는 것)을 시작했어요. 금리가 연 140%는 돼야 장사하지, 30%대로 어떻게 먹고삽니까?"
올 3월부터 서울의 한 대형 재래시장에서 불법 사채업을 하는 정모(52)씨는 한때 합법적인 대부업자였다. 정씨는 2002년 대부업이 합법화되면서 "경찰 단속을 받지 않고 착하게 살아보자"며 주변 사람들에게 10억원을 빌려 대부업체로 등록했다. 그런데 작년 7월 정부가 종전에 연 66%였던 대출 금리 상한선을 연 44%로 낮추고부터 상황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고 했다. 정씨가 지인들로부터 10% 수수료를 주고 확보하던 돈줄도 끊겼다. 신용등급이 괜찮은 소비자들은 금리가 비슷한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시작했다.
결국 올해 초 사정이 어려워져 문을 닫았고, 남은 자금 1억원으로 불법 사채에 다시 손을 댔다. 그는 "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1인당 100만~200만원씩 소액 대출을 해주는데 월 500만원은 거뜬히 번다"면서 "나처럼 대부업을 하다 다시 일수로 돌아선 사람이 주위에만 대여섯 명은 된다"고 말했다.
◆금리 상한선 낮아지자 다시 불법 사채 손대는 대부업자들
대부업자들이 불법 사채시장으로 다시 몰려들고 있다. 정부가 2002년 대부업을 합법화할 당시의 대출 금리 상한선은 연 66%였다. 이를 지난해 연 44%로 낮췄고, 지난 6월에 다시 연 39%로 낮추면서 대부업자들이 고리 사채의 음지로 다시 숨어들고 있다.
대부업자들은 연 10%가 넘는 금리에 자금을 조달해서 이 돈을 저신용자들에게 대출해준다. 이 같은 자금 조달 비용말고도, 대손비, 관리비, 연체 부담 등을 합하면 연 최고 금리 39%로는 적자를 면하기 힘들다는 논리다.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전업 대부업체(대부중개업 제외) 수는 2007년 1만3100곳이었다가 2009년 1만904곳으로 줄었고 2010년엔 9985곳으로, 대부업체가 합법화된 지 8년 만에 처음으로 1만곳 미만으로 떨어졌다. 협회 관계자는 "연말까지 업체 800곳이 더 문 닫을 전망"이라며 "그만둔 대부업체들의 40~50%는 대부분 불법 사채업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일부 지역에서 사채시장이 대부업 앞질러
대부업체가 속속 폐업하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사채시장이 대부업을 앞지르고 있다. 강원도 원주의 한 대부업체 대표 최모(55)씨는 "이미 원주는 불법 사채업자들이 장악했다"고 말했다. 원주에선 3년 전만 해도 합법 대부업체가 80여곳에 달했지만 최근엔 30곳으로 줄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불법 사채업자는 모두 약 2만명으로 추산된다. 경찰청 관계자는 "지난 한 달간 사채업자를 벌써 700여명 잡아들였고 연말까지 8000명을 단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손 놓은 금융당국
이처럼 불법 사채시장이 불어나지만 금융당국은 "우리가 손 쓸 일은 없다"며 뒷짐만 지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법무부에서 불법 사채업자 처벌을 강화하는 것 외에 우리가 할 게 없다"면서 "대부업자들이 사채업으로 돌아선다는 통계도 없고, 사실상 등록이 되지 않기 때문에 관리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최근 금융당국이 가계대출이 늘어나는 것을 억누르고 있지만 이로 인해 돈 구하기 어려운 저신용자들이 불법 사채시장으로 내몰릴 문제에 대해서는 딱히 대책도 없는 상태다. 금융위에 따르면 작년 12월 현재 7~10등급의 저신용자에 대한 금융권 대출 총액은 2009년 말보다 11조7000억원 감소했다. 저신용자들이 합법적인 대출을 받기 더 어려워졌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