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6일쯤 뉴욕에 있는 아들 내외와 손자를 보러 갈 계획이었는데, A380이 9일 뉴욕으로 첫 비행을 한다고 해서 출발 날짜를 일부러 늦췄어요. 실제 타보니 일정을 늦추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9일 대한항공의 뉴욕행 초대형 여객기 A380 2층 칵테일바(bar)에서 만난 허화경(63)씨는 송지은(28)씨와 대화 중이었다. 모녀(母女)처럼 보였지만, 두 사람은 이 바에서 처음 만났다. 허씨는 "바가 있으니까 이렇게 낯선 젊은 사람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 좋다"며 "덕분에 13시간 비행이 지겹지 않다"고 말했다. 뉴욕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는 송씨도 "2층 앞·뒤쪽에 바가 있어 비행기 특유의 갑갑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새로워진 비행 풍속도

대한항공은 이날 오전 '하늘 위의 호텔'이라 불리는 A380을 인천~뉴욕 노선에 처음 투입했다. 지난 6월17일 일본(도쿄)·홍콩 노선에 도입한 A380이 장거리 노선에 취항하기는 이번이 처음. 대한항공의 A380은 세계 최초로 2층 전체를 비즈니스석으로 다 채웠다. 2층 앞쪽에는 무인(無人) 바, 뒤쪽에는 전문교육을 받은 승무원이 직접 6종류의 칵테일을 만들어주는 바를 설치했다. 비즈니스석 이상 승객은 횟수에 제한 없이 이 칵테일바를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

A380 2층에 마련된‘칵테일 바’에서 승객들이 승무원이 직접 만들어 준 칵테일을 마시고 있다. 이곳은 처음 만난 승객들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사교의 장이 되고 있다.

A380 도입으로 인해 항공기 여행, 출장풍속도는 크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화장실 오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의자에 계속 앉아 있어야만 했던 승객에 따라 지옥(?) 같았던 항공여행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 탑승 목적지까지 가던 '가장 빠르지만 지극히 단순한 이동수단'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즐길 수 있는 '사교의 장' 개념이 추가된 덕이다. 이곳 바 라운지에서 가장 인기있는 칵테일은 '앱솔루트 라즈베리 딜라이트'. 앱솔루트 보드카에 생(生)라즈베리즙을 섞은 것으로,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큰딸인 대한항공 조현아 전무의 추천 칵테일이다.

비즈니스석인 2층에 바가 있다면 1층에는 기내 면세품 전시공간이 있다. 화장품을 직접 발라보고 향수 향도 맡아보면서 면세품을 고를 수 있다. 승객 윤세영(25)씨는 "비행기를 타면 피부가 건조해지는데 시제품용 로션을 바를 수 있어 맘에 든다"고 말했다.

A380이 세계 최초로 마련한 기내 면세품 전시공간에서 승객들이 화장품을 고르고 있다. “여승무원들이 즐겨 쓰는 화장품 브랜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한다고 한다.

100석에 가까운 비즈니스석, 판매전략은?

2층 전체를 비즈니스석(94석)으로 채우다 보니, 다 채울 수 있을지 우려 목소리도 높았다. 단거리인 도쿄·홍콩 노선의 경우에는 비즈니스석 탑승률이 평균 60%에 불과했다.

그러나 A380의 비즈니스석은 장거리 노선에서 더욱 위력을 과시했다. 이날 뉴욕행 A380의 비즈니스석 탑승률은 97%. 이코노미석 300석은 모두 만석이었고, 비즈니석은 94석 중 90석이 판매됐다. 또 뉴욕 취항 첫 1주일(8월 9~15일) 비즈니스석 평균 예약률은 90%를 넘어섰다. 대한항공은 올해 안에 A380을 3대 더 도입한다.

인천공항을 떠난 지 13시간14분이 지난 9일 낮 12시 5분(한국시각 10일 오전 1시 5분), A380은 뉴욕 JFK공항에서 안착했다. 첫 도착 기념으로 '환영 물대포' 축하인사도 받았다. 마원 대한항공 뉴욕여객지점장은 "지난해 뉴욕발 아시아권 비즈니스석 고객이 가장 많은 노선은 홍콩, 도쿄, 상해, 북경, 인천 순이었다"며 "A380 도입으로 비즈니스석이 크게 늘어난 만큼 국내 승객뿐 아니라 인천을 경유해서 들어갈 수 있는 홍콩, 상해, 북경 등 중화권 비즈니스 고객을 확보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