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급속히 팔아치우고 있다. 급락장이 시작된 지난 2일부터 8일까지 5거래일간 순매도(전체 매도 금액에서 매수 금액을 뺀 것) 규모만 2조원에 달한다.

외국인 매도는 이달 들어 물량이 확대된 측면이 있지만 본격적인 매도는 이미 지난달에 시작됐다. 지난달 12일 이후 외국인이 매수 우위를 보인 날은 7월 22일과 8월 1일 단 이틀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순매도 규모는 3조6000억원.

유럽의 재정위기가 그리스를 넘어 스페인이탈리아로 전염되고, 미국의 부채 한도 협상이 도마 위에 올랐던 시점부터 외국인은 한국 증시에서 발을 빼고 있었다. 유럽 국가에 대한 지원 방안이 마련되고, 미국 부채 협상만 마무리되면 상승장이 올 것이라 예상한 국내 투자자와 달리 외국인은 향후 다가올 경기 후퇴를 우려한 것 같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외국인 매도… 한국과 대만 닮은꼴

외국인은 특히 한국과 대만에서 많은 주식을 팔았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주까지 외국인은 한국에서 17억7000만달러, 대만에서 13억5000만달러를 순매도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 증시와 대만 증시가 여타 신흥국 대비 하락률이 컸던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한국과 대만은 같은 신흥국 그룹이면서 주식시장에 자금이 풍부한 나라로 꼽힌다. 돈을 넣기도 편하지만 팔기도 편한 시장인 것. 특히 한국은 연초 1120원대였던 미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이 1050원대까지 하락했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환차익이 기대됐다. 최근 모간스탠리의 전망도 외국인 매도를 부채질한 한 요인으로 꼽힌다. 모간스탠리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에서 자금 회수 경쟁이 일어날 경우 아시아 8개국 중 한국이 가장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주가 상승과 환율 하락에 따른 차익 실현 차원에서나 향후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미리 대응하려면 한국 주식을 매도해야 했던 셈이다.

많이 오른 종목만… 비중은 그대로

외국인은 어떤 종목을 많이 팔았을까?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일 이후 외국인 매도 리스트에는 기아차(2577억원)와 삼성전자(2387억원), LG화학(1850억원), 현대중공업(1376억원) 등이 올라 있다. 하나같이 한국 증시를 대표하는 주도주들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외국인이 그동안 많이 오른 종목을 일부 덜어내고 있을 뿐 실제 국내 증시를 떠나는 건 아니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일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외국인 비중은 32.16%였지만 5일에는 오히려 33.48%로 늘었다. 실제 8일 장중 한때 2000억원 넘게 순매도하던 외국인은 오후 들어 매도 규모를 줄이며 순매도 금액을 800억원 수준으로 줄여 놓았다. 1800까지 빠졌던 코스피지수가 1860선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외국인 매도세 완화가 큰 역할을 했다.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들도 외국인 매매 패턴이 시간이 지날수록 부드러워질 것으로 내다봤다. 김경덕 BoA메릴린치 전무는 "세계 경기가 좋아진다는 신호만 나오면 한국에 가장 먼저 되돌아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식 판 외국인, 채권은 산다

주식시장에서 줄기차게 매도로 일관하게 있는 외국인은 그러나 채권시장에서만큼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7월 한 달간 국내 채권시장에서 5000억원 넘는 순매수를 보이더니 이달 들어서도 400억원의 순매수를 기록하고 있다. 덕분에 채권시장도 강세를 보였다. 한 달 전 3.81%였던 국고채 3년물 금리는 3.60까지 떨어졌고, 4%대였던 국고채 5년물 금리도 이날 3.81%까지 하락했다.(채권 가격 상승) 재정위기 이슈가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는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재정건전성 문제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한국 채권을 사는 데 부담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