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프 이쪽으로! 중심 잡고, 발 조심!"

은빛 파도가 바위 끝에서 부서졌다. 잔잔하기만 했던 바다는 갑자기 성이라도 난 듯 크게 몸을 움직였다.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 '독거도'는 미역을 채취하러 나온 일꾼들의 거친 목소리로 가득했다. 섬을 한 번 때린 파도가 다시 바다 쪽으로 밀려나가자 갯바위 아래 숨겨져 있던 미역들이 너풀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독거도에서 수년간 자연산 돌미역을 채취해온 김석훈(맨 아래)씨가 현대백화점 이제왕(가운데) 바이어가 건넨 로프에 매달려 미역을 채취하고 있다. 파도에 몸이 휩쓸리거나 바닷속으로 미끄러질 위험이 있어 작업자들은 보통 구명조끼를 입거나 몸에 로프를 묶고 작업한다.

낫 한 자루 들고 로프 줄에 매달려 바위 끝에 붙어 있는 미역을 따는 김향동(64)씨의 몸은 어느새 파도에 흠뻑 젖어버렸다. 그가 파도와 싸우면 싸울수록 그의 옆자리 채취 바구니엔 검붉은 미역 줄기가 수북이 쌓여갔다. 김씨는 "어쩌다 파도라도 치면 그 잡아채는 힘이 어찌나 센지, 로프에 의지하지 않으면 당해낼 길이 없다"고 말했다.

전남 진도군 조도면 독거도. 서울에서 목포까지 KTX로 3시간 반, 목포에서 진도 팽목항까지 승용차로 한 시간, 진도에서 30여분간 페리호를 타고 조도로, 다시 조도에서 30분쯤 통통배를 타고 가야 도착하는 곳이다. 진도 앞바다에 있는 154개 섬 중 하나인 이곳이 최근 미역 때문에 주목받고 있다.

일본 대지진 여파로 국내 자연산 돌미역 몸값 크게 상승

독거도 미역 품질은 업계에선 최상급으로 꼽힌다. 1923년 발간된 '진도군지(珍島郡志)'에는 진도 자연산 돌미역을 왕실과 중앙 조정에 상납했고, 진도곽(珍島藿·진도미역) 중 독거곽(獨巨藿·독거도 미역)을 최상급으로 꼽는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수심이 깊고 빠른 물살 덕에 미역 잎이 넓게 자라지 못해 일명 '쫄쫄이 미역'으로도 불린다.

채취는 미역이 다 자란 7월 말에서 8월 초, 약 열흘 정도 가능한데, 그중 물때(아침저녁으로 밀물과 썰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때)에 맞춰 미역이 물 위로 드러나는 몇 시간만 작업한다. 7월 초엔 미역이 덜 자라고, 8월 말이 되면 태풍에 많이 씻겨나가 거의 채취할 수 없다. 올해는 태풍 '무이파'가 몰아치기 전에 작업이 완료돼 미역을 채취하는 데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

전남 친환경농축수산물협회 장재영 팀장은 "독거도뿐만 아니라 진도 지역에서 채취한 미역은 청정해역에서 거친 파도에 시달림을 받고 자라 쫄깃하고 영양이 풍부하다"며 "탄력성이 좋아 물에 잘 풀어지지 않고 국물을 냈을 때 곰탕처럼 진한 맛이 난다"고 말했다.

이 지역 자연산 미역은 그동안 워낙 채취 물량이 적어 알음알음 찾는 개인이나 광주·목포 지역의 해산물 상인들 정도만 소비해왔다. 하지만 올 초 발생한 일본 대지진 이후 방사능에 대한 우려 등으로 해조류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최고급 미역'에 대한 수요도 크게 늘어 대형 유통업체에서도 진도군 자연산 미역을 찾게 된 것이다. 현대백화점의 경우 올 상반기 자연산·양식 미역 소비가 전년 동기 대비 162% 신장했다. 일본 수출 물량이 늘고, 국내 시장 반입량은 감소해 가격도 전년 동기 대비 20~30% 인상됐다. 일부는 2배 이상 올랐다. 현재 '가로 20㎝·세로 60㎝' 기본 사이즈 한 장당 자연산은 3만원, 양식은 5000원대에 팔리고 있다.

일본 지진 이후 친환경 수산물, 추석 이색 선물세트로 각광

미역이나 다시마 등 해조류는 이전에는 '추석 선물' 목록에서 찾기 어려웠지만, 일본 대지진 이후 싱싱한 해조류와 수산물을 찾는 일본과 국내 소비자들이 크게 늘면서 올해는 추석 선물 세트로도 많이 나왔다. 신세계백화점은 울산 우갑포 질무섬에서 자란 돌미역 '정자각' 세트를 추석 선물 상품으로 준비했다. 갤러리아백화점은 최근 어획 부진으로 '금값'이 된 오징어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도를 고려해 30년 된 대왕오징어와 대왕한치 세트인 '한치 대왕 오징어 세트'를 출시했다. 제주도와 구룡포 해안에서 잡아 만든 것으로 오징어 길이만 최소 70㎝, 한치는 50㎝ 정도 된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김·다시마 등 해조류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올해는 청정해역 제품이 추석 선물로 대거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16일자 B3면 "日방사능 여파로 쫄쫄이 미역값 두배나 올랐죠" 기사에서 '독거곽(獨居藿·독거도 미역)' 한자 중 '居'는 '巨'의 잘못이기에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