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사동 도산공원 후문 근처에 이탈리아 식당 '더 키친 살바토레 쿠오모'가 있다. 일본 유명 레스토랑 체인 브랜드인 이 식당은 매일유업 창업주 2세 김정완 회장이 2009년 들여와 문을 열었다. 도산공원 정문 쪽 호림미술관 1층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시작한 빵집 '아티제'가 있고, 같은 층에 남양유업 창업주의 2세인 홍원식 회장이 시작한 이탈리아 식당 '일 치프리아니'도 들어가 있다. 이곳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씨네시티 근처의 냉면집 '강서'는 범(汎) 현대가인 성우그룹 창업주의 2세인 정몽용 성우오토모티브 회장이 투자한 곳이다. 도산공원 근처엔 대그룹 창업주 2~3세가 투자한 식당이 4~5개가 넘는다. '재벌가 2~3세들의 식당 타운'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심지어 떡볶이·치킨 등 골목 상권 업종까지 손을 댄다. 서울 강남역 옛 뉴욕제과 옆 골목에 있는 떡볶이 전문점 '베거백'은 리조트 기업인 대명 코퍼레이션의 서준혁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서울 명동 밀리오레 안에 있는 한 빵집 겸 테이크아웃 커피점. 소규모 점포이지만 한 대기업 회장이 소유하고 있다.

음식점뿐만 아니라 해외 명품 브랜드, 와인, 고급 화장품, 스파(spa·고급 마사지 시설), 외제차 수입 판매 등 고가(高價)의 사치성 업종에는 어김없이 오너 2~3세가 대거 진출해 있다. 이처럼 대그룹 2~3세 중에서는 본업인 기업 활동을 통해 부(富)와 고용을 창출하기보다는 사치성 소비 풍조를 확산시키며 폼 나고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공장에서 피땀 흘리며 기업을 일군 1세대 경영인들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금융 분야를 공부한 오너 2~3세와 일부 벤처기업인들은 '본업'은 제쳐놓고 주식 대박을 좇다가 물의를 빚은 경우도 많다. 지난 5월 구속된 재벌가 3세 구본현 전 엑사이엔씨 대표도 그런 경우다.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그는 지난 2007년 신소재 개발업체를 인수하면서 추정 매출액을 부풀려 주가를 조작해 100억원대의 시세 차익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의 생활은 대그룹 총수 못지않다. 사회적으로 촉망받는 벤처기업인 중에서도 회사 돈으로 대당 수억원씩 하는 수입 스포츠카를 몰고, 미국이나 싱가포르 등 교육 여건이 좋은 지역에 호화 주택을 구입해 살면서 한국과 해외를 나들이하듯 드나들며 기업 경영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라면집… 한 유통 대기업이 최근 문을 연 서울 신사동의 일본식 라면집. 이 대기업은 라면 체인점을 전국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일부는 자신이 사회적 규범이나 법(法) 위에 있는 듯이 행동해 사회적 반감을 사기도 했다. 예를 들어 SK그룹 창업주의 조카 최철원(42)씨는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던 50대 탱크로리 운전기사를 야구방망이로 폭행한 뒤 매값으로 2000만원을 건넸다가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6월 중순에는 새벽에 강남 도산대로·영동대로·압구정로에서 정모(31)씨 등이 고급 외제 스포츠카를 몰고 광란의 폭주(暴走)를 벌였다가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정씨는 카 레이싱이 취미였다. 한 레이싱팀 홈페이지에 자신을 '돈 좀 만지는 백수'라고 소개했으며, 경북 지역에서 대형 워터파크를 운영하는 아버지가 사준 외제 스포츠카를 몰고 강남 도심에서 굉음을 울리며 소란을 피웠다.

자기 '오락'과 '화풀이'를 위해 대한민국의 법과 질서는 아랑곳하지 않는 이런 행태는 기업인과 그 2~3세들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대한민국 자본주의를 타격하는 행위다.

소설가 김주영씨는 "반기업적인 정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업 순이익의 1% 이상을 기부하는 문화를 더 확산시키고 나아가 기업인도 자기 급여와 배당금의 1%를 사회적인 공익 사업에 쓰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4.0

20세기 초 자유방임의 고전자본주의 시대(자본주의 1.0)를 지나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케인스가 내세운 수정자본주의(자본주의 2.0), 1970년대 자유시장자본주의(신자유주의·자본주의 3.0)에 이어 등장한 새 자본주의를 뜻한다. 따뜻한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4.0 시대에도 물론 기업인과 대그룹 오너들은 여전히 기업을 키우고 많은 수익을 올려야 한다. 단 '+α'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나눔과 배려,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모습으로 사회 구성원들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사회가 된다.